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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 토박이가 알려주는 대구 대표 음식들

#찜갈비 #닭똥집 #연탄불고기 #무침회 #뭉티기 #곱창 #막창

by 미스틱

'호구(虎口)'란 말이 있다. 글자 그대로 '범의 아가리'라는 뜻이지만 바둑에서는 상대편 바둑 석 점이 이미 포위하고 있는 형국을 말한다고 한다. 그 속에 바둑돌을 놓으면 영락없이 먹히고 말기 때문에 최근에는 "내가 호구인 줄 아나? 사람 잘못 봤다" 등 상대방의 먹잇감이나 이용감이 된다는 속어로 자주 쓰인다. 참고로 인터넷에서는 '호구'란 글자가 필터링되면서 '흑우'란 말로 자주 쓰인다.


비슷한 말로는 '내가 봉(鳳)인 줄 아나?"가 있다. 원래는 우리가 뜻하지 않게 엄청난 행운을 만났을 때 '봉 잡았다'라는 말을 쓴다. 여기에서 '봉'은 봉황(鳳凰)이란 상상의 새에서 나온 말이다. 봉황이란 명칭은 두 가지 의미가 결합된 것으로 수컷을 '봉(鳳)', 암컷을 '황(凰)'이라고 한다. 봉황은 금실이 좋은 새로 유명하다. '봉 가는데 황이 간다'는 말이 있다. 따라서 '봉을 잡았다'는 것은 곧 황도 잡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연유 속에서 '봉 잡았다'란 말은 뜻하지 않는 엄청난 행운을 잡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내가 봉이냐?'에서 봉의 뜻은 '어리숙하여 이용해 먹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은 조선 후기 봉이 김선달에서 유래했다. 봉이(鳳伊)란 김선달의 별호를 말한다. 어느 날 김선달이 장 구경을 갔다가 닭을 파는 가게 앞을 지나다 문득 장난기가 발동했다. 주인에게 집요할 만큼 '봉'이냐고 물으니 귀찮아진 닭장수가 맞다고 해서 비싼 값을 치르고 구매를 했다.


김선달은 평양감사에게 달려가 '봉황'이라고 진상을 했고, 자신을 조롱한다고 생각한 감사는 그의 볼기를 매우 쳤다. 김선달이 자신은 닭장수에게 속았을 뿐이라고 항변하자 닭장수가 끌려왔고, 결국 김선달은 볼기 값과 닭값을 합쳐서 후하게 배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 후로 봉이 김선달로 불리게 되었고, '내가 봉이냐?'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어디 가서 상품을 구매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 '호구'나 '봉'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관련 정보나 후기 리뷰를 사전에 꼼꼼하게 구글링해야 한다. 하지만 상위 검색 노출이나 후기 리뷰 또한 비용 투자나 마케팅 업체와의 제휴를 통한 조작이 가능하다 보니 이 또한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속이는 자와 속지 않으려는 자들의 눈치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현역 시절 난 회사 덕에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자연스럽게 그곳의 맛집을 많이 섭렵할 수 있었다. 지역마다 일반 대중들에게 알려진 대표 음식들이 많았지만 막상 현지인들과 얘기해 보면 현지인들은 그곳에 잘 가지 않는다는 얘기가 의외로 많았다. 한마디로 모르고 가면 그냥 '호구'나 '봉'이 되어 비싼 돈만 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대구 찐 토박이로서 대구에 혹시 놀러 오시는 작가분들을 위해 그나마 속지 않을만한 대구의 대표 음식 썰을 풀고자 한다. 혹시 개인마다 음식 취향이 다를 수 있으니 이 점 꼭 참조해서 나를 봉이 김선달로 오해하시지 말았으면 한다. ^^;




