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가장 놀기 좋은 시간

by 이정원

추석 연휴 아내의 학교장 재량 휴업일 덕분에 일주일간의 방학 아닌 방학을 보내고 맞이한 월요일, 아내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떼어내며 출근을 했고, 집에는 평범했던 평일처럼 나와 해솔이만 남았다.


오늘은 문화센터의 유리드믹스 수업이 있는 날, 11시에 수업이 시작되기에 오전은 해솔이를 데리고 동네 산책을 나가기에도, 마트 구경을 가기에도 애매한 시간이다. 오리 구경을 하러 동네에 있는 석사천이라도 다녀오면 훌쩍 지나가 있는 한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림책을 읽어 주거나 아이의 관심을 끌만한 놀잇감을 끊임없이 제공해 주는 것밖에 없는데, 책을 보지도 않고 나오는 그림 흉내를 낼 경지에 이를 만큼 책은 수도 없이 봤고, 이제는 집에 있는 웬만한 놀잇감으로 해솔이의 관심을 끌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오늘 도착한 프린터기를 설치하느라 가뜩이나 심심했던 해솔이에게 관심을 쏟아주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갔고 심술이 단단히 난 상태의 해솔이와 함께 문화센터 수업을 다녀왔다.


신기한 놀잇감이 많은 서재




웬만한 장난감으로는 우리집 장난꾸러기를 만족시키기 어렵다


점심을 먹고 난 후 길고 길었던 오전 시간이 힘이 들었는지 등에 업혀 금세 잠이 든 아이, 아이 곁에 누워 꿀 같은 낮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아이는 아직 쿨쿨 자고 있었다. 세상 편한 모습으로 자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한창 호기심도 많고, 놀고 싶은 마음도 가득한 아이에게 실망만 안겨준 오전 시간이 떠올라 내심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잠에서 깨면 함께 놀이터에 가서 신나게 놀아주겠노라고 마음먹고 아이가 잠에서 깨기만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솔이가 잠에서 깼고, 아이에게 밖에 나가서 무엇을 하고 싶냐며 잔뜩 바람을 불어넣었다.


"해솔아, 아빠랑 멍멍 보러 나갈까?"


"슝(미끄럼틀 타고 싶어요)"


아빠와 함께 강아지 구경도 하고, 미끄럼틀도 탈 생각에 잔뜩 신이 난 아이는 순순히 누워 기저귀를 갈고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나갈 채비를 마치고 밖에 아이와 함께 구경할 만한 것이 있나 싶어 창밖을 쳐다보니 아뿔싸. 사람들이 우산을 들고 지나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평소에는 뛰어노는 아이들로 가득한 놀이터도 한산했다. 혹시나 해서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보았더니 한 방울 두 방울, 빗방울이 손바닥을 적셨다. 결국 오늘 해솔이는 외출다운 외출 한 번 못 해보고 온종일 집에서 지루함을 달랬고, 나는 졸지에 허풍쟁이 아빠가 되었다.


육아를 하다 보면 피곤한 몸과 마음을 핑계 삼아 아이의 요구를 못 들은 체할 때가 종종 있다. 아이가 그림책을 들고 와서 읽어달라고 할 때, 함께 장난감 놀이를 하자고 할 때, 밖에 나가 미끄럼틀도 타고 강아지 구경도 하자며 현관을 향해 아빠의 손을 잡아끌 때 잠깐의 귀찮음 때문에 '조금만 있다가 놀아 줘도 되겠지?'라는 마음의 소리에 이끌려 아이의 요구를 애써 외면하고는 한다.


아이의 바람 들어주기를 잠시 미루었을 때 운이 좋아 뒤늦게나마 아이를 만족시켜 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실패하고 아이에게는 상처를, 부모로서 나에게는 후회를 남긴다.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고자 마음먹었을 때, 아이의 관심이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 갔을 수도 있고, 실망한 나머지 아빠와 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을 수도 있다. 심지어는 날씨나 시간적 여유 등 의도치 않은 환경적 변화로 아이와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함으로써 후회를 남길 수도 있다. 끝없이 흐르는 시간과 아이의 변화무쌍한 마음은 아빠의 게으름을 결코 기다려주지 않는다. 아이와 가장 놀기 좋은 시간은 아이가 놀기 원할 때,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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