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책을 찾다가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읽고 싶었다. 갑자기는 아니었고 다른 책을 읽다가 그 책에서 박완서 선생님에 대한 회고 글을 보고 선생님의 글을 찾아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소설로서가 아닌 선생님의 육성을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선생님의 인터뷰를 다룬 가장 최근 글을 찾았더니 『박완서의 말』이란 인터뷰집이 있었다.
『박완서의 말』은 2018년에 출간되었는데 1990년대에 여러 평론가, 작가들과의 대담을 모은 것으로, 처음 출판되는 것이라 했다. 박완서 선생님이 인터뷰 때 하신 말들을 모아놓은 것이라 해서 『박완서의 말』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 같았다.
『박완서의 말』은 ‘소박한 개인주의자의 인터뷰’란 부제를 달고 있는데 서문 격인 글에서 선생님의 큰 딸 호원숙 작가가 어머니인 선생님을 지칭한 말이었다. 호원숙 작가는 고정희 시인이 생전에 박완서 선생님을 평한 ‘편안한가 하면 날카롭고, 까다로운가 하면 따뜻하며, 평범한가 하면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작가가 박완서다.’라는 말에 덧붙여 딸인 호원숙에게도 선생님은 넘나들 수 없는 거리감으로 멀게 느껴졌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딸인 자기에게도 때로는 차갑게 느껴졌던 그 거리감이 박완서 작가의 개인주의였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닫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인터뷰라는 것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지향점과 수준이 겨룰 수 있을 때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뷰 대상에 대한 인터뷰어의 치밀한 준비와 관심, 그리고 넓고 깊은 통찰이 전제되어야만 인터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간혹 어떤 인터뷰에서는 인터뷰어가 자신의 지식과 수준을 자랑하는 것이 너무 도드라져서 인터뷰이의 말을 막거나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가는 느낌을 받아서 불편할 때가 있다.
『박완서의 말』이란 인터뷰 집에 실린 몇 개의 인터뷰 중에서 가장 인상 깊게 공감했던 인터뷰가 박완서 선생님과 수필가 피천득 선생님과의 대담이다. 이 책의 맨 마지막에 실린 1998년에 대 작가셨던 두 분의 인터뷰는 따뜻하고 정겨웠다. 그리고 그 곁에서 진행을 맡은 기자는 두 분의 이야기를 방해하지 않고 두 분의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격조 높은 태도를 보여 주었다. 두 분의 인터뷰에서 공감하고 감명 깊었던 부분들을 발췌한다.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읽다 보면 어찌나 무욕하고 소박한지 실제의 절제된 모습을 뵙는 것 같아요. 술, 담배, 커피 홍차 따위는 전혀 안하시고, 음식도 새처럼 조금만 드시고..... 한 달 생활비는 얼마나 드세요?
피천득: 별로 들 게 없어요. 우리 내외가 먹는 것이라야 육식보다는 채식을 위주로 하고, 또 소식을 하니까 하루 1만 원이면 남아요. 옷은 평생 입을 것들이 있으니까 전혀 돈 들 일이 없구요. 아들애가 작아진 옷을 주기도 해요. 구두도 작아지면 신으라고 줘요. 176쪽.
피천득: 많이 벌면 그것 때문에 노예가 될 것 같아요. 버릴 수도 없고, 어디 기부하자니 아깝고 그럴 것 아니겠어요? 그 돈을 계산하고 관리하고 하는 데 드는 시간이나 정력이 얼마나 크겠어요? 가만 보면 돈 모으는 이들은 돈 모으는 재미밖에 모르는 것 같아요. 177쪽.
참으로 깨끗하고 조촐한 이야기가 아닌가? 이렇게 순박하고 소박한 마음을 잃지 않고 간직할 수 있는 것은 긴 세월을 한결같이 담담하게 무욕으로 살아온 덕분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박완서: 선생님께서는 요새 성당에 나가세요? 제가 선생님을 뵈니까 생각나는 일이 있어서 여쭙는 거예요.
