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란 내 삶 속에 상대방이 끼어드는 것이다. 상대방의 삶 속에 내가 끼어드는 것이다. 생판 모르는 남남 중에서 한 사람이 눈에 들어오고 서로의 삶 속으로 끼어들면서 각자의 삶이 우리의 삶이 되는 것이다. 끼어드는 것이 나와 상대방의 전 인생을 거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무모하게 끼어들었을까.
부부의 만남은 생각할수록 신기하고 신비롭다. 지역을 초월하고 나이를 초월하고 환경을 초월한다. 경기도에서 낳고 자란 남자와 전라도를 벗어난 적이 없는 여자가 어떻게 부부가 될 수 있을까? 서로의 지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잡을 때까지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만나서 결혼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그냥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원대하고 큰 비밀이요. 신비이다. 사람의 계획과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남자는 식량생명공학을 전공하였다. 박사학위를 받고 외국으로 연수를 나간 재원이었다. 착실하고 성실하여 그곳 연구소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의를 받고 있었다. 한국에 있는 회사에서 파견되어 나온 여자와 교제 비슷한 만남도 갖고 있었다. 편하고 좋은 사람이었지만 떨림은 없었다. 순진했던 남자는 이성 간의 만남과 느낌이 이런 건가 하면서 만났다. 머나먼 이역에서 그나마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는 지도 교수님이 들어오라는 콜을 계속하셨다. 교수님의 말씀을 좇아 귀국하게 되었고 그 파견 여성도 회사로 복귀하여 서울에서의 만남이 계속되었다. 자기의 감정이 사랑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던 남자는 선배에게 물어보았다. 특별한 감정이 별로 없는데 모두 다 이러는 거냐고. 선배는 떨림이 없으면 사랑은 아니라고 했다. 상대 여자도 그렇게 큰 아쉬움은 없었던지 잠깐 만나던 인연으로 끝나게 되었다.
남자는 집과 가까운 수원에 있는 연구소에 입사하였다. 처음 연구실로 출근하였을 때, 남자는 먼저 와 있던 여자를 보게 되었다. 여자는 남쪽인 광주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하고 6개월 계약직으로 근무 중이던 농업연구사였다.
그런데, 남자는 출근한 지 일주일이 안 되어 여자에게 끌리는 감정이 이전의 여자에게 있던 감정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선배가 말하던 대로 떨림이 있고 계속 관심이 가고 퇴근하기가 싫고 주말이 싫어지는 것이었다. 남자는 처음 겪어보는 자신의 감정에 놀라 이것이 사랑이란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문제는 고백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될 일이 아니었다. 먼저 나이가 7살이나 많았다. 지역적 문제도 상당히 있었다. 여자가 자기 같은 남자를 원하는 지도 알 수 없었다. 내세울 것도 없고 숫기도 없어 끙끙 앓던 남자는 우연히 여자의 수첩에서 바라는 남편상을 적어놓은 메모를 보게 되었다. 그 메모에는 재력이나 학력 등의 요소는 전혀 없었다. 다만, 성실하고 자신을 감싸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을 기다린다는 내용이었다.
남자는 거기에 힘을 얻어 여자에게 자기의 마음을 고백하였다. 3개월 밖에 남지 않은 여자의 근무 기간도 마음을 급하게 하였다. 여자는 남자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전과 다르게 차갑고 쌀쌀하였고 거리를 두는 게 역력했다. 어색한 채로 시간은 흘러갔다.
여자는 계약 기간이 끝나자 짐을 정리하여 고향으로 내려간다고 하였다. 남자는 마지막 호의로 이삿짐을 날라주겠다고 했고 여자는 마지못한 듯 동의했다. 이삿짐을 남자의 차에 싣고 함께 탄 차의 공기는 쑥스러웠다. 남자는 자기의 성급한 고백에 대해 사과하였고 좋은 동료로 지내자고 마무리하였다. 여자도 그러는 게 좋겠다고 하였다. 여자의 집에 도착하여 이삿짐을 내려주고 남자는 여자와 마지막 악수를 하고 돌아섰다. 돌아오는 내내 아쉽고 서운하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후 간간이 안부를 주고받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렇지만 남자는 여자가 보고 싶으면 한 번 밖에 가보지 못한 여자의 집을 찾아서 퇴근하는 여자의 모습을 몰래 바라보고 돌아오기를 반복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여전히 혼자서 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전화를 받았다. 여자의 아버지였다. 와서 차나 한잔 마시고 가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집 주변을 배회하던 남자를 여자의 집에서는 모두 알고 있었다.
그렇게 허락받은 교제 끝에 두 사람은 결혼했다. 남자의 직장이 전주 쪽으로 옮겨지면서 두 사람은 광주에 자리 잡게 되었다. 여자를 알기 전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광주에서 살게 되었다. 자신의 계획이나 생각 속에 없었던 방향으로 인생이 방향을 튼 것이라 생각하였다.
신기한 일이었다. 두 사람이 3개월이라는 한시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평생을 함께 할 배우자를 만날 것이라는 것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인간의 계획으로 가능한 것이겠는가. 돌이켜 생각해도 불가사의한 일이었고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가 두 사람을 그 시간에 그 장소에 있게 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결혼하여 토끼 같은 딸과 아들을 낳고 잘 살던 두 사람은 인생의 큰 고비를 지나고 있다. 남편이 아파서 상당히 큰 수술을 받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자기들이 신의 섭리에 의해 만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은 결혼식 때 했던 약속과 맹세를 기억하며 이 고비를 잘 넘어가자고 서로를 격려한다.
'평안할 때나 괴로울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부요할 때나 가난할 때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남편과 아내로서 사랑과 책임을 다할 것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 서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