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이후 지금까지 영어원서를 대략 50권 정도는 읽은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읽은 얇은 챕터북들은 제외했다. 모국어가 아닌 책은 확실히 완독 하기에는 제약이 있다. 한국어 책은 뜻을 몰라도 그냥 넘어가는 단어들도 많은데 이상하게도 외국어로 된 책은 눈에 걸리면 거기서 멈추게 된다. 아무리 익숙해진 것 같아도 역시 남의 나라 말은 남의 것인지라 읽는데 힘과 노력이 조금이 아닌 훨씬 더 많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모국어인 우리나라 말로 된 책도 끝까지 읽기 힘든데 외국어인 영어는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서를 끝까지 읽고 그 감동을 느끼고 싶다면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원서를 읽을 때 어려운 단어나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냥 흘려보낸다. 페이지에 한 두 단어 정도로 거의 없다면 찾아보는 것도 괜찮겠지만 한 문단에 두서너 개씩 계속 나오는 단어를 찾다가는 결국 지쳐서 책을 덮게 된다. 특히나 소설과 같은 문학 작품의 경우는 죽죽 흘러나가야 이야기가 전개되는 재미에 빠져서 읽게 되는데 그러기 전에 지쳐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웬만한 단어는 그냥 넘어가도 괜찮다.
또 하나는 흥미진진한 책이나 자극적인 소설을 읽는 것이다. 물론 고전문학이나 뉴베리 수상작 같은 책 중에서도 줄거리가 흥미진진해서 손에서 떼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해리포터가 처음 나왔을 무렵, 한글판으로 먼저 읽고 반해 버린 나는 원서로 읽기 시작했다. 번역본이 출간되기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 원서가 출간되면 바로 구입해서 읽었다. 뒤로 갈수록 두꺼워지면서 모르는 단어는 엄청나게 쏟아졌지만 상관하지 않고 읽었다. 너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만나는 것은 큰 행운이다. 모든 책들은 고유의 재미와 즐거움이 있지만 내가 말하는 자극적인 책들은 대부분 이런 고전 필독서에는 빠져 있다. 최근에 손에서 떼지 못하고 며칠 안에 다 읽은 책은 콜린 후버의 베리티이다. 딸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은, 어른들이 읽으면 재미있을 자극적인 소설이지만 그만큼 재미있었다. 마치 옛날 옛적 부모님 몰래 숨 죽이고 읽었던 시드니 셀던의 소설들 같았다. 한글로 되었다면 하루 이틀이면 다 읽었을 텐데 영어라서 역시 일주일은 걸린 것 같다.
나는 공포물은 못 보지만 스릴러는 좋아한다. 또 로맨스나 판타지도 좋아한다. 이런 스릴러에 법정스토리나 짜릿한 로맨스가 적당하게 섞인 책들이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탐정물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공상과학이 취향인 사람도 있으며 잔잔한 로맨스물이 좋은 사람도 있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책을 원서로 읽어 보자. 그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한 마음에 모르는 단어 따위는 그냥 건너뛰고 책에 푹 빠져 읽다 보면 어느 사이 원서 읽기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나를 보게 된다.
빠른 속도로 읽는다면 내가 추구하는 슬로우 리딩과는 다른 것이 아닌가 싶지만 일부 책들은 속도가 관건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빠르게 읽는다고 다 놓치는 것은 아니다. 보통 작가들은 자신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 있다. 단어를 가능하면 다채롭게 사용하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다 보면 그 작가가 반복하는 표현들이 눈에 띈다. 그러다 보면 그 표현들을 또 나의 것으로 만들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혼자서는 아무래도 힘든 사람에게 추천하는 방법으로 함께 읽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친구와 함께 읽는 것도 좋지만 독서 모임에 가입하는 것을 제일 권하고 싶다. 찾아보면 생각보다 원서 읽기 모임이 많이 있다. 친구와 읽으면 편하고 좋지만 내가 해 보니 하다가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래서 이와는 별개로 독서 모임을 추천한다. 당시만 해도 마땅한 모임을 몰라서 내가 만들었지만 그 후에 여기저기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리더의 위치에 따라서 회비가 조금 센 곳도 있고 무료인 곳도 잘 찾아보면 있다. 나는 처음에는 무료로 하다가 얼마 전부터는 자기 책임비로 만 원의 회비를 받고 완독 후에는 환급하는 형태로 진행하기 시작했다. 초반에 원서를 읽으시겠다고 친구분들까지 함께 오신 것은 너무 좋았는데 결국 끝까지 한 번의 인증도 안 하신 분들이 많이 계셔서 몇 년을 고민하다가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회비나 강퇴 규정이 있는 모임의 경우는 반강제성이 있어서 조금은 더 진지하게 책을 읽을 수 있게 된다.
독서모임은 오프라인부터 온라인까지, 단톡방의 형태도 있고 밴드나 카페 등 형식은 다양하다. 그곳에 수시로 올라오는 인증이나 독서 이야기를 보면 잊고 있다가도 아차 싶은 마음에 책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된다. 혼자서는 나중으로 미루게 되는 책도 함께니까 손에 조금 더 잡고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반은 의무감에서라도 책을 펼치고 책장을 넘기다 보면 책이 주는 매력에 빠져서 계속해서 읽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이겠지만 나 혼자서 감동을 적는 것보다는 다른 이들과 함께 감동을 나누는 것이 훨씬 더 풍부하고 오래간다. 서로 다른 시야에서 보는 것도 관점을 넓게 만들어 준다.
같이, 따로. 함께의 속도와 개별의 속도를 조정해서 가다 보면 나만의 페이스를 찾게 된다. 혼자 끝까지 읽기 어려운 책들은 함께 읽는 도움을 받아가면서, 그리고 조금 더 쉽고 편안한 책들은 혼자서 스스로 읽어 보다 보면 완독 한 책들이 하나하나 책장에 추가된다. 그 책들이 늘어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또 소소한 기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