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휴가

이제는 셋이 아니면 느껴지는 어색함

by 이정원

연애 시절부터 나와 아내는 쇼핑을 좋아했다. 원주와 춘천을 오갔던 3년 동안의 장거리 연애, 그리고 내가 춘천에 들어오기 전 인제와 춘천을 오가던 또 3년 동안의 주말 부부 생활. 쇼핑을 위해 여주에 있는 프리미엄 아울렛, 하남에 있는 스타필드를 찾을 때면 늘 매장 문을 닫을 때까지 평소에 입어보고 싶던 옷을 입어보고, 자꾸 눈길이 가는 신발도 신어보고, 열심히 돌아다니느라 방전된 체력을 보충하기 위한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분주하게 돌아다니곤 했다.


2019년 겨울 해솔이가 세상에 나오고 난 후, 나와 아내는 삶의 활력소까지는 아니었지만, 이따금 지루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운을 가득 느끼게 해 주었던 자유로운 쇼핑은 더 이상 평범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물론 해솔이가 태어난 후에도 여주 프리미엄 아울렛이나 하남 스타필드를 몇 번 찾기는 했었지만, 찾을 때마다 늘 마지막이 좋지 않았다.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하기 전에는 그저 유모차를 태워 끌고 다니면 될 줄 알았지만, 유모차를 타고나서 조금만 지나면 거짓말처럼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아기 띠를 하고 다니느라 진땀을 뺐다.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하고 나서는 유모차도 싫다, 아기 띠도 싫다고 고집을 부리며 오고 가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쇼핑몰 곳곳을 헤집고 다니겠다고 떼를 쓰는 통에 쇼핑은 고사하고 그날 점심 한 끼나 제대로 먹고 돌아오면 성공적인 나들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늘 마음속에 자유로운 쇼핑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는 꿈을 안고 있던 우리 부부에게 선물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오랜만에 춘천을 찾으신 장모님께서 처제와 함께 해솔이를 돌봐 주신다는 반가운 소식. 모처럼 찾아온 기회에 들뜬 나와 아내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 잠깐 고민하다 늘 찾을 때마다 번번이 후회만 안고 발길을 돌렸던 하남 스타필드 구경을 제대로 한번 해 보자는데 마음이 모아졌고, 해솔이가 낮잠에 빠져들자마자 쏜살같이 차에 몸을 싣고 하남으로 향했다. 스타필드로 가는 길, 개천절 연휴 나들이객들로 도로는 붐볐지만 오랜만에 자유를 얻은 우리 부부의 마음은 바람에 하늘거리며 날리는 깃털만큼이나 가벼웠다.


무사히 주차를 하고 지상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에스컬레이터에 오를 때까지도 우리 부부의 자유시간이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반짝이는 간판을 뽐내며 마치 우리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길게 늘어진 상점들이 눈앞에 들어오고 나서야 우리가 스타필드에 왔다는 것, 그것도 아이 없이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났고 신이 났다. 정처 없이 걸음을 옮기면서 평소에 들어가서 여유롭게 둘러보고 싶었던 상점들을 들락날락거렸다. 입어보고 싶던 옷도 입어보고, 사고 싶던 카메라를 살펴보며 셔터도 눌러보면서.

그런데, 처음에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물건을 구경하는 것이 마냥 신이 났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나와 아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음이 불편해짐을 느꼈다. 늘 아이와 함께 찾았던 곳인데 아이가 곁에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았다. 유독 아이와 함께 찾는 사람들이 많은 스타필드, 그래서 우리 부부도 아이와 함께 찾을 때마다 우리와 비슷한 육아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다른 이들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곤 했던 그곳에 우리 아이는 없었다. 마치 늘 손목에 차고 다니던 시계나, 늘 외출할 때면 등에 메고 다니던 가방이 없는 허전함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의 허전함이 느껴졌다. 아이뿐만 아니라 늘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유모차와 아기띠, 육아 용품으로 가득 찬 가방도 이날만큼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던 소중한 물건인 것처럼 없는 것이 낯설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발길을 옮기던 우리 부부는 3층에 있던 수족관 카페에서 발길을 잠시 멈추었다.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어항 속에서 예쁜 비늘을 뽐내고 있는 광경,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눈길을 끌었지만 마음속 한 켠에는 해솔이가 있었다.


“해솔이랑 아쿠아플라넷 갔을 때 참 좋아했었는데….”


“그러게 말이야, 해솔이도 오늘 같이 왔으면 정말 좋아했겠다.”


수조 속을 헤엄치는 가오리, 상어들을 보며 연신 ‘우와!’ 하며 탄성을 내뱉었던 해솔이, 그리고 얼마 전 나와 함께 찾은 토속어류 전시관에서 물고기들에게 먹이를 주며 기뻐하던, 얼마나 기뻤는지 잠을 자면서도 잠꼬대를 했던 해솔이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런 좋은 구경을 우리 둘이서만 하다니….’ 문득 미안한 생각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에 온통 해솔이가 좋아할 만한 것들 천지였다. 아이만 쏙 빼놓고 좋은 구경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밀물처럼 밀려드는 죄책감, 아마 아내의 마음도 나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아이가 자꾸 눈에 아른거렸고, 아이를 생각하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뇌 기능에 마비가 왔는지 ‘지금쯤이면 한창 저녁을 먹고 있을 시간이겠지?’, ‘늘 머리 감을 때마다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데, 오늘 목욕은 무사히 잘 마쳤을까?’, ‘엄마 아빠가 없는데 무서워서 잠을 잘 못 자면 어떡하지?’ 등등 온통 아이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역시나 아이 걱정으로 언제부터인가 오랜만에 누리는 자유에 대한 기쁨이 싹 사라진 아내도 예정보다 일찍 일정을 마무리 짓고 싶어 했기에 우리는 인근 양 고깃집에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주린 배를 채우고 춘천으로 넘어왔다. 우리가 도착하자 아이는 거짓말처럼 일어나 엄마, 아빠를 찾으며 서러운 울음을 터뜨렸고 한참을 울다 아내의 품에서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의 화려했던 반쪽짜리 휴가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연애 시절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던 둘만의 쇼핑 데이트. 물론 오랜만에 누릴 수 있었던 자유로운 쇼핑, 육아의 무게를 잠시 내려둘 수 있었던 일탈은 좋았지만, 이제는 둘만의 시간이 마치 우리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거나 신발을 신을 것처럼 어색하게 느껴진다. 아이와 아내, 그리고 나. 우리 셋이 함께한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우리가 단순한 사람 셋의 집단이 아닌 하나의 몸처럼 느껴진다는 것, 누구 하나 없으면 불편함이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사랑으로 충만한 가족이기 때문이 아닐까? 늘 함께였기에 특별한 것 없이 느껴졌던 일상, 소중한 줄 모르고 지냈던 아내와 해솔이가 세상에 둘도 없이 소중한 보물이었음을 자유를 누리기 위해 잔뜩 부풀어 떠났던 일탈을 통해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경험해 보는 우리 부부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일탈,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신 장모님과 처제에게 이 글을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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