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미안해

2021.3.15. 육아일기

by 이정원

갑작스러운 아이의 응급실행이라는 큰 사건을 치렀던 지난 금요일… 천만다행으로 아이가 크게 다치지 않았고, 하루 종일 지켜본 결과 괜찮다는 판단이 들어 예정되었던 주말 가족 행사에 참여하였다.


경포 호수가 한눈에 들어오는 숙소, 조식 뷔페로 아이도, 우리도 든든하게 배를 채운 후 백사장이 넓게 펼쳐진 경포해수욕장을 찾았다. 지난밤 형형색색의 화려한 폭죽이 평온한 밤바다를 환하게 밝혔던 곳, 아침을 맞은 백사장은 이른 시간임에도 시원한 파도 소리를 들으며 백사장을 걷기 위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우리처럼 아이와 함께 백사장을 거닐며 파도 구경을 하는 가족단위 관광객들도 여럿 있었다.


양양 낙산에서 처음 파도 소리를 들었을 때 놀라움에 눈물바다를 이루었던 작년 여름과 달리 딸아이도 철썩철썩 해안으로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의 모습과 시원시원한 소리가 신기했는지 한동안 넋을 놓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나와 아내도 오랜만에 펼쳐진 동해바다의 풍경을 보며 감상에 잠겼다.


걸음마를 시작하고 한창 걷기에 재미가 들린 아이는 모래사장에서도 거침없이 걸었다. 평소에 걷던 바닥과 달리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에서의 걷기, 몇 발자국 못 걷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서 몇 발자국 떼는 듯싶더니 다시 넘어지기를 여러 번 반복했지만 폭신한 모래의 촉감이 좋은지 여러 번 넘어져도 싫어하는 기색 하나 없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모래에 털썩 주저앉은 아이는 손으로 모래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장난을 쳤다. 온통 인공인 것들로 넘쳐나는 아파트 주변, 심지어 놀이터에서도 마음 놓고 흙 한번, 모래 한번 만져보기 어려운 환경에서 지내다가 넓게 펼쳐져 있는 부드러운 모래는 아이에게 좋은 장난감이었다. 모래를 집어서 소금을 뿌리듯 바닥에 뿌려보기도 하고, 모래 속에 숨겨져 있는 조개껍데기를 찾고 '우와' 하고 감탄하기도 하고… 즐겁게 노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아이의 신발과 옷, 손이 모래 범벅이 되는데도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아내의 얼굴에는 따뜻한 미소가 가득했다.


아이가 화려한 색의 무언가를 주워 들더니 연신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정체 모를 물체가 아이의 입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터트리고 난 폭죽의 잔해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화들짝 놀라 황급히 아이에게서 그것을 뺐었다. 아름다운 바다의 풍경, 시원한 파도 소리, 그리고 정겨운 아이의 모래 놀이에 넋을 놓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그제야 백사장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형형색색의 쓰레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가 주웠던 것을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폭죽 잔해들, 먹고 버린 컵라면 용기는 물론이거니와 곳곳에 떨어져 있는 담배꽁초, 정체 모를 다양한 쓰레기들까지… 아직 3월, 해수욕의 시즌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음에도 벌써 쓰레기들이 백사장에 넘쳐나는데, 물 반 사람 반인 해수욕철에는 얼마나 많은 쓰레기들이 이곳에 넘쳐날지 생각하니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문제라고는 인식했지만 깊이 와닿지 않았던 환경과 관련된 문제들… 이제는 이곳저곳에서 쓰레기 더미를 볼 때마다, 난개발로 인해 파괴되는 자연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 충격이 속속들이 가슴에 와서 콕 박히고, 머리에 와서 콕 박힌다. 당장의 아이의 건강과 안전,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 속상한 것도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앞으로 아이가 살아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 오는 탓이 더 크다. 지금도 환경 문제로 인한 미세먼지, 지구온난화, 다양한 기상 이변으로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데, 우리 세대가 떠나고 난 후 이곳을 살아갈 우리 아이를 비롯한 미래 세대들은 얼마나 더 큰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아내와도 가끔 이야기하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와 함께 한다는 것은 큰 축복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떠나고 난 뒤 아이가 지금보다 더 어렵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면… 그 죄책감을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지구의 대자연이 내린 선물들은 애초에 우리의 것이 아니다. 인간은 자연의 위대함 앞의 미물 중 하나이며, 다른 종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공동 운명체이다. (애초에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고, 지구를 인간의 구미에 맞게 개척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것이다만… 만약, 인간이 주인이라고 가정해도 진정한 주인이 될 자격은 없다. 어떤 주인이 집 안방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릴 것이며, 앞으로 집에서 살아갈 나의 사랑스러운 후손들에 대한 배려 없이 주어진 모든 것을 소모적으로 낭비하겠는가!) 우리 아이들에게 지구 공동 운명체의 일원으로서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생명체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지혜, 축복을 몸소 가르쳐주지 못할망정 단기적으로는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고, 길게는 앞으로 살아갈 아이들의 삶을 불행하게 하는 미개함을 일삼는 어른들이 과연 아이들 앞에서 당당할 자격이 있을까?


생각해 보면 나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는 않았는지, 함부로 물과 전기 등 자원을 낭비하지는 않았는지, 텀블러를 챙기고, 세척하는 것이 귀찮아 일회용 컵에 든 커피를 마시지는 않았는지…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며 우리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배려 없이 이기적으로 행동했던 지난날의 모습을 반성한다.


부디 우리 아이들이 우리 어른들을 원망하지 않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누리며 건강하고 행복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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