외지에서 보는 대구의 음식은 '먹을 것이 별로 없다', '맵고 짜고 자극적이다'는 평이 많다. 맵고 짜고 자극적인 맛은 인정하지만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닌 것 같다. 찐 토박이 입장에서 보면 꽤 맛있고, 저렴하고, 괜찮은 대표 음식들과 골목들이 꽤나 즐비하기 때문이다. 그중 내가 평소 애용하고 애식하는 대표 음식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동인동 찜갈비 골목이다. 매운맛의 끝판왕인 찜갈비는 찌그러진 양은 냄비로 조리되어 나오며, 미국산과 국내산 한우로 구분되는데 가성비 측면에서는 미국산을 먹어도 맛 차이는 한우와 거의 없다. 매운맛은 조절이 가능하니 참조 바란다. 소갈비 양념으로는 다진 마늘이 엄청 들어가는데 먹고 나면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중독성이 있다. 밥과 같이 먹어도 되지만 가급적 고기를 먼저 쌈에 싸 먹은 후 남은 양념에 밥을 넣어서 뚝딱 비벼먹는 것을 추천한다. 막걸리와의 궁합이 매우 좋으며, 알싸한 마늘을 매우 좋아한다면 이 메뉴를 적극 추천한다. 참고로 연인끼리는 이 메뉴를 먹은 후 절대 KISS NO NO!!!

매운 찜갈비와 밥 비벼먹기


두 번째는 애주가인 내가 자주 애용하는 대구 평화시장 닭똥집 골목 되시겠다. 닭똥집 골목은 맛, 가격, 양 세 가지를 모두 만족시키는 가성비가 매우 훌륭한 먹거리 중 하나다. 내가 예전에 다니던 지거국(지방 거점 국립대)과도 가까워 가난한 대학시절부터 자주 이용했던 곳이다. 후라이드, 간장 맛, 양념 맛 세 가지가 있는데 모둠 세트 메뉴를 시키면 한꺼번에 맛볼 수 있으니 적극 추천한다. 4명이 가서 소주 한 병씩을 먹어도 3만 원대 정도밖에 안 나오니 휴일 낮술 하기에 딱 좋을 것 같다. 옛날 찜닭도 의외로 맛있다는 걸 나중에 나도 알았다. 동대구역에서 걸어서 10분 정도니 참고 바란다.


모둠 세트 메뉴


세 번째는 북성로 연탄 불고기 골목이다. 원래 포장마차 형태로 연탄불고기를 팔았는데 요즘은 식당 형태로 장사를 하는 곳들이 많이 생겼다. 예전에 서민들이 돈은 없고, 배는 고프고, 고기가 먹고 싶을 때 자주 찾던 곳이다. 골목에 들어서면 연탄불에 굽는 숯향(?) 가득한 불고기 냄새가 코를 마구마구 자극한다. 4명이 모여도 불고기 대자 2만 원이면 배 터지게 먹을 수 있으며, 함께 먹는 우동은 완전 꿀조합이다. 특히 비가 내리거나 스트레스로 술이 당길 때 가면 데끼리! 따봉!이다. 참고로 지하철 대구역과 가깝다.

연탄 불고기와 냄비 우동


네 번째, 반고개 무침회 골목 되시겠다. 종류로는 무침회(오징어), 논고동 무침회, 미주구리회, 가오리회가 있는데 대부분 2만 원대로 매우 저렴하며, 이 중 오징어 무침회가 가장 무난하다. 만약 오돌거리는 뼈를 씹는 식감을 좋아한다면 미주구리나 가오리회를 추천한다. 난 개인적으로 미주구리회 취향이다. 먹다 보면 오징어, 논고동, 미나리, 무생채 등이 새콤달콤 양념들과 잘 어우러져 자꾸 손이 간다. 무침회는 그냥 먹어도 되고, 쌈을 싸서 먹어도 되지만 납작 만두와 함께 먹으면 그 맛이 배가 된다. 기본으로 나오는 계란찜과의 맛 궁합도 좋다. 처음 온 분들은 너무 고민 말고 납작 만두가 포함된 세트 메뉴를 시키면 된다. 참고로 내가 가는 대표적 단골 맛집은 의성XX이다.

