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휴직을 하기 전에는 라테 파파가 휴직 후 나의 일상이 될 것임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화창한 봄날 유모차를 끌고 연둣빛 새싹과 형형색색의 꽃들이 수 놓인 아름다운 아파트 단지를 거닐며 주변의 삼라만상을 오감으로 느끼는 다정한 부녀, 유모차 컵 홀더에 있는 은빛 텀블러에는 시원한 스타벅스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경쾌한 바퀴의 굴림에 맞추어 찰랑거리는 모습을 떠올렸다. 때로는 경치 좋은 카페에 앉아 커피와 디저트를 시켜 놓고 서로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커피 한 잔과 우유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부녀의 모습도 그려보곤 했다.
하지만 라테 파파는 얼어 죽을 라테 파파, 육아 현실에서의 라테 파파는 평소에는 꿈도 꾸기 어려운, 어쩌다 한 번 가뭄에 콩 나듯 경험하게 되는 행운에 더 가까웠다.
벌써 햇수로 2년째인 코로나19가 나의 라테 파파 로망을 단지 로망으로 만들어 버리는 데 한몫을 했다. 이제는 몸의 일부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일상이 되어버린 마스크. 마스크를 쓴 상태에서 유모차를 밀면서 커피를 마시기란 마치 자동차 운전을 하면서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 것만큼이나 위험할뿐더러 번거롭기까지 한 일이다. 마스크를 살짝 들추어 빨대로 빨아들이는 한 모금의 카페인 덩어리의 행복감보다 다시 마스크를 쓰는 일 그리고 그 뒤에 김서린 안경이 투명해질 때까지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이 더욱 크다.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커피를 마시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생각하다 보면 다음에는 길 가면서 커피는 마시지 말아야겠다는 결정이 선다.
딸아이가 쑥쑥 자람에 따라 등장하는 새로운 변수들의 등장도 나의 라테 파파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아이가 아직 걸음마를 시작하지 않았을 시절에는 아이를 카페에 데려가는 것이 조금은 수월했다. 유모차에 앉아 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던 아이는 카페로 가는 동안 유모차 안에서 잠들기가 일쑤였고, 혹여나 잠에서 깨더라도 일명 쪽쪽이라고 불리는 공갈 젖꼭지나 떡뻥이라고 칭하는 쌀과자만 쥐여주면 아빠가 우아하게 커피 한 잔을 털어 넣을 때까지 얌전하게 기다려 주었다. 단지 그때 신경 쓰였던 점은 커피 한 잔을 마시겠다고 펜데믹 시국에 걸음마도 못 뗀 어린 아기를 데리고 카페를 찾는 것이 옳은 일인가 라는 내 마음의 소리뿐이었다. 하지만 어느덧 생후 21개월을 넘겨 두 돌을 바라보고 있는 식욕과 호기심, 장난기가 충만한 딸아이와 함께 카페를 찾는 일이란 사서 하는 고생과 같은 일이 되어 버렸다.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의자에서 탈출을 시도하고, 물컵에 물을 따라주는 족족 물을 쏟아 손으로 첨벙첨벙 장난을 치며,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주위 이목을 집중시키는 큰 소리로 불만을 토로하는 아이 덕분에 카페에서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시는 일도 녹록지 않다.
이제는 작년에 직장에서의 생활이 어땠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익숙해진 전업주부의 현실도 라테 파파와 거리를 멀어지게 했다. 매달 손꼽아 기다리던 17일이 되면 통장을 두둑하게 채워주었던 월급. 휴직을 한지 어느덧 6개월이 훌쩍 지나고 나니 이제는 월급날이 그다지 반갑지 않을 만큼 통장인지 텅장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사태가 벌어졌다. 출근할 때 애써 출근 기분을 내기 위해 드라이브 스루를 통해 사 가곤 했던 커피 한잔, 예전에는 그냥 사 마신 커피 한 잔이 통장이 텅장이 되고, 직장인이 전업주부가 되니 대단한 사치품이 된 마냥 귀한 몸이 되셨다. 아내는 아이와 함께 카페를 찾아 커피 한 잔 사 마시고, 집에서 맛있는 음식도 시켜 먹으면서 육아를 하면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리라고 이야기하곤 하지만 휴직을 하고 나서 더더욱 자린고비가 되어버린 현실 아빠는 이제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이 평범하지 않게 느껴진다.
라테 파파는 얼어 죽을…. 여러 이유로 말미암아 꿈에 그리던 라테 파파는 못 되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얻은 것도 있다. 주로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평소에는 알지 못했던 커피에 대한 새로운 매력도 알게 되고, 육아휴직을 한 아빠의 일상은 단순하게 라테 파파로 형상화하기 어려운 다양한 생각과 삶의 모습, 그리고 애환이 녹아 있음을 몸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삶의 다양한 모습을 느끼면서 가족에 대한 소중함과 더불어 평소에는 너무 익숙하게 생각되어 잘 느끼지 못했던 소중한 이들에 대한 감사함도 더불어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매일 새로운 이야기로 넘쳐나는 요즘의 일상이 더없이 만족스럽지만 그래도 가끔은 커피 한 잔 손에 쥐고 우아하게 유모차를 끄는 라테 파파가 되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