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4. 꿈속으로 떠나는 여행, 전라도
춘천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주말 이틀 재정비를 했다. 체력 회복 차원에서 토요일 하루는 푹 쉬며 다음 여행을 준비했고, 일요일은 하율이와 윤이 멘토링을 위해 시간을 쏟았다. 월요일 오전, 방꾸쟁이들은 출판사에 들러 도서 제작과 관련된 멘토링을 받고, 오후가 되어서야 부랴부랴 정읍으로 출발했다. 해가 중천에 떠 있었음에도 역시 고속버스를 타니 잠이 솔솔 쏟아졌다. 책을 읽으면서 가겠다며 호기롭게 버스에 탑승했던 방꾸쟁이들은 15분이 채 지나지 않아 잠에 빠졌고, 휴게소에 버스가 멈춰서고 나서야 눈을 떴다. 그러고서는 버스가 출발하자 다시 잠들었다.
정읍 터미널에 도착하기 1시간 전쯤이었던가,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화창했던 하늘은 우중충해졌다. 터미널에 내리면 오후 6시쯤 될 텐데, 비도 오고 날씨도 꽤나 어두워져 꿈 인터뷰를 하기에는 무리일 듯싶었다. 그래서 ‘정읍 여행 첫날에는 인터뷰를 못 하겠구나.’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조용하던 방꾸남의 전화기가 갑자기 진동을 마구 쏟아냈다. 정읍에 살고 있는 방꾸남의 둘째 이모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사실 방꾸쟁이들이 전라도 여행지로 정읍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방꾸남의 이모·삼촌이 다수 거주하는 곳이라는 점이었다. 여행 초보인 방꾸쟁이들이 혹여나 피치 못할 사건·사고에 휘말리게 될 경우 빠르게 도움을 받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선정한 여행지였다. 또한, 정읍은 방꾸남 어머니의 고향이기도 했다. 방꾸남이 엄마의 고향을 여행해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요구도 반영된 결과였다. 그럼에도 이모에게서 전화가 올 줄은 몰랐다. 왜냐하면 방꾸남이 일부러 이모·삼촌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고 내려갔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선 연락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모는 방꾸남의 엄마에게서 소식을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엄마가 어디까지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모는 방꾸쟁이들이 꿈 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방꾸남의 둘째 이모는 “어차피 오늘 늦어서 인터뷰도 못 할 테니까 이모 집에 와서 밥 먹고 잠이나 자고 가라.”라며 터미널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전했다. 방꾸남은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전개에 말을 얼버무리면서 “잠시 생각할 시간 좀 주시겠어요?”라고 대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방꾸남은 10분 뒤쯤 이모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이야기했다. “이모, 저 6시에 터미널 도착해요. 터미널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네다섯 시간에 걸친 긴 이동을 마치고 정읍시외·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유독 하늘과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하늘이 굉장히 넓다는 느낌도 받았다. 왜 그랬었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높은 건물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높아 봤자 3층 정도였던 것 같다. 터미널은 아담했다. 그럼에도 터미널 건물 안에 여러 상가와 병원이 입점해있다는 점에서 ‘이 정도면 아주 작진 않네.’라고 생각했다. 오손도손 모여서 건물을 나눠 쓰는 것이 귀여워 보이면서도 ‘터미널만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어려운가 보구나’라는 현실적인 생각도 들었다.
여느 버스터미널처럼 정읍 버스터미널 앞에도 시내버스가 멈추어 서는 정류장이 있었다. 그런데 정류장에서 특이점을 하나 발견했다. ‘여름철 무더위를 피하는 도구’가 서울·경기도에서 봤던 것들과는 많이 달랐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서울과 경기도의 버스정류장은 자동문이 탑재된 상자의 형태를 갖춘 곳이 많다. 투명한 유리 상자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시원한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져 있다. 그러나 정읍 터미널에서는 에어컨의 기능을 ‘얼음’이 대체하고 있었다.
