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하루

2021. 3.12. 육아일기

by 이정원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었던 아침이었다. 그 사건만 없었다면…

아내는 출근 준비로 분주했고, 나는 아내가 집을 나서기 전 막 아침 식사를 끝낸 식탁을 정리하느라 한눈을 파는 사이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들리는 찢어지는 듯한 해솔이의 울음소리… 침대 위에서 놀고 있던 아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안 그래도 아이가 우리 집에서 아직 정복하지 못한 언덕, 높은 침대라 받은 충격이 보통이 아니었을 텐데 하필이면 2차로 머리를 그곳에 흉물스럽게 서 있던 운동기구의 날카로운 플라스틱 모서리에 부딪혀 한눈에 봐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아이의 머리를 만져보니 부딪힌 부위가 벌써 부어올라 있었고, 아이는 때아닌 충격에 울음을 그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내와 함께 급하게 아이를 차에 태우고 인근에서 가장 큰 병원인 강원대학교 병원으로 향했다. 뒷좌석에서 서럽게 우는 아이와 놀란 아내를 보며 애간장을 태우는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야속한 출근시간, 도로에 가득한 차들은 도무지 생각처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병원으로 가는 길은 매일 오고 가던 나의 출근길이었지만 월급쟁이가 홀로 차를 타고 갈 때와 가족의 긴급 상황 속에 큰 책임감을 느끼는 가장이 가족과 함께 타고 갈 때의 마음의 무게는 확연히 달랐다.

우여곡절 끝에 병원에 도착하여 아내는 곧장 아이와 함께 응급실로 가고, 나는 주차를 한 후에 합류하여 두 여인의 곁을 지키려고 했다. 하지만 야속한 코로나19로 인해 환자 1명당 1명의 보호자만 동행할 수 있었기에 아이와 아내가 진료를 마치고 오기까지 긴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 아내와 메시지를 주고받고, 아내가 보낸 사진을 보며 아이의 진료 순서를 기다렸지만 좀처럼 아이의 차례는 돌아오지 않았다. 차례가 돌아오기까지 한 시간 반 동안 밖에서 기다리던 나도 초조했고, 겁에 질려 울음을 거두지 못하는 아이와 함께 응급실의 낯선 환경에서 기다리던 아내의 몸도, 마음도 지쳤다. 병원에서의 한 시간 반, 더구나 아픈 가족의 진료를 애타게 기다리는 시간은 말 그대로 영겁의 시간이었다.

긴 기다림 끝에 아이가 엑스레이를 찍었고, 아내와 교대를 하여 내가 응급실로 들어가 결과를 기다렸다.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아픔과 놀라움, 처음 경험하는 방사선 촬영과 평소와는 딴판인 응급실 환경에 대한 충격과 공포가 쓰나미처럼 몰려왔는지 아이는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정말 세상 서럽게 우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가 우는데도 좀처럼 다가오는 이 없는 응급실의 무정함에 한 번 서러워졌고, 이 상황에서 아빠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달래주는 일 밖에 없다는 현실에 두 번 서러워졌다. 아이의 아픔 앞에서, 그리고 해결해 줄 수 없는 무능한 아빠는 한없이 작아졌다.

다행히도 아이의 엑스선 촬영 결과를 보니 골절은 없는 것 같았다. 피고임을 비롯한 엑스선으로 확인할 수 없는 다른 문제적 상황의 가능성이 있었지만, 아직 어린아이에게 있어 CT 촬영은 위험했기에 주말 동안 아이의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오전 내내 놀라움, 고통과 공포 속에서 시간을 보냈던 아이는 차에 타기 무섭게 골아떨어졌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동안에도, 침대에 내려놓는 동안에도 평소의 밝은 잠귀와 예민함이 무색하게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역시나 오전 내내 놀라움과 아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무거운 시간을 보냈던 우리 부부도 놀란 가슴을 조금은 진정시켰고, 곧 엄청난 피로가 몰려왔다.

천만 다행히도 아이는 잠에서 깨어나 평소처럼 즐겁게 하루를 보냈다. 아직 고통이 채 가시지 않은 머리가 어딘가에 닿아 불편함을 느낄 때를 빼곤 책도 읽고, 집안 이곳저곳을 어설픈 걸음으로 걸어 다니며 흩트리고 아빠 엄마와 장난을 치며 노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웃음기 싹 사라졌던 우리 부부의 얼굴에도 다시 미소가 돌아왔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오래되고 익숙해지면서 가장 기본적으로 신경 써야 할 아이의 건강과 안전과 관련된 일을 안일하게 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되는 하루였다. 천만다행으로 아이가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의 품에 안길 수 있었지만, 만에 하나 오늘 일로 인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면… 그로 인해 더욱더 고통스러워할 아이의 모습과 크나큰 죄책감을 느꼈을 나의 모습을 생각하면 아직도 손발이 떨린다. 부모로서 아이에게 정서적으로 교감을 해 주는 것, 아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아이를 적절하게 뒷바라지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주는 것이라는 것을 오늘 일로 뼈저리게 느꼈다. 아이의 건강과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행복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 같다.

아이의 고통스러운 표정과 공포스러운 울음, 병원으로 가는 길에서 느꼈던 답답함과 초조함, 아이의 진료 결과를 기다리며 애간장을 태웠던 마음, 타인의 고통에는 크나큰 관심이 없는 듯 너무나 일상적이고 냉정했던 응급실의 풍경을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다. 하지만, 오늘의 힘들었던 하루, 잊고 싶었던 기억을 가끔은 꺼내어 과연 나는 아빠로서 기본에 충실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볼 필요성은 느낀다.

부디 큰일 없이 이 고비가 지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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