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처음부터 알았던 것은 아니었기에

초등학교 이전의 기억

by 유영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가정폭력은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아주 어릴 적부터 아빠가 폭력을 휘두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도 아빠가 제가 보는 앞에서 엄마를 때리기 시작한 건 제가 아빠에게 뺨을 맞은 이후로 기억됩니다.


그전까지는 아빠가 좋았습니다. 저는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두드러지게 기억할만한 사건이 없어서 초등학교 입학 이전의 기억은 많이 남아있지 않으나, 초등학교 입학 전의 기억 중 몇 가지 기억나는 것들은 거의 좋은 기억들 뿐입니다. 새벽에 아빠는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저는 편의점에서 파는 어묵탕을 먹으며 곤약을 보고 "아빠, 이게 뭐야?" 하고 물으면 "흰 어묵이지 않을까?" 하며 이야기하기도 했었고요. 장난감 주전자에 딸기 우유를 담아서 장난감 컵에 따라달라고 해서 아빠가 열심히 씻어와 딸기 우유를 따라주셨던 기억도, 그 맘때 즈음에 같이 ‘도라도라 영어나라’ 애니메이션을 즐겨봤던 기억도 선명합니다.


초등학교 이전의 집은 기억나지 않지만 저희 집은 가난했습니다. 아빠는 후천적으로 교통사고로 인하여 팔 한쪽을 못썼고, 엄마는 근육병으로 인해 둘 다 일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빠가 밖에 나갔다가 잔뜩 비에 젖어서 들어와 쫄딱 젖은 5만 원을 들며 셋이서 기뻐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리고 조금은 웃기게도, 저는 거의 메이플스토리 게임으로 글을 배웠습니다. 엄마가 의자에 앉아계시면, 그 위에 앉아서 PC방에 간 아빠랑 채팅을 하며 대화를 나눴습니다. 작은 컴퓨터의 창에서 나누던 대화는 저의 글공부나 마찬가지였고, 소소한 행복이었습니다.


그때까지는 꽤 다정한 아버지의 역할을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빠가 무섭다거나, 싫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으니까요. 술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고, 오히려 술을 드실 때에 어묵탕이나 과자를 먹을 수 있었기에 그 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했었습니다. 저에게 남아있는 기억 중에서, 그다음의 기억은 뺨을 맞았던 기억으로 넘어갑니다. 그 이후의 기억부터는 아빠를 무서워했고, 조금씩 본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도, 지금도 왜 뺨을 맞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저 술에 취한 아빠가 제 뺨을 때렸고, 퉁퉁 부은 볼을 감싸며 울다가 할아버지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으라고 내밀어서 받으며 괜찮은 척 아무런 말도 못 하고 통화를 했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그 이후로는 제가 보는 앞에서 엄마에게 욕을 하거나 때리기 시작했고, 제가 컴퓨터를 하고 있다가 뒤를 돌아보면 두 분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성관계를 하셨던 것. 엄마가 컴퓨터 하라며 손짓을 하셨던 것이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그것이 일상이었고, 계속 반복되다가 초등학교 입학을 일 년 늦게 했습니다. 그동안은 엄마가 일 년 늦게 입학 한 이유를 누군가 물어본다면 '좀 아파서'라고 대답하라고 했지만, 저는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비에 쫄딱 젖은 5만 원으로 기뻐할 만큼 저희 집은 가난하다고 했었죠. 온수가 나오지 않아 제대로 씻기가 어려웠습니다. 물을 끓여서 뜨거운 물을 만들어 찬 물과 섞어서 씻어야 했기에 거의 씻지 않았고 엄마와 저의 머리카락은 떡이 져서 빗질도 어려울 만큼 엉켜있었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녀야 하는데 그런 모습으로 갈 수는 없으니, 셋이서 미용실을 갔습니다. 그때의 미용사 선생님께서 친절히 머리를 다듬어주셨지만, 부끄러웠던 감정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폭력이 제 눈에 보이지 않았던 당시의 아빠를 '다정하다'라고 표현은 했지만, 사실 방치 되어오며 자라온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으니 제가 초등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것도 관심 밖의 일이었을 겁니다. 다녀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미용실에 데려가 수습을 하고 보낸 것이겠죠. 부모님은 저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지 않았기에 혼자서 색종이로 머리카락을 만들어 미용실 놀이를 하거나, 동화책을 가지고 컴퓨터를 만들어 논다거나 집에서 혼자 놀았던 기억뿐입니다. 그래서 부모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메이플스토리를 하던 시간과 늦은 밤 아빠와 술과 어묵탕으로 대화를 나눴던 기억만이 좋게 남아있었나 봅니다.


제가 그때 만났던 사람은 부모님 뿐이었고, 또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던 상황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 1학년 때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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