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빵빵런 참여기
'와, 드디어 해냈다.'
결승점을 넘자마자 심장은 터질 듯 뛰었고, 입에선 탄성이 터졌다. 기념품 수령소에서 자원봉사자가 건넨 깜찍한 메달을 목에 걸었다. 손끝으로 매달의 차가운 표면을 쓸어내리니, 피부로 전해지는 금속의 온기가 이상하게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번 마라톤 출전으로 총 4개의 매달을 목에 걸게 됐다. 평생 달리기와 담을 쌓고 살아온 나인데, 이건 기적이라 부를 수밖에 없었다.
언제부터 나는 이토록 마라톤 친화적인 사람이 된 것일까.
첫 대회 출전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남편이 상의도 없이 10km 마라톤을 덜컥 신청해버렸다.
운동은 즐겼지만 5km조차 완주해 본 적이 없었다. 겁이 났고 자신이 없었다. 취소하고 싶었지만 어영부영하는 사이 환불 시기를 놓쳤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출전하게 됐다. 그런데 우려와 달리 무사히 완주에 성공했다. 아마도 나는 '러너'로 살아갈 운명이었나 보다.
첫 메달을 목에 걸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출전 전부터 메달이 주어진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것이 목에 걸리는 순간, 가슴 한편이 뭉클하고 저릿했다. 언제 마지막으로 이런 메달을 목에 걸어봤던가. 길 위에서 흘린 땀과 견뎌낸 시간들을 고스란히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독히도 내 노고를 외면해 버리는 세상에서 끝끝내 버티벼 견뎌온 나에게 주는 작은 위로였을까. 차가운 쇳덩이는 말이 없었지만 누구보다도 내게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작은 동그라미는 반짝이며 나의 노력에 온몸으로 화답하고 있었다.
노력과 보상이 늘 불균형한 세상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에게는 낯선 기쁨이었고, 잃고 싶지 않은 감동이었다. 그 낯선 행복을 자꾸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꾸준히 달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네 번째 출전하게 된 빵빵런은 유난히 더 기대가 됐다. 지금까지 받았던 메달과 달리 디자인이 매우 화려하고 유니크했다. 빵 캐릭터가 귀엽게 수놓아진 디자인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알아주는 빵 덕후다. 기념품으로 노티드 도넛과 나폴레옹 메론빵이 제공된다는 소식에 마음이 한껏 들떴다.
2021년부터 개최된 빵빵런은 빵을 테마로 하는 마라톤이다. 한마디로 빵순이, 빵돌이들을 위한 축제. 완주 후, 인기 빵집의 빵이 기념품으로 주어진다. 그뿐만 아니라 참가자 1인당 1개의 빵을 소외계층 아동에게 매칭으로 기부를 한다. 달리기만 하면 빵도 먹고 기부까지 함께 할 수 있다니. '나눔의 기쁨까지 누릴 수 있는 마라톤'이라 더욱 뜻깊게 느껴졌다.
경기는 4월 27일 뚝섬 유원지에서 개최됐다. 3.1절 마라톤에서 이미 한번 달려본 적 있는 코스다. 길이 좁아 초반에 병목현상이 생기는 것이 아쉽지만, 한강을 끼고 달리는 길은 봄 날씨에 최적의 코스다. 어느새 겨울 입김은 자취를 감추고, 초록 초록한 물결이 일렁이는 뚝섬 유원지는 마음까지 싱그럽게 물들였다. 하늘도 구름 한 점 없이 높고 푸르다. 쾌청한 날씨였다. 주말을 맞아 피크닉을 즐기기 위해 한강을 찾은 가족단위, 연인들도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빵빵런은 다른 마라톤과 달리 참가자 대부분이 MZ세대였다. 그래서일까. 마라톤 대회라기보다는 대학교 축제 한복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젊은 피들 틈에 샌드위치처럼 껴 있으려니 무쩍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이렇게 이색적인 축제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았다. 함께 동화되어 포토존에서 인증샷도 찍고 이벤트도 즐기다 보니 어느덧 경기 시간이 다가왔다.
남편은 처음으로 하프에 도전했다. 출발과 동시에 빛의 속도로 사라지는 남자지만, 막상 따로 뛰려니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여보, 파이팅! 잘 달릴 거야!"
뜨겁게 응원하며 힘을 실어주고, 나는 10킬로미터 주자 출발선에 섰다. MZ 세대들 틈에 끼어 있으려니 이방인이 된 느낌이었다. 휘슬 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젊은 피들이 전쟁이라도 난 듯 우르르 달려나갔다. 땅을 울리는 유난히 큰 진동에 가슴이 빠르게 쿵쾅쿵쾅 요동쳤다. 젊은 피에 밀려 달리기의 리듬을 잃기도 했고, 주춤거렸다. 어린 빵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가벼운 깃털처럼 펄펄 날아다녔다.
평소라면 5km쯤 지나야 숨이 가빠 오기 시작했을 텐데, 초반부터 기가 빨린 탓일까. 3km 지점을 넘어서자 벌써부터 헉헉 숨이 차기 시작했다.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는 듯 다리는 무거워지고 몸은 점점 말을 듣지 않았다. 이마에도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발바닥은 불이 난 것처럼 화끈거렸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내 심장은 아직 뛰고 있었으니까. 꾸역꾸역 쥐어짜듯 한 걸음씩 내딛다 보니 어느새 8km 지점 팻말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때부터는 정말 고비였다. 온몸이 버거워지고 입술 끝에서 저절로 욕이 튀어나올 만큼 힘들었다.
'아아악!'
악을 쓰며 마지막 힘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마침내 결승전 통과!
10킬로 미터 완주의 환희가 물밀듯 가슴으로 밀려왔다.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을 만큼 다리는 후들거렸지만 마음은 뿌듯했다. 피, 땀, 눈물이 베인 도넛은 유난히 달고 맛있었다. 기록은 1시간 14분. 지금까지 내 최고 기록이었다. 남편도 무사히 하프 완주에 성공했다. 두 시간 꽉 채워 달린 그는 기진맥진했지만 얼굴 가득 뿌듯함이 배어 있었다. 길 위에 흘린 땀과 눈물 덕분일까. 유난히 메달이 반짝였다. 우리는 환하게 웃으며 인증샷을 남겼다.
마치 축제와 같았던 빵빵런. 순위 경쟁을 떠나 빵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며 한마음이 되어 즐기는 시간이 무척 새롭고 신세계였다. 요즘 FUN RUN이라고 해서 이렇게 재미를 추구하는 마라톤 대회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빵빵런 이외에도 롯데타워 1층부터 시작해서 123층까지 오르는 스카이런, 무한도전 팬들을 위한 무한도전런, 미니언즈 캐릭터를 테마로 한 미니언즈런까지 다채롭고 이색적인 펀런들이 생겨나고 있으니 꼭 한번 기회 되면 참여하기를 권하고 싶다. 뛰지 않고 걷기만 하더라도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움과 뜻하지 않은 재미를 선사하는 신명나는 축제다. 건강과 재미를 동시에 챙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가성비 좋은 나들이가 또 있을까.
이로써 내 인생에 또 하나의 매달이 더해졌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내디딘 걸음 끝에 걷은 값진 결실이다. 달리기 마일리지가 차곡차곡 쌓일수록 마음의 근육도 함께 단단해진다. 세상은 여전히 차갑고 내 노력을 알아주지 않을지 몰라도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오늘 쌓아 올린 작은 걸음들이 내 삶을 든든히 지탱해 주는 지지대가 되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