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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글나눔 Oct 05. 2021

오징어게임 in 조선

배경이 조선이었다면 무슨 놀이가 좋을까?

*게임 종류가 포함되어 있는 스포일러 주의*


어린시절 즐거웠던 놀이를 잔혹동화로 바꾸어버린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열풍이 뜨겁다. 데스게임 장르의 클리셰를 따르기에 친숙하면서도 형형색색의 세트장, 단조로우면서 기괴한 느낌의 리코더 OST와 같은 새로움이 더해져 앉은 자리에서 모든 에피소드를 몰아보게 하는 흡입력이 있다. 물론 배우 개개인이 가지는 매력은 말할 것도 없고.


드라마를 보면서 어릴 때 했던 놀이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뽑기(a.k.a 달고나)는 납작하게 누른 것 보다 설탕 접시에 탁 하고 털어내 계란처럼 동그란 모양으로 먹는 걸 좋아했다. 식감이 좀 더 포슬포슬하다. 설탕덩어리에 설탕가루를 묻혀 먹는 완벽한 길티 플레져. 우리 동네는 오징어보다는 짬뽕을 많이 했었는데 고무 공도 멀리 던져야하고 몸싸움도 있어서 여자 아이들은 껴주지를 않아 재미있어보이지만 할 수는 없었던 선망의 놀이로 기억에 남아 있다.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옛 기억이 절로 소환되었을 것 같다.


오징어게임의 배경을 조선시대로 가져온다면 어떤 놀이가 어울릴까?


첫 번째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는 단체전인데다가 절반에 가까운 사람이 떨어져야 하니 '석전(石戰)'이 좋겠다. '석전(石戰)'은 단오나 정월 대보름 때 하던 돌던지기 패싸움이다. 처음은 전쟁을 대비해서 싸움을 잘하는 장사를 뽑기 위한 겨루기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후로는 연초에 이 패싸움에서 이겨야 한 해 운수가 좋다는 믿음이 생기면서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목숨걸고 싸우는 '놀이'가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부상당하거나 가끔은 죽는 이도 생길 정도로 과격한 싸움이었으니 첫 번째 게임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每於月元。隊左右。角彼此。手以石。石以戰。衆石交投。雨下霰集。惟雌雄是決。限月盡乃已。捷則辦一年之吉。否則凶。其所以力于戰而不知止者。一年之吉凶。動其心也... 乃敢血頭顱。肉肌膚。使之裹頭裂足。喪氣褫魄。顚縮於溝壑而不敢喘。然後快於心。揚揚然曰。吾其勝矣。

매년 정월 보름이면 좌우로 편을 갈라 각축전을 벌이는데 손에 돌을 들고 돌로 싸운다. 돌 무더기를 서로 던지며 비가 내리듯 싸락눈이 쌓이듯 오직 자웅을 겨루기를 한 달이 다해야 그친다. 이기면 한 해가 길하고, 지면 흉하니, 힘써 싸우면서 그칠 줄 모르는 까닭은 한 해의 길흉이 마음을 움직여서이다....... 머리가 깨져 피가 나고, 살갗이 찢겨 속이 드러나니 상대가 머리를 싸매고 발이 갈라져 넋이 나가고 혼이 빠져서는 도랑에 쪼그리고 앉아 숨도 못쉬게 만든 뒤에야 마음이 시원하여 의기양양하게 말하기를 "내가 이겼다." 한다.  

《졸옹집(拙翁集)》 석전설(石戰說) 홍성민(洪聖民, 1536~1594)

영국 화보 주간지 '그래픽'에 실린 석전(石戰) 화보

*참고기사: 용맹의 전통놀이 석전이 금지되다


두 번째 게임

‘설탕뽑기(a.k.a 달고나)’ 는 개인전인데다가 뽑는 운도 작용해야 하니 ‘투호(投壺)’가 괜찮을 것 같다. 투호는 병에 화살을 던져 집어 넣는 놀이인데 옛 경서에도 나와있기 때문에 선비들도 즐겨했다. 그림은 나무 밑에서 투호를 즐기는 모습을 그린 신윤복의 '임하투호(林下投壺)'.


"다음 중 하나를 골라 줄을 서시오."

o, oo, oOo, OOO

각자 고른 모양은 투호의 입구 모양. 총 4개의 화살이 주어지고 그 중 하나라도 병에 던져 들어가면 성공.

임하투호(林下投壺)_신윤복

세 번째 게임

'줄다리기' 는 조선시대에도 있었던 게임이니 그대로 가도 좋겠다.

