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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Jun 17. 2024

그녀는 예뻤다 1

오랜만에 미술관을 다녀왔다. 예전에는 자주 다녔는데 올해는 한 번을 가지를 못했다. 그림을 그리고 피아노를 치는데 정작 전시회와 음악회는 즐기지 못하는 하루하루 꽉찬 삶이었다. 그러다 친구 덕에 약간은 반강제로 다녀올 수 있었다. 


오랜 동기인 그녀는 아주 각별한 사이는 아니었다. 대학교 1학년, 우리는 영어연구회라는 동아리에서 만났다. 그냥 영어 공부를 해 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과친구 두 명과 가입했는데 거기서 바로 옆 과인 컴퓨터교육과 친구들이 5명이 가입했다. 1학년이 8명이나 들어왔는데 정작 윗학번 선배들은 많지 않았다. 우리는 모여서 파전도 부쳐먹고 노래방도 가고 재미있게 잘 놀았지만 정식 모임은 자주 갖지 못했다. 잘 못 해 주어서 미안하다는 선배들의 말과 함께 함께 했던 시간은 1년 정도로 동아리는 그렇게 흐지부지 되었다. 컴과 친구들도 다른 모임으로 바빴고 나 또한 다른 동아리와 동호회 활동으로 바빠서 동아리 모임 자체는 딱히 아쉽지는 않았다. 아쉬웠던 것은 그 좋았던 친구들과의 접점이 사라진다는 부분이었을 뿐. 그래도 영어교육과와 컴퓨터교육과는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 오며 가며 자주 만났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는 했다.


ㅅㅈ는 그 중에서도 참 빛나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졸업 후 각자 갈 길로 갔고 한동안 연락할 일은 없었다. 그러다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15년 정도 흐른 어느 날 연수원에서였다. 오랜 육아휴직을 끝내고 학교에 다시 복귀하려면 복직 연수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명단에는 ㅅㅈ의 이름이 있었다. 몇몇 후배들의 이름도 있었는데 한 클래스에 배정된 것은 ㅅㅈ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만난 그녀는 여전히 멋졌다. 


예전에도 투명하게 하얀 피부와 크고 맑은 눈은 내게 이영애 보다도 더 예쁘게 보였는데 중년의 나이인 지금도 여전히 반짝거렸다. 그녀의 반짝임은 예쁜 외모도 한몫하지만 내면의 아름다움이 더 크다고 그 때도 지금도 생각한다. 사실은 이 글을 ㅅㅈ에게 보여주면서 '내가 너를 이만큼 좋아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높이 생각했다!'라고 생색내고 싶었지만 후에 이어질 이야기는 사실 좀 부끄러운 부분이라 역시 그냥 혼자만의 오마쥬로 간직해야 겠다. 


우리는 반가운 마음으로 곁에 앉아서 복직 연수를 들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내가 예전에 살던 동네에 살고 있었고 아이가 셋이라고 했다. "야! 나도 넷이야!" 서로가 다둥이 엄마가 될 줄은 정말로 생각도 못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갔는데 그 연수 중에 교사의 겸직에 관한 부분이 있었다. 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당시에 엄마표 영어로 조금, 아주 조금 유명한 블로거였기 때문에 교사가 블로그를 같이 운영을 해도 되는지 어쩌는지 몰랐다. (지금이야 잘 알고 있지만 10년간 육아휴직을 하면 당연한 사실도 모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강사님께 질문을 하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여기에 대한 자부심을 내비쳤고 그녀는 담담하게 "대단하다"라고 칭찬을 해 주었다. 항상 나보다 생각이 깊다고 생각했던 그녀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살짝 어깨가 으쓱했던 것도 사실이다. 


복직 연수가 끝나는 마지막 날 나는 연락처를 교환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반별 수업이 아닌 강당에서 전체 수업으로 진행이 되었고 원래 친하던 동아리 후배들과 수다를 떨다가 그만 얼굴도 제대로 못보고 헤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나서 우연하게도 페이스북에서 다시 연결이 되었다. 그리고 전혀 내색하지 않았던 그녀의 과거와 현재는 나로 하여금 땅굴을 파고 들어가게 만들었다. 현재 거의 모든 초등선생님들이 사랑하고 애용하는 인디스쿨의 초기개발진이자 어느 교사 모임의 핵심 멤버로 맹활약을 펼치는 중역이자 그림에서도 글에서도 학급경영에서도 탁월한 재능과 통찰력을 보여주는 깊은 생각의 소유자. 내가 뭐라고 주름을 잡았단 말인가. 복직 연수를 받은지 8년이 넘어가지만 여전히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르는 부분이다. 덕분에 그 이후로는 나는 절대 주름을 잡지 않는다. 세상에 대단한 사람들이 많고 많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내 바로 앞에서 친했던 지인이 너무나 대단한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 이십 여 년 전, 나를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던 사건이 있다. 그것은...(다음 주 이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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