오징어 무침회와 납작 만두


다섯 번째는 안지랑 곱창 골목이다. 안지랑은 지명 이름이며, 이곳은 2012년 문체부 주관 전국 5대 음식테마거리로도 선정이 된 곳이기도 하며, 다큐 3일에도 나온 곳이다. 이곳에 들어서면 곱창 굽는 고소한 냄새가 입구부터 진동을 하는데 골목 전체가 곱창집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양푼이 채 제공되는 곱창은 안지랑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초벌이 되어 나오는데 살짝 구워 특제 막장에 찍어 먹으면 더 맛있다. 선택 장애가 있으신 분들은 세트 메뉴를 시키면 된다. 연탄불에 곱창이 익어가는 낭만과 소주 한잔이 그립다면 적극 추천한다. 단 입었던 옷과 머리 냄새는 덤!


안지랑 곱창 골목 / 양푼이 채 제공되는 곱창 / 익어가는 곱창


여섯 번째는 뭉티기다. 육사시미라고 흔히 알고 있지만 우둔살을 도축한 그날 바로 뭉텅뭉텅 썰어내는 것을 대구 지역에서는 뭉티기라고 부른다. 접시에 막 담은 뭉티기는 뒤집어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찰지다. 찰진 식감도 좋지만 고추기름에 다진 마늘을 넣은 알싸한 매운맛의 소스와 함께 찍어 먹으면 환상의 맛이다. 기본으로 제공도는 소골, 천엽과 생간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무엇보다 메인 메뉴와 함께 나오는 곁들이찬(밑반찬) 또한 다채롭다. 개인적으로 난 뭉티기 이외에 양지머리도 자주 즐겨 먹었다. 참고로 내가 가장 즐겨 찾았던 뭉티기 맛집은 녹양 향XX(대구 중구 중앙대로)이며, 분점은 얼마 전 수요 미식회에도 나왔다고 한다.

뭉티기 한상


일곱 번째, 힘이 들어 한꺼번에 소개하겠다. 전국적 인지도가 있는 대구의 막창은 경북대 인근의 복현오거리가 원래 유명하지만 이제는 전국에 소재한 막창 프랜차이즈를 통해서도 맛볼 수 있으니 여기에선 패스하겠다. 다음으로 대구를 대표하는 얼큰한 해장국으로는 따로국밥이 있다. 밥과 국을 따로 주는데서 유래했다. 동성로에 위치한 국일따로XX가 유명하니 참고 바란다. 참고로 앞산 인근의 대덕XX의 소피국(선짓국)도 유명하니 앞산 등산 후 즐기면 더 꿀맛이다. 하지만 최근 주인이 바뀌어 맛이 예전같지 않다니 참고 바란다.


대구에는 복어불고기가 유명하다. 먹고 난 후 볶아주는 밥이 정말 제대로다. 미성XX가 유명하다. 또한 납작 만두가 있는데 TV 프로그램인 '생활의 달인'이나 '생생정보통'에도 방영된 이력이 있다. 참고로 60년 전통의 미성당XXXX가 유명하며, 납작 만두와 쫄면이 꿀 조합이다. 야끼우동 또한 대구에서 만들어진 얼큰하고 매운 볶음우동이다. 웬만한 중화반점에서 시켜도 거의 실패하지 않는 메뉴 중 하나이니 참고 바란다.

막창 / 따로국밥 / 선지국
복어불고기 / 납작만두 / 야끼우동


참고로 인터넷 검색창에 대구 10미(味)를 치면 나오는 음식들이 있다. 대구에서 시작되었거나 대구에만 있는 독특한 조리법 또는 대구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으로 소개되고 있다. 10가지를 보면 육개장(따로국밥), 막창구이, 뭉티기, 동인동 찜갈비, 논메기 매운탕, 복어불고기, 누른 국수, 무침회, 야끼(볶음)우동, 납작 만두가 있다.


적다 보니 대구 10미味)와 차이가 없어서 괜한 수고만 한 것 같아 갑자기 허탈해진다. ㅠㅠ 하지만 개인적으로 꼭 추천하고 싶은 메뉴는 뭉티기, 닭똥집, 무침회 순이니 대구에 오실 때 꼭 한번 들러서 여행의 즐거움을 식도락으로 더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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