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것이 남녀 간의 사랑이다. 사랑에 빠졌을 때는 어떤 것도 막지 못한다. 말릴 수 없다. 홍수로 세차게 흘러가는 강물이나 온 천지가 고립되는 폭설도 건너가고 넘어간다. 결과에 상관없이 나아가는 것이 사랑이다. 눈멀고 귀먹은 채 전진하는 저돌적인 사랑 때문에 남녀 간의 결합이 이루어진다. 뜨겁게 불타올랐던 사랑의 잔재와 여운이 평생을 이끌어 가는 결혼생활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자 남자는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서원하고 평신도 선교사로 네팔로 떠났다. 돌아올 기약이 없는 떠남이었다. 남자는 네팔에서 그곳 사람들과 뒹굴면서 열정적으로 선교에 매진하였다. 선교사 사역 중의 하나는 방학 때 들어오는 단기선교팀을 맞아 안내하고 선교 일정을 함께 하면서 협력하는 일이었다. 많은 선교팀을 맞이하고 보내었다. 떠나는 선교팀을 볼 때는 고국이 그리웠지만 곧 다시 그곳의 사역에 열중하였다.
어느 방학 때였다. 예전처럼 대학생 선교팀을 맞아 선교 일정을 함께 수행하였다. 그런데, 그 선교팀의 리더 여학생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몸을 사리지 않고 팀원들을 인솔하며 진두지휘하는 모습이 멋있게 보였다. 남자보다 더 박력 있게 추진하는 것을 옆에서 도우면서 두 사람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공통 화제인 선교에 이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각자의 비전을 이야기하면서 가까워졌다. 어느새 둘은 가까운 것을 넘어 함께 선교를 하기로 약속하는 사이가 되었다. 사랑하게 된 것이었다.
단기선교 일정이 끝나고 여자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마지막 남은 학기를 마치면 결혼하여 함께 선교지로 나오기로 약속하였다. 둘 사이에는 거룩한 비전을 함께 공유하는 동지의식에 남녀의 사랑이 연료로 부어져서 어떤 것도 끄지 못하는 뜨거운 불길이 되었다. 여자의 졸업학기가 끝나면서 남자는 결혼을 위해 일시 귀국하였다.
결혼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오가면서 여자 쪽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쳤다. 고이 기른 딸을 오지를 헤매는 선교사에게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여자는 부모님을 설득하지 못하고 벽에 부딪쳤다. 한 번만 만나 달라는 남자의 읍소에도 부모님, 특히 아버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만나는 것조차 거부당한 남자는 어느 날 여자의 아버지를 만나러 아버지의 출근시간에 맞춰 여자의 집 앞에서 기다렸다. 집에서 나오는 아버지를 따라가며 30분만 시간을 달라고 간청하는 남자를 쳐다보지도 않고 여자의 아버지는 지하철에 올라탔다. 따라서 탄 남자가 옆자리에 앉아 다시 애원하기 시작했다. 들은 척도 안 하고 고개를 돌리고 있던 여자의 아버지가 몇 정거장 가지 않아 지하철에서 내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남자는 난감하여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되돌아간 여자의 아버지는 노발대발하면서 절대로 결혼시킬 수 없다고 선언하였고 여자의 외출을 금지시켰다. 전화로 상황을 들은 남자는 여자에게 말하였다. 나를 믿고 결혼하겠으면 집에서 나오라고. 그리고 우리 집으로 오라고. 언제까지 오지 않으면 결혼할 생각이 없는 것으로 알겠다고.
남자는 집이 있는 여수로 돌아가 부모님께 그동안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남자가 통보했던 날이 되었다. 여자가 작은 가방 두 개를 들고 남자의 집을 찾아왔다. 집을 나오려다가 두 번이나 들켜서 다시 끌려가곤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은 짐으로 싸서 하나하나 가지고 나와 지하철 보관함에 모아두었다가 마지막에 빈 몸으로 집에서 나왔다고 했다.
머나먼 경기도 일산에서 전라도 여수까지 한 번도 와보지 않은 길을 남자를 찾아온 것이었다. 남자의 집에서는 빈 몸으로 나온 여자를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을 만나서 상황을 설명하고 결혼 날짜를 잡았다. 청첩장을 찍어 돌리면서 여자의 집에도 보냈다. 그러고는 두 사람의 핸드폰을 차단하였다.
이 주일 뒤에 남자의 집으로 전화가 왔다. 여자의 아버지였다. 남의 집 딸이 집을 나가 그곳으로 갔으면 잘 타일러서 돌려보내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점잖게 나무랐다. 남자의 아버지가 대답하였다. 나도 과년한 처자가 집을 나온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아들이 좋다고 찾아온 사람을 내쫓을 수는 없다, 우리는 당신의 딸을 식구로 맞아들이기로 했으니까 그리 아셔라. 결혼식에 오고 안 오고는 알아서 하셔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결혼식 일주일 전, 여자의 고모 댁에서 전화가 와서 올라오라고 했다. 고모와 고모부가 둘을 데리고 여자의 집으로 갔다. 무릎 꿇고 앉은 두 사람을 보고 여자의 부모님은 울면서 결혼을 허락하였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두 사람은 더 오지인 새로운 선교지를 찾아갔다. 현지인들과 같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선교에 매진하였다. 둘이 함께여서 그런지 몸도 마음도 피곤하지 않았다. 현지인들과 똑같이 방 한 칸에 살림을 차리고 현지 음식을 먹고살았다. 정 견딜 수 없을 때는 라면 하나를 몰래 끓여 나눠 먹으면서도 행복하였고 매일이 충만하였다.
그렇게 5년을 헌신하고 두 사람은 안식년을 맞아 귀국하였다. 재교육을 받고 다시 나갈 준비를 하던 중 남자에게서 병이 발견되었다. 몸을 불사른 선교 끝에 몸과 마음이 번아웃되었던 것이다. 병을 치료하고 재충전을 위해 남을 수밖에 없었다. 병을 치료하면서 남자는 다음 선교를 위한 준비로 신학대학에 진학하였다. 그리고 아이를 기다렸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아이를 낳아 키워서 선교지에 가겠다는 계획이었다.
기다리던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기도하고 병원에 다니면서 정성을 쏟았지만 10년 동안 아이는 없었다. 그 사이에 공부는 다 마쳤다. 그리고 10년째 되는 해, 기다리던 아이가 생겨서 낳게 되었다. 아빠를 꼭 닮은 아들을 보면서 남자는 여기에서 아들 키우면서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여자가 도리질을 했다. 하나님께 서원하였으므로 선교지로 떠나야 한다고 했다.
지금, 두 사람은 따뜻하고 안정된 곳을 떠나서 새로운 선교지로 떠나기 위한 훈련에 돌입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낯설고 불편하기 그지없는 선교지에서 자라게 할 것을 생각하면 마음 아프지만 자신들의 사랑과 서원을 지키기 위해 나가는 것인 만큼 아들의 안전과 성장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거라는 믿음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거역할 수 없는 사랑에 항복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