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의 갈림길이었던 세상이 꿈의 무대가 되기까지

Chapter4. 꿈속으로 떠나는 여행, 전라도

by 장병조

정읍에서 어르신들을 인터뷰를 하며 방꾸쟁이들은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왜 어르신들께는 꿈이라는 단어가 어려울까?’, ‘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보는 게 왜 어려울까?’라는 내면의 질문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방꾸남의 엄마는 방꾸남과의 인터뷰에서 “엄마 때는 요즘처럼 진로 수업이 있지 않았어. 대신 교련 수업이 있었지.”, “엄마 때는 미래 모습 그리는 대회 대신 반공 포스터 그리기 대회가 있었어.”라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즉, 엄마가 어렸을 때는 꿈에 대해서 생각해볼 기회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요즘 20대~30대의 엄마·아빠 세대는 다들 ‘꿈’, ‘장래 희망’이라는 단어에 익숙한 듯하다. 왜냐하면 학교를 온전히 졸업한 사람이 많고, 학교나 매체에서 꿈·장래 희망에 관한 이야기를 꾸준히 해왔기 때문이다. 또, 성인이 되었을 때는 기술·경제가 급격히 발전함에 따라 시간적·심리적 여유가 생겼고, 그 덕에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가보고 싶은 곳’ 등을 생각해볼 기회도 점차 늘어났다.


그러나 현재의 80대 90대는 일제강점기에 세상에 태어났다. 그들이 학교에 다닐 때는 6·25 전쟁이 발발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힘들었고, 가난했다. 전쟁으로 인해 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사람이 많았고, 굶어 죽거나 전쟁에 참여해야만 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 시대상 속에서 ‘꿈’이라는 말이 과연 존재하기나 했을까? 설령 있다고 한들, 꿈에 대해서 생각해볼 시간이나 있었을까?


그들의 삶은 온통 ‘생존’이었다. 생존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배우기 위해 학교에 가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기부터 돈을 벌기 위해 일터로 나갔다. 식량을 얻기 위해 밭으로 논으로 나갔다. 살기 위해 전쟁터로 나갔다.


방꾸쟁이들은 정읍에서 인터뷰를 할 때, 80대 90대 할아버지 할머니께 어렸을 적 꿈에 대해 묻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살아남는 것이 꿈이었다.’라고 대답했다. 사실 어릴 적에는 꿈이 뭔지 생각해볼 겨를도 없었는데, 나이가 들어 돌이켜 보니 어릴 적에 그저 ‘생존’만이 눈앞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버킷리스트가 있었다면, ‘따뜻한 흰 쌀밥을 밥그릇 가득 채워 먹어보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또, 요즘 사람들은 소망 중 하나로서 ‘가족이 화목한 것’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는 ‘화목이고 뭐고 가족들과 한집에서 사는 것 자체’가 큰 꿈이었다고 말을 전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방꾸쟁이들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일상들’이 ‘누군가 간절히 원했던 꿈이었구나’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반찬 투정을 부리면서 먹는 빈약한 식사 차림, 식구가 많아 좁다고 투덜거리는 작은 집도 누군가 간절하게 그것을 꿈꾸고 이뤄냈기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당연한 것들’이 아니라 ‘당연히 감사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앞서 세상에 다녀간 사람들이 우리에게 남긴 선물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어렵게 만들어온 우리나라가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누군가가 때때로 꼰대, 혼자 사는 냄새 풍기는 찝찝한 할아버지(할머니)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들의 대부분이 사실은 존경받아 마땅한, 공경받아야 할 삶의 배경을 가진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꾸쟁이들은 정읍에서의 인터뷰, 특히 어르신 인터뷰를 거듭하면서 다짐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먼저 세상에 다녀간 누군가의 꿈이었다는 점을 잊지 말자.”


“누군가 ‘생존’이라 불리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 위에 서 있던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꿈’으로 가득한 무대 위에 서 있을 수 있음을 망각하지 말자.”


“열심히 꿈꾸고, 끊임없이 이뤄내자. 우리가 그들에게 받은 것처럼, 우리도 더 나은 세상을 누군가에게 선물하기 위해서. 우리 자식들이 더 행복하고 희망찬 꿈을 꾸게 해주기 위해서.”

Ch4_전라도_사진4_밭에서 어르신들과 셀피.jpg “자아 여기보세요~”, 모두 집중하는 중

■ 다음 이야기(2025.07.20.일 업로드 예정)

□ Chapter4. 꿈속으로 떠나는 여행, 전라도


"하마터면 인터뷰 못 할 뻔했다. 길에 아무도 없네?!"

→ 방꾸쟁이들, 시골의 현실을 몰랐다. 서울처럼 생각하고 쉽게 갔다가 인터뷰 할 사람 한 명도 못 만날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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