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 번은 영어 발음에 대한 부분을 짚어볼 때가 되었다. 발음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에 넣어야 할지 조금 애매했다. 말하기와 듣기와 읽기가 진행되는 시점 중반 정도에 발음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영어의 다른 부분에 대한 의견은 비교적 동일한데 유독 발음에 대한 부분은 의견이 갈린다. 어느 정도 알아만 들을 수 있으면 된다는 의견과 그래도 원어민의 정확한 발음과 억양을 따라 할 수 있도록 유창한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둘 다 타당성이 있기 때문에 나는 어느 것이 절대적으로 옳고 그르다고 정의 내리지 않는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고 그에 대한 노력도 각자가 할 부분이다. 다만 나는 발음 공부를 어느 정도 하는 것을 선택했다. 지금부터는 왜 발음 공부를 했는지에 대한 번외 편 정도가 되겠다.
영어 전담교사가 되고 영어 공부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난감하던 시절이었다. 어찌어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영어에 조금씩 발을 들여놓고 있던 그해 여름, 우연히 샤론 강 선생님과 다시 연락이 닿았다. 대학 졸업 후 2년간 개근할 정도로 열심히 수업을 들었었다. 맨 앞자리에 앉아 선생님이 주는 팁을 빼놓지 않고 가져가려고 애를 썼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하지만 대학원 입학 후 시간이 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연락이 멀어지게 된다. 가끔 선생님이 너무 보고 싶으면 학원에 한 번 슬쩍 들리기도 했지만 매일같이 수업을 듣는 것과는 당연히 같을 수 없었다. 그러다 선생님이 결혼 후 미국으로 다시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렇게 정말 연락이 끊겼다. 살다 보면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Sometimes, people drift apart. 자연스럽게 서서히 멀어지는 것을 drift apart라고 하는데 정말 그랬다.
아이들을 낳아 키우는 동안 선생님과 공부했던 교재들을 가끔씩 들여다보곤 했다. 그러다 선생님이 발음에 관한 책을 출간했다는 것을 우연하게 알게 되었다. '발음을 부탁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을 보면서 얼마나 놀랍고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렇게 다시 연락이 닿았고 샤론 선생님이 진행하시는 라이브 방송에도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성인을 대상으로 무료 발음 코칭과 유료 발음 수업을 진행하면서 간간히 인스타로 라이브 방송도 했는데, 발음 특강 후에는 한 명씩 초대해서 동화책을 읽는 시간을 가졌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나는 당당하게 읽기에 참여하겠노라고 응했고 그렇게 그 겨울 방학 때 인스타 라방에 참여하게 되었다. 선생님이 주신 지문은 그리 길지 않은 A4 반 정도의 길이였다. 옆의 원어민 선생님에게 한 번 들어봐 달라고 했더니 이 정도면 무난하다는 평을 받았고 그래서 자신 있게 임했다. 아아. 그런데 읽는 중간중간 선생님 표정이 살짝 안 좋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선생님의 피드백이 잘 기억나던 15년 정도 전 시절의 몇몇 단어들은 칭찬을 받았지만 나는 느꼈다. '이건 아니야.'라고.
그 정도로 안 좋았던 것일까? 라방은 보통 재방이 걸리니까 후에 다시 들어 보았다. 알겠다. 아주 심하게 못 읽은 것은 아니지만 한국식 모음과 자음의 그 소리가 들린다. 그러니 정확도를 추구하는 선생님의 기준에 못 미쳤던 것이다. 단순 영어 낭송도 아닌 발음 수업인데!!! 그 정확한 위치를 나는 잡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영어를 놓았던 십여 년 그 사이에 나도 모르게 서서히 한국화 된 영어 발음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원어민 친구는 나에게 계속 그 정도면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은 조금 알고 있었다. 괜찮은 것이지 잘하는 것은, 완벽한 것은 아니라고.
그래서 하루에 하나씩 외우는 영어 프로그램을 시작한 지 일 년 정도 지나고, 나는 큰 맘을 먹고 선생님의 발음 수업을 듣기로 했다. 나를 위해서 선듯 결제하는 것은 별로 없던 시절이었다. 온라인으로 하는 수업이었기에 가능했다. 미국에 있는 선생님과 다른 수강생들과 함께 열심히 공부를 했다. 발음 수업이니까 물 컵을 옆에 놓았다가 실수로 엎으면서 노트북을 날리기도 했다. 물에 젖은 노트북보다 수업에 못 들어갈까 초조한 마음이 컸다. 핸드폰으로 서둘러 접속해서 공부한 후에 노트북을 돌아보았으니 그 사이 다 젖어버려 복구하는데 애를 먹기도 했다.
그 정도로 열심히 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다시 발음을 팠다. 예전 중학생 때 했던 것보다 더 힘들었지만 더 재미도 있었다. 그렇게 발음을 만들어가면서 내 소리에 대한 민감성도 높여갔다. 단순히 내가 만들어내는 발음뿐만이 아니라 미드나 영화에서 나오는 발음의 소리도 함께 신경 써서 들으면서 듣기 실력도 키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발음을 배우려는 궁극적인 목적은 말하기 실력을 키우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더 중요한 듣기 실력의 향상이었다.
또 유튜브 영상을 찍기 시작하면서 조금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욕심도 있었다. 어딘가 어색한 내 발음을 조금 더 정확하게 만들어서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발음 수업을 듣기 전 제일 초반의 유튜브 영상을 보면 정말 어설픈 모습은 물론이거니와 발음도 여기저기 어색한 것들이 많아 보인다. 알기는 아는데 어디를 어떻게 고쳐야 할지 난감할 때 객관적으로 듣고 맞춤식으로 주어진 피드백은 정말로 단비 같았다. 한참 수업을 열심히 들을 때는 실제로 더 자연스럽게 잘 나오기도 했다. 후의 영상들을 보면 원래의 발성과 발음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어색한 부분이 줄어든 것이 확연히 보인다.
샤론 선생님의 엄격한 기준에 통과하기 위해 몇 번을 재시험을 봤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될 때까지 무한 반복 수강을 보장한다고 하셨는데 그렇게까지는 되지 않고 다행히 한 번의 수강과 한 번의 시험으로 통과했다. 이것으로 끝일까. 그건 아니었다.
한 번 통과했다고 다 된 것은 아니고 다음 단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기본이었던 단어와 짧은 문장을 읽는 단계를 넘어갔으니 이제는 적당한 길이의 지문을 읽으면서 자연스러운 읽기 연습을 하는 순서였다. 내 친구는 굳이 그렇게까지 발음을 파야 하느냐고 했지만 나는 계속 잡아가고 싶었다. 친구는 도대체 네가 이렇게까지 하는지 수업을 한 번 보고 싶다고 했다. 나중에 한 번 곁에서 보더니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알겠다고는 했다.
이 수업은 많이 듣지는 못했다. 새 학년이 시작되면서 부장이 되었고 동시에 맡은 일들은 많아지는데 시차로 인해 수업 시간이 겹쳤다. 아쉬운 마음으로 남겨두어야 했다. 이제 막 발음을 다시 제대로 잡아가기 시작했는데 아까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굳이 발음을 비싼 돈을 들여가면서 교정하고 잘하려고 노력해야 하는가? 이 생각이 당연히 들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반기문 전 유엔총장님의 예를 든다. 발음이 좋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다. 이 부분은 다음 글에서 조금 더 다루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