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5) 노봉, 놀미, 날밑, 나루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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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봉 마을은 동해고속도로 망상나들목에서 나와 동쪽으로 300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을이다. ≪동해시 지명지≫는 ‘노봉’은 입으로 전해오던 ‘놀미’를 한자로 적으면서 생겨난 땅이름으로 설명한다.
속지명 놀미를 미화시켜 지은 한자 지명이다. 중국 노나라 때 공자가 태어난 노산 7봉 가운데 하나인 이구산(尼丘山)을 일명 노산이라 하는데 이 곳이 노산(魯山)과 비슷하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놀미는 노을이 지는 산이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으로 추정된다.(84쪽)
≪동해시 땅이름 이야기≫(윤종대, 북퍼브, 2024)도 별다르지 않다.
노봉(魯峰) 속칭 ‘놀미’는 망상역 부근과 남쪽 임산물유통센터 아래쪽 마을에 붙여진 지명이다. 모래로 이루어진 봉우리이기 때문에 사봉(沙峰)이라고도 한다. 망상역과 노봉해수욕장 부근에 있었던 작은 산봉우리를 가리키며, 중국 공자의 탄생지인 노산 7봉에서 유래하여 마을의 지명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고유 지명어 연구≫에 따르면 지명 후부요소인 ‘미’는 어원적으로 신라어 ‘毛兮(모혜)’ 또는 고구려어 ‘買(매)’에서 발달하였으며, ‘미’의 의미는 산과 마을에 집중되었다. 이와 같은 어원으로 보면 ‘놀미’를 훈차하여 한자로는 ‘노산(魯山)’이나 ‘노봉(魯峰)’이라고 적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31쪽)
이러한 기록들로 보면 본래 땅이름은 ‘놀미’인데, 소리가 어슷한 한자로 적으면서 노둔할 노(魯) 자, 뫼 산(山)이나 뫼 봉(峰) 자를 썼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한문깨나 읽어 몸은 조선 사람이되 머리는 중국 사람 것이 된 조선 양반들이 지어낸 땅이름이다. 사람 이름도 그렇지만 땅이름도 되도록 아름답고 귀한 뜻을 담으려는 마음이 한몫 했겠지만 이러한 이름 짓기 놀이는 양반들에게는 재미일지 몰라도 그 땅에 엎드려 평생을 살아온 백성들에게는 모욕이 아닐까.
≪훈몽자회≫(1527)를 보면 ‘나라 진’에서 보듯 ‘나루’의 옛말은 ‘나라'다. ‘날’은 소리가 어금지금한 ‘놀, 나르, 널, 너르’ 따위로 곧잘 꼴을 바꿔 나타난다. 지역 말에서도 나루는 ‘날’(나루), ‘날ː앞’(나루 앞)으로 실제 볼 수 있다. 놀미는 ‘놀+미’로 쪼개서 생각할 수 있다. 이때 ‘놀’은 ‘놀’로 ‘나루’를, ‘미’는 ‘뫼’가 아니라 ‘밑’으로 보아야 한다. 곧 ‘나루 밑’이다. ‘놀밑’에서 [ㅌ] 소리가 떨어져 나가면서 ‘놀미>놀미’가 된 다음 한자로 적으면서 ‘노봉’으로 되었다고 봐야 자연스럽다.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지만 노봉 마을 앞은 마상천(마룻내) 끄트머리로 ‘숲안포’라는 나루가 있었다. 지금 망상역 일대를 메워 1963년 묵호와 강릉 간 기찻길(동해북부선)을 놓고 7번 국도가 내면서 호수는 사라졌다고 한다.
≪동해시 지명지≫(84쪽)에 김남용 한시가 나온다
구름 걷힌 노봉에 달이 밝은데 雲捲魯峯明月上
갈꽃 핀 숲안포에는 갈매기가 나르네 蘆花盤浦白鷗飛
시에 나오는 ‘반포(盤浦)’는 소반 반(盤) 자, 개 포(浦) 자로 쓴 말로 ‘숲안포>숩안포>수반포>소반포’처럼 읽을 수 있다. 숲안들은 고속도로 가에 있는 들판으로 망상초등학교 앞들이다. ≪동해시 망상 남구만 유적과 기층문화≫에 “망상역과 국도 일대 ‘수반포’ 호수의 변두리”라고 하면서 “수반은 호수가 있던 곳이며, 수반답은 호수가 논으로 바뀐 곳, 수반들은 들판을 말한다”(167쪽)이라고 했다. 하지만 ‘수반포’는 호수 변두리를 가리키는 말이라기보다 ‘포구’다. 배달말로는 배가 드나드는 ‘개’요 ‘나루’다. 더욱이 마루내(마상천)과 숲안들에서 흘러온 물이 모였다가 바다로 빠져나가는 잘록한 물목으로 땅 생김새로 보면 노루목이다. 나루가 되었든 노루목이 되었든 그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 바로 ‘노봉’이다. 그러니 ‘노을 지는 산’이라고 해서 ‘놀뫼>놀산>노산>노봉’처럼 되었다는 설명은 아무리 봐도 발 디디고 선 땅을 살피지 않고 지어낸 말로밖에 안 보인다. 마을 뒤로 작은 산이 있지만 어달산 북쪽이 흘러내린 산자락 끝으로 산이라기보다 언덕에 가깝다. 그런데 노을 지는 경치가 아름다운 산이라니 얼토당토 않다.
요컨대 ‘노봉’이란 땅이름은 ‘놀미’에서 온 말이다. ‘수반포’(숲안개)라는 나루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서 ‘나라 밑’이라고 하다가 이 말이 ‘날 밑 → 날 미 → 놀미’로 바뀐 땅이름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공자가 태어난 노산을 닮아서 붙인 이름이라는 말은 한자 이름을 보고 지어낸 이야기로 봐야 한다. 수반포(숲안포)는 말 그대로 숲 안에 있던 개(포구)다. 지금이야 바닷물이 들어왔던 곳인지 짐작하기 어렵지만 먼 옛날 바닷바람을 막을 요량으로 가꾼 소나무 숲 안쪽에 있다고 해서 숲안포라고 했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