줄다리기(繂曳율예)

발꿈치 굳게 디딘 채 일제히 목을 뒤젖히는데
얼굴을 들어도 밝은 달은 눈에 안 들어오네
千趾錯植項齊彎
仰面不見天月明
..
당사자는 마치 생사를 결판 짓는 듯하니
구경꾼들 미처 승부를 논할 겨를 없네
當下若將決生死
傍觀未暇論輸贏

홀연히 산이 무너지듯 웃음소리 터지면
줄과 깃발 늘어뜨린 채 패잔병을 끌고 가네
忽如崩山笑不休
轍亂旗靡曳殘兵

《매천집(梅泉集)》 상원의 잡영(上元雜咏), 황현(黃玹, 1855~1910)


네 번째 게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구슬치기’.  마음이 맞는 친구, 심지어 부부까지 갈라 놓은 잔인한 게임. 1:1 승부이면서 상대의 협조가 있어야하고, 죽어라 할 수도 있지만 양보를 할 수도 있어야 한다면 널뛰기(跳板)가 어떨까. 널판지의 길이에 따라 몇 미터는 족히 솟구칠 수 있으니 아찔한 긴장감도 더해진다. 한 사람이 균형을 잃고 널판에서 떨어지면 탈락. 죽어라 뛰는 무뢰배 덕수, 다리 힘도 없는 일남 어르신을 굳이 널판 위에 세워야 하는 기훈,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살포시 뛰다가 슬쩍 발을 내려놓는 지영.. 흑…


이웃집 여자아이들 판교 서쪽에서 널을 뛴다네
언니는 높이 오르고 동생은 낮으니
제 힘이 모자란건 생각도 않고
맞추기 어렵다고 언니한테 투덜거리네
隣丫跳板板橋西
阿姊全高阿妹低
不念兒家身忒健
喃呢罵姊苦難齊
《담정유고(藫庭遺藁)》 상원리곡(上元俚曲), 김려(金鑢, 1766~1821)

김한용 작가의 작품집 중

다섯 번째 게임

'유리 징검다리 건너기'. 무엇 보다 순서가 중요했고, 잘못 된 선택을 했을 때 생각할 틈도 없이 떨어져 내리는 속수무책의 참가자들을 보며 모골이 송연해졌었다. 조선시대에 비슷한 놀이로는 다리밟기(답교踏橋)가 있다. 물론 빠지는 걸 즐기는게 아니라 '튼튼한' 다리(橋교)를 밟으면서 일년 내내 다리(脚각)에 병이 생기지 않기를 기원했던 정월 대보름 풍속이다. 서울에서는 주로 청계천의 광통교와 수표교가 다리밟기 명소로 알려져 이날 밤이면 사람들이 가득했다고 한다. 다리병은 둘째치고 이날은 통행금지까지 풀어주니 신나게 야행을 즐길 수 있는 좋은 핑계가 되어 남녀노소가 쏟아져 나왔을 당시의 열기가 상상이 된다. 물론 잔혹한 게임 속에서의 다리는 푹푹 빠져 떨어지는 함정이 가득하겠지만.

그림은 대보름 야간 다리밟기 모임을 그린 ‘상원야회도’ 인데 청계천박물관 ‘도성 제1의 다리 광통교’ 온라인 전시에서 볼 수 있다. Link (전시기간: 2021.06.10~11.07)


여섯 번째 게임

원래 '오징어게임'은 여러 명이 하는 놀이인데 남아 있는 참가자가 둘 뿐이라 단촐한 격투게임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땅에 그림을 그려놓고 하는 놀이 중에서 나름의 긴 역사를 가진 것은 ‘망차기(돌차기, 목자치기, 사방차기..)’가 있고, 비슷한 것으로 좀 늦게 들어온 망줍기가 있다. 정해진 이름이 없다보니 지역별로 부르는 이름도 가지가지였고 문헌으로 남아 있는 기록은 없지만 아이에게서 아이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니 일종의 구전놀이라고 해야 하나. 요즘은 동네 놀이 문화가 많이 없어져서 '전통놀이' 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묶여 보호받는 신세가 되었다.


망이 금 밖으로 떨어지면 탈락

남의 땅을 밟으면 탈락

선을 밟으면 탈락

한 발로 밟아야 할 곳을 두 발로 밟으면 탈락

탈락의 의미에 따라 얼마든지 살벌해 질 수 있는 망줍기

길 가다 마주친 망줍기

오징어게임을 찍으면서 이가 6개가 빠졌다는 감독의 치아건강을 생각한다면 시즌1으로 그저 만족해야겠지만 워낙 전세계의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보니 시즌2의 제작도 기대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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