피천득: 1년에 몇 차례 나가요. 자주는 못 가지만 가톨릭이란 종교를 좋아해요. 특별히 어떤 종교의 테두리에 나를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심성은 가톨릭에 가까워요. 그래서 가끔 아내와 함께 성당에 나가곤 해요. 박 선생님은 몇 번이나 나가요?
박완서: 저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나가고 있어요, 저도 카톨릭이 좋은데 고해성사는 참 싫어요. 아무리 하기 싫어도 일 년에 두 차례 부활절과 성탄절에는 해야 하잖아요? 한번은 동화 쓰시는 정채봉씨에게 말했어요. 나는 고해성사 때문에 언젠가 카톨릭에 대해 냉담해지고 말 것이라구요. 그게 왜 의무가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억지로 만들어갖고 ”죄를 지었습니다“하고 말해야 하나요? 178쪽.
두 분 선생님의 종교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와 투정이 무겁고 진중한 종교의 옷을 벗겨 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신앙은 형식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될 것이다. 신앙이 제도화되고 격식화되면 신에 대한 자연스러운 관심과 접근을 오히려 방해하여 멀어지게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박완서 선생님은 그 대담을 할 무렵에 가장 즐거웠던 일 중의 하나가 피천득 선생님의 미수연에 참석했던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세상의 혼탁한 잡스러움과는 판이하게 다른, 단순하고도 초연한 맑은 기운을 느낄 수 있어서 미수연 참석 시간 내내 즐거웠다고 이야기했다.
박완서: 그 자리에서 선생님을 뵈면서 ‘사람이 저렇게 늙을 수도 있구나’하고 생각했어요. 선생님의 늙음은 기려도 좋을 만한 늙음으로 여겨지니 신기해요. 저도 역시 같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장 참을 수 없는 게 추하게 늙어가는 정정한 노인들이에요. 나이가 들수록 확실해지는 아집, 독선, 물질과 허명虛名과 정력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집착 같은 것을 보면 차라리 치매가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늙음을 추잡하게 만들어요. 그런데 그런 것들로부터 훌쩍 벗어나 있는 선생님을 뵈면 연세와 상관없이 소년처럼 천진난만해 보여요. 그렇게 벗어나는 일이 어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가요. 늙음조차도 어떻게 늙느냐에 따라 뒤에 오는 사람에게 그렇게 되고 싶다는 꿈과 희망을 주는 것 같아요. 182쪽.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에서 종종 나왔던 사랑하는 딸 서영이에 대한 이야기도 하셨다. 이 세상에서 제일 견디기 어려운 것이 이별이라는 고백이셨다. 안 만나면 이별도 없지만 만나면 반갑지만, 이별할 것을 생각하면 겁나고 싫다는 고백. 무욕의 화신이신 노 교수님의 고백이라 더욱 절절하게 와닿는다.
피천득: 작년 여름에 와서 1,2 주일 정도 있다 갔어요. 이 세상에서 제일 견디기 어려운 게 이별이에요. 물론 박선생님은 나보다 더한 이별을 경험하신 분이지만, 아무튼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게 제일 안 좋아요. 그래서 서영이가 온다고 하면 반가우면서도 곧 다시 떠날 것을 생각하면 겁나고 아프고 싫어요. 안 만나면 그리웁지만 이별하는 아픔은 없는데. 올 성탄절이면 또 만나고 이별하게 될 거예요. 188쪽.
두 분의 인터뷰에서 세상도 더럽히지 못한 맑은 영혼의 두 노 작가들을 모실 수 있었던 것이 우리들의 복이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에게는 자랑스럽게 존경할 만한 이런 어른들이 계셨는데, 우리는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후배들은 어떤 어른의 모습으로 우리를 바라볼까를 생각하며 새삼스레 자세를 가다듬는다. 두 분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