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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Oct 21. 2024

발음 공부, 해 두면 좋은 이유

영알못이던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접한 영어발음은 영어를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한국어의 자음이 영어의 자음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지만 모음조차 그렇게 다를 줄은 몰랐다. 영어의 모음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안 쓰던 혀와 입술의 근육을 움직여야 했다. 쥐가 날 정도로 쉽지 않았다. 우리말의 [이] 모음은 하나이다. 하지만 영어 단어 핑크와 그린은 한국말로 동일하게 [이] 소리로 적는다고 발음이 같지는 않다. 핑크pink의 i는 입을 보다 둥글게 모아 [에]에 가까운 [이] 소리이고 그린green의 ee소리는 [이이]하고 입술을 보다 옆으로 길게 찢으면서 눌러서 내는 소리에 가깝다. 그린을 핑크와 동일한 [i]모음으로 소리를 낸다면 단어 자체가 달라진다. 싱긋 웃는다는 의미의 grin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습관적으로 한국어 자모음이 나오는 단어들이 많이 있다. changed를 발음하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어렵다. change는 그나마 낫다. [췌인쥬]와 [췌인지] 사이 중간 정도 발음이 될 것이다. 그런데 changed는 자꾸 [췌인쥐드]로 발음하게 되는 것이다. 이 'ed' 발음이 그토록 어렵다는 것을 나는 몇 년 전에야 알았다. 아무도 나에게 틀린 발음이라고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후에도 이 발음을 고치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하다 못해 친구가 과장해서 들려주고 난 후에야 내가 잘못된 발음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이 발음 앞에만 서면 마음이 초조해지고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본적으로는 의사소통을 위해서이다. 그래서 외국어는 도구 교과이지 목적 교과가 아니다. 한국에서는 영어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렸기에 영어 공부가 힘들고 재미 없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겨 버린 것이다. 하지만 도구가 된다면 그 때는 달라진다. 이 도구를 사용하여 얻을 수 있는 목적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이 도구를 갈고 닦고 싶어지는 것이다. 좋은 후라이팬과 좋은 재료를 사용하면 더 맛있는 음식을 더 쉽고 편리하게 만들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영어를 했어도 외국인들과 이야기를 할 때 가끔 "What?"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또 잘못된 표현을 썼거나 틀린 발음으로 말했구나 싶어서 빠르게 재정비하고 다시 말한다. 문법도 표현도 오류가 없는데 못 알아듣는다면 그것은 백퍼센트 발음과 억양의 문제이다. "OH~! You mean this! (아아~! 이거 말이구나!)"하면서 다시 정확한 발음으로 말할 때면 순간 빠직하는 내 머릿속 소리가 들린다.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더 다져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우리 말로 '의의'라는 단어를 딸들이 말하면 나는 가끔 못 알아 들었다. [위위]라고 말을 했기 때문이다. [으이이] 정도로만 했어도 알아들었을 텐데 유독 [의] 발음을 이상하게 말했다. 아이들에게는 이 [의] 발음이 어렵다는 것을 아이를 키우면서 알았다. 내가 못 알아듣고 자꾸 물어보니까 아이들은 짜증을 냈고 나는 한참만에야 이해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대화의 맥은 끊겨 버렸고. 마찬가지다. 우리 말에도 고유한 소리가 있듯이 영어에도 고유한 소리가 있다. 결국 발음을 공부한다는 것은 그 고유한 소리를 인지한다는 것이고 이는 의사소통의 가장 기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론 나라마다 지역마다 억양이 다르다. 미국인 친구는 자신은 남아공 영어 발음이 알아듣기 쉽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인도 영어의 그 독특한 영어 억양과 발음을 넷플릭스 시리즈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사실 인도 영어는 미국이나 영국 영어보다 더 알아듣기 쉽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더 또렷한 악센트가 있기 때문인데 그래서 또 기존의 것과 달르기에 안 들리는 단어들이 있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독특한 억양과 발음이 만들어진 영어들은 그 나라에서 '공용어'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영어는 공용어가 아닌 '외국어'이다. 그렇다면 다양한 변주를 익히기 전에 먼저 가장 기본이 되는 표준 발음을 배우는 것이 맞다. 대표적으로는 영국 발음과 미국 발음으로 나눠지겠다. 물론 지역마다 다 다르겠지만 그 중에서도 표준 발음으로 규정되는 발음을 익히는 것이 맞다.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때 지역 방언의 억양과 발음을 기본으로 가르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앞에서도 적었지만 미국식 발음 한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사투리, 지역 방언이 존재하는 것처럼 미국도 물론 그러하다. 미국 북부 시골지방에 있을 때는 그들 특유의 다소 느리면서 둥글한 발음이 느껴진다. 영국식 영어도 다양한 발음이 존재하고 호주와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등 정말 다양하다. 그러니까 꼭 미국식 영어 발음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한 가지를 정하면 그것을 일관되게 지키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정확한 발음을 인지하게 되면 듣기 실력이 향상이 되고 정확한 듣기는 또 말하기 실력의 향상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정확한 소리로 말할 때 나의 전달력은 보다 높아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된다면 대화를 할 때 "Pardon me?"와 같은 질문이 반복되어 맥이 끊기는 일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나는 평생 외국인을 만날 일이 없다거나 만나도 일회성이니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진다면 강권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이왕 영어 공부를 하기로 했다면 그래도 한 번은 발음에 신경을 써서 해 보면 좋겠다고 여겨지는 것이 내 생각이다. 굳이 외국인과의 대화 목적이 아니어도 발음을 배워두면 좋다. 영화나 미드를 볼 때 들리는 범위가 얼마나 달라지는 지 확실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자막을 보기 귀찮아서, 혹은 화면에 집중하고 싶어서 영어를 잘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 역시 그 말이 맞다고 느낀다. 확실히 듣기에서 더 많은 자유를 얻게 된 다음에는 굳이 자막을 확인하기 위해 시선을 아래를 내렸다 올리는 일을 반복하는 횟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그로 인해 더 편하게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물론이다. 