사방이 뻥 뚫린 버스정류장에는 아주 커다란 사각 얼음이 놓여 있었다. 정류장에서 대기하는 사람들이 얼음 주위로 모여 더위를 식히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얼음 위에 열을 식혀야 할 물건이나 손을 얹어두기도 했다. 살면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방꾸녀는 얼음을 보며 ‘와 저거 내 몸통보다 크잖아?! 마음만 먹으면 얼음 침대처럼 누울 수도 있겠어. 완전 럭키네~~’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웃겼는지 혼자 조용히 ‘피식’하며 미소 짓기도 했다.
얼음을 한참 관찰하던 방꾸녀는 갑작스레 방꾸남에게 “얼음의 삶은 참 멋진 것 같아.”라고 이야기했다. 방꾸녀는 커다란 얼음이 언젠가는 흔적도 찾을 수 없이 사라지지만, 그 존재의 사라짐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시원함을 선물 받는다는 점, 어쩌면 더위에 지친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 참 멋있다고 느꼈다. 마치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방꾸녀가 자신의 생각을 전하자, 방꾸남은 “의인화가 너무 심한 거 아니야?”라고 장난스레 대답했고, 방꾸남의 찬물에 문학적이고 감성적인 분위기에서 깨어난 방꾸녀는 “너 (MBTI) T야?”라고 대답하며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얼음 구경을 마치고 10분쯤 지났던가, 방꾸남의 둘째 이모에게 ‘거의 도착했으니 차 탈 준비해라.’라는 내용의 전화가 왔다. 방꾸쟁이들은 이모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차에 탑승한 뒤, 정읍시 산내면에 있는 이모네 마을로 이동했다. 시내에서 마을로 향하는 길은 온통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귀가 먹먹해지고 길은 꼬불거리는 것이 멀미하기 딱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이모의 부드러운 운전 덕에 방꾸쟁이들은 멀미를 하지 않았다.
마을에 도착하니 동네 강아지들이 방꾸쟁이들을 맞이해주었다. 흰색 털에 갈색 점을 가진 소형견 한 마리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좋은지 꼬리를 프로펠러처럼 돌리며 집에 들어갈 때까지 졸졸 따라왔다. 조만간 꼬리로 하늘을 날 수 있을 듯싶었다. 강아지들과의 인사를 마친 뒤, 같은 마을에 사는 친척분들께 인사를 드렸다. 그러고서는 저녁 밥을 먹었다. 식사로는 조미료를 첨가하지 않은 자연 음식들을 먹었는데, 약 삼십 년 동안 서울·경기도에서 먹었던 환경호르몬과 인공 조미료가 한입에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방꾸쟁이들은 식사를 하면서 ‘이런 게 진정한 신선 식품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조카인 방꾸남이 먼 길을 달려왔다는 소식에 여러 집 식구가 둘째 이모네 집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모인 김에 꿈 인터뷰도 진행했는데,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이나 만화책 짱뚱이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를 실제로 겪은 사람들을 통해 전해 들으니 더욱 재밌었다. 방꾸남의 친척들과 첫날부터 함께하는 것은 계획에 없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는 바람에 좋은 경험을 얻은 것 같아 방꾸쟁이들은 기분이 좋았다. 이모를 만나지 않았다면 터미널 주변에 위치한 숙소에서 둘이 배달 음식을 먹고 있었을 텐데, 이모 덕분에 정읍에서의 첫날이 더 즐겁고 풍요로운 여행으로 기억될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 다음 이야기(2025.07.06.일 업로드 예정)
□ Chapter4. 꿈속으로 떠나는 여행, 전라도
"인터뷰를 할 때는 '자연스럽게' 접근할 것"
→ '어르신들 인터뷰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구나...', 무슨 말부터 붙여야 할지 모르는 방꾸쟁이들에게 나타난 구원투수 '이모' 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