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는 용기가 있을까.
교양 강의 시간에 교수님께서 <가타카>라는 영화를 보여주셨다. 운명을 거스르는 주인공의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운명 안에서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는 이의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우주 비행은 꿈도 꾸지 못할 부적격자 주인공이 꿈을 이루기 위해 다른 이로 탄생하여 자신의 유전자를 숨기고 나아가는 줄거리다. 우리는 어떤 몸을 가지면 가장 완벽히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될까.
"난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아서 널 이기는 거야."
<가타카> 영화의 대사 중 일부분이다.
나에게도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는 용기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쓰지 않게 된 지 너무 오래되었다. 나에게도 되돌아올 힘을 남겨두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는 시기가 있었던 것도 같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나는 이제 나아가는 것보다 되돌아오기 위해서 더 힘을 쓰는 것만 같다. 뒤돌아보지 않는 마음, 무한히 자신의 알을 깨고 세계를 마주한 이들만이 꿈에 도달할 수 있다면 결국 꿈을 가지지 못하고 현실을 택하는 것은 내가 되겠지. 알면서도 매번 그런 방식이다. 다음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주인공처럼 나도 나에게 주어진 예상 수명을 아니까. 주인공처럼 예상 수명 보다 더 오래 살기 위해 애쓰지도 않는다. 어쩌면, 나에게 예전처럼 행운이 찾아오지 않는 까닭은 불행을 이겨내려 하지 않고 같이 침몰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문장을 적고 나서야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랬구나, 그렇구나.
오늘 호흡기 점검을 받았다. 2~3주 전의 밤에 호흡기를 차고 자던 도중, 호흡기 호스가 빠져서 다시 연결하려고 했는데 연결이 되지 않았다. 결국 3주 정도 호흡기를 차지 않고 잠을 자야만 했다. 오늘 점검을 받고 보니 간호사 선생님께서 호흡기 호스 연결을 이어주는 부분이 분실이 돼서 연결이 안 된 것이라고 하셨다. 그랬구나.
호흡기 점검을 받고 장애인 콜택시를 불러 밖으로 나갔다. 원래 휠체어가 고장이 나서 제대로 작동이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오늘은 유독 아주 조금만 가도 '기계 보호'라는 소리와 함께 덜커덩 소리를 내며 멈추는 것을 반복하여 겨우 학교에 왔다. 망가진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은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나뿐이었다. 휠체어 회사에선 점검을 해봤는데 이상이 없다며 다시 돌려보낸 휠체어였다. 네가 이상하다는 것을 아는 건 나뿐이었다. 남들 앞에서도 보호하기 위해 작동을 멈춰주지 그랬어. 그랬다면 고칠 수 있었을 텐데, 왜 나에게만 네 오류를 보여주는 걸까. 그렇구나.
오류가 난 것들은 잘못이 없다. 연결 부분이 분실되었던 호흡기도, 자꾸만 오류코드를 발생시키는 휠체어도 태어난 잘못은 없는 것이다. 설령 고칠 수 없더라도 말이다. 유전자에 대한 영화인 <가타카>는 나의 유전적 문제로 인해 발생된 근육병도 되돌아올 힘이 있다고 말하는 걸까. 영화 속 사고로 인해 후천적 장애인이 되어 다리를 못 쓰는 유진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유진도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았을까?
자꾸만 <가타카>의 유진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단편 중 하나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노인이, <마녀 배달부 키키>의 키키가 삶에 예고도 없이 들어와 앞을 향해 나아가는 뒷모습을 보여준다. 사회복지가 전공이면서, 뜬금없이 콘텐츠를 복수전공으로 대뜸 선택해 버린 과거의 내가, 과학은 제대로 배워보지도 않았으면서 생전 관심도 없지만 영역 중 하나를 들어야 해서 들은 미생물학 교양 강의에서 오늘 보게 된 <가타카>가, 뒷모습을 내비치지 않는 나에게 알려주기라도 하는 걸까.
<가타카>의 뜻은 DNA를 구성하는 네 염기 A·G·C·T의 머리글자를 조합해 만든 단어라고 한다.
나를 이루는 DNA가 결함이 있어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더라도, 마녀 배달부 키키의 마법이 휘청이는 날이 있더라도, 결국 뒤를 돌아보지 않는 마음으로.
어떤 부족은 완벽의 재료가 될 수 있던가.
어떤 부족은 완벽의 재료가 되어
어떤 부족은 완벽의 재료가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