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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마리아 Jul 16. 2024

정례 할머니

정례 할머니의 죽음은 갑작스러웠다. 구십이 가까운 고령이셨지만 평소의 건강 상태가 나쁘지 않으셨다. 오래 전에 암 수술을 한 적이 있지만 완치되어 수십 년을 살아오셨다. 나이 들면서 심혈관 계통에 문제가 생겼지만 꾸준하게 잘 관리해 오셨다.


그러다가 불가피한 심장 쪽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 생겼다. 수술은 희귀한 경우가 아니었고  두 시간 정도면 끝나는 거라는 병원 쪽의 설명에 가족들은 별 걱정 없이 동의하였다. 그런데,  어떤 수술도 가볍거나 쉬운 것은  없었다. 확률일 뿐이었고 예외는 항상 잠재되어 있었다.


두 시간이 지나서 나온 의료진들은 할머니의 수술이 잘 되었고, 지금 회복실로 옮겨 경과를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모두들 잘 되었다고 한숨을  쉬면서 긴장을 늦추고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20분쯤 지나자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의료진이 급하게 회복실로 몰려가고 부산하게 오고 가는 것이 보였다. 뭔 일인가 하고 있는데, 담당 의사가 다가와서 응급 상황이 발생하였다고 말하였다. 수술은 잘 되었는데 대동맥 파열로 큰 출혈이 있어서 급히 재수술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족들이 의논할 겨를도 없이 할머니는 다시 수술실로 옮겨졌다. 그리고, 수술에 들어가기도 전에 할머니는 운명하셨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어머니, 수술 잘 받고 오세요. 조금 있다 봬요, 사랑해요.  했던 가족들의 명랑했던 아침 인사는 하직 인사가 되어 버렸다.


의료진은 예측불허의 긴급 사태였고, 사태 발생 후 바로 대처하였지만 어쩔 수 없었던 불가항력적인 경우였다고 병원 측의 잘못이 아님을 극력 설명하였다.

그렇지만 누가 보아도 의료사고였다. 심각하거나 고난도의 위험을 요구하는 수술이 아니었다는 것을 의료진도 가족들도 다 알고 있었다. 오히려 난이도가 낮고 자주 하는 수술이라 일말의 방심이 있었을 거라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전혀 손쓸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의료계에 종사하는 할머니의 가족들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순식간에 사람의 목숨이 죽어 간 돌이킬 수 없는 참사였다. 덮고 넘어가기에는 너무 기가 막힌 일이었다,


책임을 묻는 공방은 긴 싸움을 예고하여 이미 돌아가신 정례 할머니를 장례못할 상황을 초래할 수 있었다. 무엇을 위한 싸움이고, 어떤 선택이 돌아가신 정례 할머니를 위하는 것인가를 생각해야 했다. 갑작스레 가신 어머니를 잘 보내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가족들은 긴 의논을 하였다. 그리고 모든 것을 덮고 장례를 준비하기로 하였다.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를 더 이상 힘들게 하거나 어머니를 애도하는 슬픔을 다른 것 때문에 변질시키고 싶지 않았다.


갑작스레 빈소가 마련되고 부고가 전해지고 조문객을 받기 시작하였다. 정례 할머니를 비롯하여 자녀들 모두 그지없이 착하고 순하다고 칭찬이 자자했던 집안인지라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어제까지 멀쩡했던 정례 할머니가 하얗고 단아한 생전모습으로 영정  사진에 올라앉아 찾아오는 조문객들을 내려다보고 계셨다.

조문을 온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였다. 평소에 순하게 살던 할머니는 가실 복도 타고 나셨다고, 자식들과 즐겁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병원에서 의료진에 둘러싸여 고통 없이 가시는 분이 몇 명이나 되겠냐고 유족들을 위로하였다. 유족들도 비통한 마음을 가다듬고 어머니의 죽음을 감사로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장례를 치르면서 어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게 해 주시고, 한없이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으로 어머니를 기억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고  또 감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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