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에 대학을 다닌 친구의 이야기다. 70년대의 대학은 민주화 투쟁으로 얼룩졌다. 끝없는 데모로 수업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똑똑한 학생들은 운동권으로 활약했다.
당시에는 민주화 운동이나 민족 해방 같은 거창한 사회적 구호에 밀려 개인적 낭만이나 연애 따위는 사치스럽고 소시민적 감상으로 지탄되었다. 남녀 간의 연애는 조심스러웠고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 했다. 작은 캠퍼스에서의 연애는 비밀스럽게 할 수밖에 없었다.
지방에 있는 국립대학의 민주화 투쟁은 전국적으로 유명했다. 그런 화염 속에서도 사랑은 피어나는 신비한 힘이 있었다. 친구는 국문과에 다니는 얌전한 학생이었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던 부모님의 외동딸인 그녀는 하얀 얼굴과 조용히 웃는 모습으로 눈에 띄지 않던 모범생이었고 부모님의 자랑이었다.
아무리 숨겨도 사랑은 사람을 빛나게 했다. 친구의 평범한 모습이 어느 날부터 눈에 띄게 예뻐지기 시작했다. 무언가 알 수는 없지만 그녀에게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같이 사진을 찍어도 친구의 모습이 제일 예쁘게 나와 우리들은 무슨 일이 있느냐고 자백을 강요했다. 친구는 손사래를 치며 아무 일도 없다고 부인하였다.
어느 날, 수업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던 강의실 앞문이 삐그덕 열리면서 교수님 대신 작은 체구의 어른이 머리를 내밀었다. 친구의 아버지였다.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 않는 딸을 기다리다 못해 학교로 찾아온 것이었다. 정신이 나간 듯 딸을 찾는 아버지의 모습이 가슴 아팠다. 그러면서 친구의 연애 이야기가 퍼져 나갔다.
친구는 철학과의 운동권 주동이었던 남학생 선배와 비밀 연애 중이었다. 세상 얌전했던 친구는 갑자기 찾아온 사랑에 눈멀고 귀먹어 온 천하에 사랑의 행각을 들키고 말았다. 처음 당하는 사랑에 너무 순진하여 감추는 재주가 없었던 것이다.
3학년 종강날, 친구는 국문과와 철학과의 모든 교수님과 친구들을 초대하여 성대한 약혼식을 치렀다. 우리는 흥분하여 목욕재계하고 미용실에 가고 새 옷을 마련하는 요란을 떨며 약혼식에 참석하였다. 지금도 그날 친구가 입었던 분홍색 한복과 올림머리 옆에 꽂았던 머리 장식이 눈에 선하다.
4학년 졸업을 앞두고 친구는 결혼하였다. 남편 될 사람은 데모와 감옥 가기를 밥 먹듯 하여 졸업도 못한 형편이었다. 친구는 먼 지방으로 발령받아 교사를 하면서 시댁의 생계를 책임졌다. 첫아기를 낳았을 때도 남편은 감옥에 있었고 친구는 혼자 아기를 낳았다.
결혼이나 출산 등 모든 것이 친구들 사이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친구의 일은 우리 모두의 일이었다. 아기를 낳았다는 소식에 친구의 집을 찾았다. 친구는 갓난아기를 뉘어놓고 시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을 받고 있었다. 미역국에 간장만 놓인 단출한 밥상이었다. 아직 처녀로 한참 발랄했던 우리는 핼쑥한 얼굴의 친구가 미역국에 간장을 찍어 먹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삼켰다.
그 후, 친구의 가시밭 결혼생활은 계속되었다. 시댁의 경제를 도맡아야 했고, 감옥에서 나온 남편의 뒤늦은 학업을 도와야 했다. 시동생과 시누이들의 학업과 결혼까지 책임지는 가냘프지만 무거운 가장이었다. 그래도 시간이 흘러 영민했던 남편은 공부를 계속하여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었다. 그 사이에 3명의 자녀들이 생겼고 친구가 주말에만 올라오는 동안 시어머니가 살림과 육아를 도맡아서 짭짤하게 살아내면서 어려운 고비를 넘어갔다.
세월이 흘러 옛날이야기를 할 때, 친구의 아버지가 학교에 찾아오셨다는 이야기를 하자, 그때는 무엇에 홀린 것 같았다고 했다. 그날도 저녁밥을 하려고 수도가에서 쌀을 씻다가 남자친구가 찾아오자 그대로 두고 따라 나간 것이었다고 했다.
결혼생활이 어려웠지만 그런 것이려니 했다고 했다. 고달팠지만 한 번도 남편과의 결혼을 후회하지 않았다고 했다. 살림하시는 시어머니가 어려워서 무엇을 먹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았고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아서 불평을 할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참으로 착하고 유순한 친구였다.
긴 세월의 강을 건너 함께 은퇴하여 같이 늙어가는 남편은 선천적 지병과 감옥 생활의 훈장으로 남은 병 때문에 거의 매달 병원을 출입하고 입원을 한다. 그렇지만 친구는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다고 했다.
만남의 신비, 그때는 그 만남이 부부라는 원팀이 되어 50년이 넘는 세월의 바다를 같이 항해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세상의 그 많은 사람 중에 내 사람으로 찾아온 신비한 순간의 마법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