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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후소: 폭포 아래 생겨난 소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30) 보쿠소, 복후소, 보쿳소

by 이무완 Apr 02. 2025

낯선 말 복후소

복후소? 칡소(얼룩소), 황소, 고두머리소, 부덕소 같은 소 이름 같기도 하고 할미소, 거무소, 무당소, 옹당소 같은 소(沼) 이름 같기도 하다. 복후소는 괴란동에 있는 소(沼)다. 땅이 우묵하게 꺼져서 언제나 물이 괸 곳으로 ‘늪’이나 ‘못’을 가리킨다. 땅이름을 보면 얼추 어떻게 생겨난 이름인지 짐작할 수 있는데 ‘복후소’는 어떻게 생겨난 이름인지 도대체 짐작하기 어렵다. 다행히 ≪동해시 지명지≫ 설명이 있다.

       

승담폭포 밑에 있는 소.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만든 소인데, 복후소라는 어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두타산의 상폭포(上瀑布)상복후라고 하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폭포’에 ‘소’가 결합된 지명으로 추정된다.(40쪽)     


복후소 말밑까지는 몰라도 ‘복후소=상폭포=상복후’와 같은 뜻대응은 읽어낼 수 있다. ‘상복후’를 1910년대 조선총독부가 낸 ≪조선지형도≫에는 ‘사원폭’이라고 했고 1990년대에 이르러 ‘그림폭포’라고 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복후는 폭포의 다른 말?

같은 책 다른 쪽에서 ‘상복후’를 설명한 대목이 있다. 

     

상복골 골짜기 위쪽에 있는 폭포로서, 백련암을 배경으로 떨어진다. 폭포의 높이는 50미터나 되며, 상폭포는 흔히 상복후로 발음하며 북쪽에 있는 폭포라하여 일명 북폭(北瀑)이라고도 한다. 삼화사에서 뒤쪽을 보면 능선에서부터 절벽을 타고 떨어지는 모습이 그림과 같다 해서 그림폭포라 하는 이름도 있으나 전래지명은 아니다.(237쪽)     


다시 '북폭'과 '그림폭포'까지 보태면 ‘복후소=상폭포=사원폭=상복후=북폭=그림폭포’처럼 된다. ≪동해시 지명지≫는 ‘폭포’를 가리키는 지역말이 ‘복후’라고 했고, 여기에 웅덩이를 뜻하는 ‘소’를 보태 ‘복후소’가 되지 않았겠냐며 말끝을 흐려놨다. ‘복후’를 소리 나는 대로 적으면 말처럼 ‘보쿠’가 되긴 한다. 


보쿳소와 노쟁이보쿠

삼척시 도계읍 상덕리에 ‘보쿳소’가 있다. 보쿳소는 ‘보쿠+ㅅ+소’의 짜임으로 보쿠 아래에 있는 소다. 물줄기가 세차게 떨어지면서 오랜 세월에 거쳐 생겨난 소다. 삼척시 근덕면 동막리 큰드르 서쪽에는 ‘노쟁이보쿠’라는 폭포가 있다. 동해시는 옛 삼척군 북평읍(현 삼척시)과 옛 명주군 묵호읍(현 강릉시)을 묶어 1980년 4월 1일 자로 새롭게 생겨난 시다. 삼척 말과 강릉말이 자연스럽게 섞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하면 ‘복후’나 ‘보쿠’는 ‘폭포’의 삼척말쯤으로 짐작된다. 


보쿠는 일본말

처음엔 폭포를 가리키는 지역말로 '보쿠'가 있고 이 말을 '복후'로 받아적었나 했다. 삼척에 있는 보쿳소나 노쟁이보쿠를 발견하고는 정말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보쿠’나 '복후'는 지역 말이 아니라 어처구니 없지만 일본말 찌꺼기다. 일본말에서는 ‘폭포’를 ‘瀑’(폭)으로 쓴다. 그리고 [바쿠](ばく)로 소리낸다. 조선총독부가 1910년대에 만든 ≪조선지형도≫에서 무릉계곡 ‘사원폭(寺院瀑)’ 옆에 ‘サーォンバク’(사아온바쿠)라고 적었다. 설악산 대승폭포는 어떻게 적었는가 찾아보면 ‘大勝瀑’(대승폭) 옆에 ‘デーソンポク’(대스은보쿠)로 적어 놨다. ‘폭포’를 [바쿠], [보쿠]로 소리내던 일본말을 줏대 없이 따라가 ‘복후’로 적었고, 복후 아래 생겨난 소라고 해서 ‘복후소’라고 한 셈이다.   

지난 백여 년 동안 일본말과 미국말에 배달말은 짓밟혀왔다. 그 상처는 우리가 쓰는 말 곳곳에 여지껏 한글의 탈을 뒤집어 쓰고 남았다. 복후(보쿠), 복후소(보쿳소)도 그런 말의 하나인 셈이다. 

‘폭포’를 쓴 한쪽은 ‘바쿠(バク)’로, 다른 한 쪽은 ‘보쿠(ポク)’로 적었다. (지도 출처: 조선지형도)‘폭포’를 쓴 한쪽은 ‘바쿠(バク)’로, 다른 한 쪽은 ‘보쿠(ポク)’로 적었다. (지도 출처: 조선지형도)


배달말 한입 더

얼룩소 얼룩배기 칡소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엄마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라는 동요 노랫말에 나오는 ‘얼룩소’와 정지용의 시 <향수> 첫머리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에 나오는 ‘얼룩백이 황소’는 모두 우리 땅 토종인 ‘칡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얼룩백이(표준어로는 얼룩빼기) 황소라고 하면 흰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점박이 무늬 젖소를 떠올리기 쉬운데, 홀스타인 품종인 젖소는 우리 나라에 1960년대에 들어왔다. 정지용의 시 <향수>는 1927년에 발표했으니 우리 땅에 홀스타인 품종 젖소가 있을 리 없다. 칡소는 털빛 갈색에 가깝고, 등줄기에서 배로 내려오는 검은 털이 호랑이 무늬처럼 나 있는데 마치 칡넝쿨 같다고 해서 ‘칡소’라고 했다고 한다. 얼룩백이 황소는 수칡소다. 

황소 큰 수소를 가리키는 말인데 암수 가리지 않고 털빛이 누런 소로 잘못 아는 사람이 많다. 황소는 본디 ‘한쇼’였다. ‘한’은 한길(넓은 길), 한밭(넓은 밭), 한재(큰 고개), 한새(황새: 황새), 한아비(할아비), 한어미(할미)에서 보듯 ‘크다, 넓다’는 뜻이다. 

고수머리소 털이 곱슬곱슬한 소. 고수머리는 고불고불하거나 말려 있는 머리털로 곱슬머리라고도 한다. 

부덕소 소잔등에 바둑판을 올려놓을 수 있을 만큼 살붙임이 좋은 소

흑소 털빛이 검은 소.≒검정소, 오우(烏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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