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주고 인연 만들기
페어에서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싼 부스비를 지불하면서 얻고자 하는 것은 사람일 것이다. 그 사람들이 나의 팬이 될 수도 있고 거래처가 될 수도 있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결국 돈이 필요하다. 너무 차가운 이야기지만 현대사회는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그 돈과 더불어 어떠한 특장점이 있어야 관계가 더욱더 많이 이뤄지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작가 본인의 개성과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페어를 참가할 때 처음엔 단순히 '내가 그린 작품만 판매해야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페어에서 어떠한 분이 자신만의 주문제작 마트료시카를 의뢰해 주셔서 만들게 되었고, 이것이 좋은 반응을 이끌어 현재까지 노랑선 마트료시카 판매의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중이다. 페어에 참가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고객의 니즈를 알게 된 것이다. 작가 고유의 작품만이 진짜고 고객의 요청에 의해 만들어지는 작품들은 내 작업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이건 그냥 단순히 일로써 그리는 거다라는 생각이 강해 애착이 가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고객들의 주문사항을 직접 받아보고 상담을 하며 그 고객들의 진심을 알게 되었고, 작업이 끝난 후 보내주시는 후기 내용들을 보니 하나 같이 마음 따뜻한 진심이 담겨 있었다. 단순히 일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작업이 그분들에겐 큰 추억이 되고 하고, 자신의 마음이 담은 선물이 되기도 했다. 그로 인해 그냥 일이 아닌 진심을 그리고 전해드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나의 고유의 작업보다 조금 더 시간과 정성을 들여 그리게 되었고, 나의 손을 떠나는 아이들이지만 작품으로 남겨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그리게 되었다.
페어에서 나의 작품을 관심 있게 보신 분들이 나의 이력을 보고 마트료시카 작업이 아닌 원래 하던 편집디자인과 삽화 작업을 의뢰하는 사례도 종종 있었다. 워낙 마트료시카 페인팅에 내 개성이 들어가 있어서 그런지 그림만 보고 어느 정도 삽화 스타일을 파악한 것 같았다.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깊게 나누다 자연스레 본업인 디자인 이야기까지 이어지게 되었고, 그렇게 외주이야기까지 확장될 수 있었다. 예상하지 않았던 외주 작업이었지만 어찌 됐던 수입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페어의 성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페어 내에서 정신없이 이뤄지지만 분명한 건 이러한 기회 역시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다. 돈을 들여 내 작업물들 자랑하고 뽐내려 가는 곳이기 때문에 나의 무기들을 여러 개 만들어 가지고 가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과연 이것도 필요할까 싶은 곳들도 일단 챙기자.
페어 초기 이러한 제안을 주셨을 때 보여드릴 수 있는 포트폴리오가 pdf파일 밖에 없어 그 자리에서 보여드리기가 힘들었었는데, 이젠 포트폴리오 사이트에 pdf를 낱장으로 올려놓아 바로 보여드릴 수 있도록 만들어 두었다. 처음에 만들어 놓는 게 귀찮고 일스러웠지만 한 번 정리하여 만들어 놓으니 외주 제안이 왔을 때 너무나 편하게 주고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정말 일은 어디서 어떻게 들어올지 모르니 항상 만반의 준비를 해두어야겠다 싶었다.
개인 작업만 하는 샤이한 작가로서 누구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알려줄 거란 생각은 안 해봤다. 거기다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마트료시카 작업을 어떻게 편하게 가르쳐줘야 할까 고민만 하다 생각에서 그치기 일 수였다. 그러다 페어를 통해 알게 된 클래스 관계자들의 제안으로 굵직한 클래스 두 개를 하게 되었다.
첫 번째 클래스는 어린이 놀이터 ‘디키디키’에서 이뤄진 어린이 친구들을 위한 마트료시카 체험 클래스였다. 내가 작업한 샘플 작업을 보며 아이들이 자유롭게 그리는 활동이었다. 어린이 놀이터 내에 위치해서 수업처럼 시간과 인원을 정해 놓고 하는 게 아니라서 크게 준비해야 할 커리큘럼은 없었다. 그때 그때 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지도해 주면 되는 일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이라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지만 꽤나 보람을 느꼈던 수업이었다.
두 번째 클래스는 모나미와 함께 하였다. 시즌에 맞춰 두 가지 콘셉트로 총 4회에 걸쳐 클래스를 진행하였다. 시간과 인원을 예약받아 진행하는 수업이었기 때문에 수업 내용을 시간에 맞춰 준비해야 했다. 거기에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미리 마트료시카 재료들에 작업을 해놓아야 했다. 성인을 대상으로 처음 하는 수업이었기 때문에 꽤나 긴장하며 해야 할 멘트들을 계속 숙지하고 되새겼다. 다행히 작업에 대한 이해도가 어느 정도 있으신 참가자들로 인해 수업은 어렵지 않게 진행되었다. 오히려 작업에 대한 좋은 피드백과 응원을 해주셔서 더 큰 에너지를 얻었었다.
이 일을 통해 사람들이 직접 마트료시카를 그리는 것에 대한 열망을 느낄 수 있었고, 개인 블로그에 도안과 작업 과정을 업로드하며 마트료시카를 좀 더 편하게 접할 수 있도록 다가가려 노력했다. 그 이후에도 원데이 클래스 문의와 요청들이 들어왔었지만 출산과 육아가 이어져 당분간은 외부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언젠가 개인 작업 공간이 생기면 편안하게 수업도 진행하고 작업도 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