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시코이 Aug 03. 2023

첫 캠프 생활

태어나서 처음으로 4박 5일 떨어져 있기

내년이면 중학교 입학을 앞둔 첫째.

여름방학을 기억 남는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생각해 보니 첫째를 낳고 지금까지 한 번도 떨어져서 지낸 적이 없다.

남의 집은 한 번씩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보내서

하룻밤 재워서 보내기도 하지만

우리 집은 친정과 시댁이 멀다 보니

항상 동행을 했지 아이만 보낸 적은 없다.

첫째가 초등2학년 겨울부터 시작된 코로나로 인해

근 몇 년 동안은 단체생활이나 모임을 해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사실 중학교 진학을 사립 중을 생각하고 있다.

사립중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나는 매일 학원과 학교를 의미 없이 오가는 그런 중학교 생활을 하게 하고 싶다.

숙제를 하기 위한 공부 보다

뚜렷한 목표의식으로 공부를 하게 하고 싶다

그렇다고 모든 일반 중학교가 목표의식 없이 공부를 하는 아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학원을 보내지 않는 중등 부모들도 있겠지만

거의 모든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원과 학교를 오가며

학원 숙제를 해나가는 공부를 하고 있다.

아이도 엄마와 떨어져서 생활하는 기숙사중학교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사립중학교를 합격을 하면 또 아이의 마음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사립중 체험을 해보게 하고 싶었다.

내가 관심을 갖고 있었던 사립중에 방학중 캠프가 있어 신청을 했다.

우리 집에서 사립중 까지 걸리는 시간은 왕복 6시간

아이를 데리다 주고 돌아서는데 왈칵 눈물이 흐를 뻔했다.

한 번도 아이와 떨어진 적 없는 엄마의 걱정과는 달리

아이는 쿨하게 인사를 하고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아빠가 열심히 운전을 해서

집에 도착을 하자마자 사립 중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

아이가 열이 나서 활동을 하지 못하고

혼자 쉬고 있다는 것이었다.

분명 헤에 질 때는 멀쩡했는데 갑자기 열이 나고

토해서 저녁도 먹지 못했다는 말씀.

당장이라도 데리고 가고 싶었지만

또 운전을 해서 3시간을 달려야 한다.

일단 선생님이 상황을 지켜보고 또 열이 나면 연락을 드린다고 했다.

전화를 받도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집안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자는 동안에도 새벽에 전화가 올까 싶어

당장이라고 나갈 수 있게 준비를 마치고 잠이 들었다.

다행히 새벽에 학교에서 전화는 오지 않았다.

핸드폰 연락을 할 수 없어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캠프 활동 사진을 보면서

아이의 상황을 짐작할 뿐이었다.

모두 150명이 함께 하는 캠프 사진 속에 우리 아이를 찾기란

정말 눈을 크게 뜨고 찾아야 했다

그러나 나는 아이의 뒷모습을 봐도

얼굴이 잘린 사진을 봐도

살짝 반쪽 몸만 사진만 봐도

우리 아이인 줄 알 수 있었다.

남편은 개미만큼 작게 나온 사진들 속에

어떻게 아이의 모습을 그렇게 잘 찾는지

놀라울 따름이라고 했다.

엄마는 척하면 척이지.. 지금까지 내가 키운 세월이 얼마인데..

150명이 아니라 천명이 있는 인파들 속에서도

우리 아이는 금방 찾을 수 있는 자신감이 있지.


그동안 사춘기 딸이라 매일 잔소리만 퍼붓다가

딸이 없으니 왜 이렇게 허전한 걸까?

기숙사가 있는 사립중은 먼저 내가 이런 곳이 있다고 알려줬지만

막상 사립 중을 합격을 한다고 해도

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학교생활 중에 갑자기 아프기라도 한다면

생리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뒤처리만 잘할 수 있을까?

오만가지 걱정이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평소 남편은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한다고 나에게 잔소리를 한다.

그런 남편에게는 내색을 하지 못했지만

4박 5일 동안 전화통화도 할 수 없어서 그런지

도통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캠프 일정이 다 끝내고 퇴소식날 데리러 갔던 날

아이도 나를 보자마자 와락 안기면서

"엄마 보고 싶었어!"라고 이야기를 한다.

평소 정말 무뚝뚝한 아이라

이런 아이의 반응이 좀 의외였지만

역시 이런 시간은 서로에게 필요한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캠프가 너무 재미있어서 아쉽다고

한 2주 정도는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런 아이의 반응을 나는 좋아해야 할까.

그런 정신이라면 너는 사립중 합격을 해도

잘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아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너 기숙사중학교 합격하면 엄마랑 떨어져서 생활할 수 있겠어?"

아이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할 수 있겠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아이의 반응이 조금 서운하면서도

일단 김치국물 마시지 말고

우리 합격부터 하자고 얼버무렸다.


아이는 엄마의 품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데

엄마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을 때 걷다가 혹여나 넘어지면 어쩌나

안절부절못했던 그 마음이 아직도 나에게는 남아있는 것 같다.

친정엄마는 내가 여행을 가거니

연락이 안 되면 안절부절못해서 아직도 몇 십통의 전화가 온다

40넘은 딸 걱정을 아직도 하는 70대 엄마처럼

나도 그렇게 될까?라는 생각이 들어

내 미래가 좀 걱정이긴 하다.

내려놓을 때는 내려놓아야 하는데

아직 나는 시간이 더 지나가야 알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춘기 1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