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17. 육아일기
아내의 퇴근이 평소보다 늦었던 오늘, 엄마가 도착할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인기척 없는 현관이 의아했는지, 점심에 아빠가 깜짝 준비한 게살 크림 파스타가 성에 차지 않았는지 해솔이의 표정에는 불편함이 가득 묻어났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고, 아빠와 함께 도서관에 가서 그림책도 보고, 벽화 마을 벽화 구경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 또 동네 놀이터에서 즐겁게 놀면서 분주한 하루를 보낸 아이가 지칠 만도 한데… 과자로 달래도 보고 그림책을 읽어주며 관심을 끌어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내가 집에 도착한 후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 동네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생각해둔 목적지는 없었지만 일단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기로 하고 공동현관을 나와 잠깐 걸었을까? 아이가 놀이터를 지나치며 첫 번째 불편한 신호를 보냈다. 아마 아까 점심 먹고 난 후 잠시 나가 놀았던 놀이터의 기억이 아이의 머릿속을 스쳤나 보다 생각하고 조금 걷다 보니 두 번째 신호를 보냈다. 오늘따라 유모차가 타기 싫은가 보구나 생각하며 아이를 안고 아파트의 언덕을 내려왔다.
아이의 컨디션이 좋지 않구나 싶어 잠시 홈플러스 옆으로 이어진 강둑 길을 걷다가 들어가자는데 아내와 나의 생각이 모아졌고, 홈플러스 맞은편으로 이어져 있는 한적한 산책로에 도착하여 아이를 잠시 걷게 할 요량으로 내려두었는데 아이는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어설프지만 빠른 걸음으로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아장아장 걸으면서 길 옆의 작은 나무에서 돋아나고 있는 새순도 신기하게 바라보고, 낙엽이 잔뜩 떨어져 있는 나무 밑에 잠시 앉아 낮에 아빠와 함께 낙엽을 부스러트리던 놀이가 생각났는지 한동안 낙엽을 고사리 손으로 부스럭부스럭거리며 놀았다.
새빨간 옷에 빨간 꼬까신을 신고 아빠 엄마를 앞서 아장아장 걷는 해솔이의 모습이 귀여웠는지 산책을 하시던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잠시 멈춰 서서 아이에게 인사를 건네주시고, 연신 귀엽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강아지와 함께 지나가던 한 아주머니도 강아지를 보고 신기함에 강아지 쪽으로 급하게 걸음을 옮기는 아이를 위해 잠시 멈춰서 강아지 구경을 시켜주시며 귀여워해 주셨다. 아이도 낯설지만 따뜻한 말을 건네는 이들의 마음이 고마웠는지 어설프지만 고개를 숙여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는 시늉을 했다. 방 안에서 가끔 넘어지긴 하지만 비교적 안정적으로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밖에서 잘 걸을 수 있을까 생각했던 엄마, 아빠의 걱정이 무색하게 아이는 비록 몇 번 넘어지기는 했지만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봄맞이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아이가 과연 말을 할 수 있을까 걱정했었던 적이 있었는데 또렷한 목소리로 '아빠'를 부르고, 아직 서투르긴 하지만 여러 방법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아이, 매번 기어만 다니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걸을 수 있을까 걱정했었는데 그 걱정을 한낱 기우로 만들어버리는 아이의 경쾌한 발걸음. 아이는 때가 되면 알아서 성장한다는 자연의 이치가 이제야 조금씩 실감이 난다. 스스로 오감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삶을 조금씩 알아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조바심과 의구심을 내려놓고 아이를 믿고 한 걸음 뒤에 서서 묵묵히 응원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비록 이제 겨우 집 안을 벗어난 수준이지만 세상 밖을 향해 걸음을 떼기 시작한 해솔이를 보며 기특한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모습을 돌아보며 반성을 해 보게 된다. 이제 막 15개월이 된 아이도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실패하면서도 여러 번 시도하는데 아이에게 살아있는 삶의 교재가 되어야 하고, 가장으로서 가족을 든든하게 지원해야 할 아빠가 늘 마음속으로 다짐만,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고 실천하는 것이 과연 몇 가지가 되는지… 사랑스러운 아이의 성장을 보며 아빠도 한층 더 성장한다. 잠시 일터에서 벗어나 사랑스러운 아이의 성장 모습을 피부로 느낄 수 있고, 나 스스로 성찰하고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 세상 곳곳을 따스하게 감싸는 봄의 기운을 받아 더더욱 풍성하고 소중한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