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프롤로그

by 유영

"왜 이제 왔어요?"


초등학교 4학년, 대학 병원의 정형외과 교수님이 제 귀를 막으며 아빠에게 한 얘기입니다. 따뜻한 손이 귀를 감쌌지만 애석하게도 차가운 목소리는 잘 들렸어요. 그때 귀를 막았던 교수님은 훌쩍 큰 저에게 '자기 병을 몰라서 항상 뭐만 말하면 다 괜찮다 그래'라고 하니다.


그래요. 저는 제 병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아는 것은 울리히 선천성 근디스트로피, 희귀 난치성 근육병. 근육이 점점 약해지는 희귀병이라는 정보뿐입니다. 호흡 근육과 심장도 약해진다는 것도. 하지만 근육병 중에서도 희귀한 유형이라 연구 결과가 얼마 없어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점만 알고 있어요.


태어날 때부터 걸음을 잘 못 걸었고, 힘이 약했습니다. 누가 봐도 불편한 다리였어요. 엄마의 유전이었기에 적어도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라는 것은 분명했으나, 엄마는 자신의 정확한 병명을 몰랐기에 저 또한 병명을 알지 못했습니다.


왜 선천성인데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갔냐면, 아빠는 제가 태어날 때부터 엄마와 나에게 가정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6학년 까지는 저를 성추행 했요. 러니 제 병은 관심 밖의 일이었던 것입니다.


집은 저에게 고통스러운 곳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학교도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장소는 아니었어요. 저는 어디에서도 위로받지 못하고 마음이 정착할 곳이 없었던 아이였습니다.


여기까지는 2020년 4월에 집을 나와 쉼터로 들어가기 전의 삶.


2020년 4월, 엄마와 함께 집을 나갔습니다. 우연찮게 고시원 총무님의 지인분이 가정폭력 피해자를 지원해 주는 분이셔서 살아남았어요. 도움을 받아서 쉼터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2020년 11월에 쉼터를 퇴소하고 엄마와 집을 구해 살다가,


4년 후 2024년 4월 13일에 엄마가 돌아가셨습니다.


희귀병이 불행의 전부는 아니더라고요.


아무런 가족도 없이 홀로 남았습니다.

어쩐지 불행한 삶을 살라고 떠미는 것만 같아요.

매일 약해질 일만 남은 저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요.


그러다가, 문득 쉼터에서 저에게 자신의 불행했던 얘기를 해주며 "유영이는 힘들게 살아갈 것 같아. 원래 내 얘기를 안 하는데 안쓰러워서 말해줬어. 나만큼의 아픔이 있어도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으면 위안이 되지 않겠어?"라고 하셨던 조리원 선생님이 떠올랐습니다.


아,

위안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껴야겠습니다.


매일이 약해지는 일만 남았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 속에서 느낀 것들도 많았어요.

앞으로도 경험하는 것이 많을 것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단 한 사람에게라도 닿을 수 있다면.


마음을 주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쓰는 이야기,

매일이 약해지는 인생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