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꿈 대신 새빨간 고추에 담긴 꿈을!

Chapter4. 꿈속으로 떠나는 여행, 전라도

by 장병조

방꾸쟁이들은 정읍 여행 도중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신태인읍에 방문했다. 읍내에서 가장 큰 철물점을 운영하는 방꾸남의 삼촌의 꿈을 인터뷰하러 간 것이다. 인터뷰는 철물점 일을 마친 뒤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진행하기로 했다. 그때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있었다. 그래서 방꾸쟁이들은 철물점에 들러 인사를 한 뒤 가방을 맡기고 잠시 거리로 나갔다. 지역 주민을 인터뷰하기 위함이다. 지난 이틀 동안은 둘째 이모의 도움을 받아 어르신들을 인터뷰했으니, 이번에는 청소년을 인터뷰할 생각이었다.


읍내에는 중고등학교가 여럿 위치했다. 신태인초등학교, 신태인중학교, 신태인고등학교, 왕신여자중·고등학교 등이었다. 여름방학이긴 했지만, 학교 주변에 아이들이 지나다닐 거라는 희망을 지닌 채 학교로 향했다. 그러나 역시 한 명의 청소년도 인터뷰할 수 없었다. 만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한 것 같다. 학교 앞에는 문구점과 음악 학원이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방학이 아니었다면 인터뷰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마음속에 번졌다.

Ch4_전라도_사진7_문구점앞에서.jpg 학기 중이었다면 나름 아이들로 북적거렸을 텐데..!

방꾸쟁이들은 아이들을 찾겠다며 서성이는 것을 그만두고 철물점으로 되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는 기차역이 하나 있었다. ‘신태인역’이었다. 사람이 모일 만한 곳이 눈에 보이는데 그냥 지나가긴 아쉬워 들어가 봤다. 혹시라도 인터뷰할 만한 사람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KTX나 SRT 기차역에 익숙해진 탓일까? 기차역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아담하고 조용했다. 불도 꺼져 있는 듯했다. 기차역보다는 화장실이 있는 큰 버스정류장 정도의 느낌이었다.


이번에도 인터뷰는 하지 못했다. 역 주변에서 만난 사람이라고는 잠시 자기만의 시간을 누리고 있는 택시 기사님 한 분이 전부였다. 그래도 방꾸쟁이들을 반겨주는 존재가 있긴 했다. 역 앞의 바닥에서 반짝이고 있는 모래 알갱이들과 강한 햇빛 아래서 몸을 말리고 있는 새빨간 고추들이었다. 아마 동네 어르신들께서 역 앞 주차장이 넓으니 그곳에 고추나 나물을 말리곤 하시는 것 같았다.


방꾸쟁이들은 시골의 진풍경을 보고 감탄했다. 기차역 앞에서 고추를 말리는 장면은 본 적도 없고, 상상해본 적도 없었기에 꽤 인상 깊었다. 그러던 중 문득 방꾸녀가 방꾸남에게 “오빠, 저 빨간 고추들한테도 꿈이 담겨있으려나?”라고 물었다. 방꾸남은 대답했다. “오, 님 좀 천재인 듯? 그런 걸 상상하다니.”


방꾸녀의 질문은 방꾸남이 살면서 상상해본 적 없는 것이었다. 고추에 담긴 꿈이라니. 들어본 적은 없었지만, 아마 역 앞에 널린 새빨간 고추에는 말리는 사람의 크고 작은 꿈이 담겨있었을 것이다. 고춧가루로 만들어 맛있는 김치나 요리를 해 먹는 꿈, 내가 만든 고춧가루를 자식들에게 나눠주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 꿈, 시장에 내다 팔아 손주에게 용돈을 주는 꿈. 이처럼 작고도 희망찬 꿈들이 고추 속에 가득 담겨있었을 것이다. 고추 속을 꽉 채운 고추씨 하나하나처럼.


고추 말리는 사람의 꿈들은 아마도 고추를 처음 심고 재배한 사람의 꿈에서부터 파생되어왔을 것이다. 농부들이 자기만의 꿈을 꾸면서 고추를 정성껏 키워 세상으로 내놓았기에 누군가가 고추를 말려 요리도 하고 고춧가루를 팔아 돈도 벌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보니 꿈과 꿈은 서로 연결되어 다른 꿈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열심히 꿈꾸고 꿈에 대한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으면, 그걸 접하는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꿈꾸게 되는 것이다. 꿈은 전파력이 있는 존재였다.


신태인 읍내에서의 길거리 인터뷰는 실패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손길과 꿈이 서린 빨간 고추들 덕분에 꿈에 대해서 또 한 번 깊이 생각해볼 기회를 얻었다. 인터뷰를 실패하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듯한 모습이 조금은 우습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멋진 경험이었다.

Ch4_전라도_사진8_고추의 꿈.jpg 앞으로도 매운맛을 잘 부탁해 고추야!

■ 다음 이야기(2025.08.03.일 업로드 예정)

□ Chapter4. 꿈속으로 떠나는 여행, 전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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