또 발음이 정확해지면 영어 공부가 더 즐거워진다. 우리말로 책을 소리내어 읽어도 어눌하거나 부정확하게 읽는다고 생각해 보면 된다. 그 발음을 어느 정도는 감내하더라도 계속 듣고 싶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확하고 적절하게 읽는 낭송이나 들려주는 이야기는 자꾸 듣고 싶어진다. 잘 생각해 보면 보인다. 외국인이 한국말을 할 때 정확한 발음으로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과 다소 불분명한 그들의 자모음 특성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것 중 어느 편이 더 편안하게 다가오는지를 말이다. 외국인이 한국말을 잘하면 처음에는 놀랍고 신기한 정도의 감탄이 먼저 들지만 나중에는 그 호기심의 영역을 넘어서 편안한 의사소통을 하기가 더 쉬워지는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계속 연습하면서 실제에 가까운 영어 문장과 텍스트를 만들어가는 것은 생각보다 즐거운 작업이다. 플러스로 자기효능감과 자기만족감에 더해서 자신감 역시 높아진다. 결국 공부는 즐거워야 한다. 내가 발음이 달라도 괜찮고 만족스럽다면 거기서 머물러도 좋다. 하지만 이왕 하는 영어 공부 조금 더 한 단계 높여 보고 싶으다면 거기에 발음 공부 한 자락 더 얹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너무 발음에 매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이왕 하려면 좀 더 정확한 발음으로 조금 더 실제에 가까운 발음으로 좀 더 전달력이 있도록 하면 좋지 않을까? 내 발음이 부정확해서 자꾸 상대가 "What?" 하고 물어보는 것이나 그로 인해 대화가 끊기는 것이 좀 많이 불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좀 더 잘하고 싶어졌던 이유이다. 


또 발음도 컨디션을 탄다. 굳이 발음만 그러랴마는 아무래도 소리로 나가다 보니 조금 더 표시가 난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문장 구사도 더 자연스럽고 발음도 더 정확했는데, 피곤하고 힘든 상태에서는 발음을 버벅거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쉬운 단어도 잘 생각이 안 났다. 그럼에도 기초를 단단하게 다져두면 이런 컨디션을 타는 것이 더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가끔 영어가 잘 안 될 때 나는 쉬운 문장 영상이나 발음 지도 영상들을 보면서 입근육을 풀어준다. 쉽고 간단한 단어를 반복해서 정확하게 따라하려고 노력하다보면 슬슬 영어 쪽 뇌가 가동되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게 조금씩 풀면서 다시 다잡아 본다. 발음이 절대적이지는 있지만 그럼에도 꼭 필요한 것은 맞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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