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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rtleby 주은 Mar 11. 2021

3월의 불청객

아직 끝나지 않은 겨울 그리고 눈 소식

비가 내렸다. 봄비 치고는 꽤 굵고 호탕한 빗줄기였다. 아직 닫혀있는 창 밖에서 풀냄새 흙냄새가 빗소리와 함께 스며들었다. 창가 쪽으로 슬슬 발을 옮기며 아기에게 말을 건넸다. “강아, 비다! 봄비가 온다.” 아기를 한 팔로 안고 다른 팔을 뻗어 창문을 열었다. 방 안에 빗소리가, 향기로운 봄 내음이 성큼 들어왔다. 비를, 봄을 맞이했다.


빗줄기가 가늘어질 즈음 열어둔 창문으로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 소리가 들렸다. 고인 물을 첨벙이며 신이 난 모양이었다. 아기에게 창 밖 풍경을 보여줄 요량으로 다시 창가에 섰다. 첨벙첨벙 발을 구르며 노는 아이들이 입은 알록달록 우의와 장화가 예뻤다. 그리고 한 아이의 장화처럼 노오란 개나리가 골목 저편 담벼락에서 빼곰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흙냄새, 풀냄새, 비냄새, 봄냄새. 흙내음, 풀내음, 비내음, 봄내음. 흙향기, 풀향기, 비향기, 봄향기.


아기 목소리가 들렸다. 잠에서 깨어보니 꿈이었다. 아직 어두컴컴한 방, 암막커튼 위쪽으로 빛이 보였다. 이미 해가 뜬 모양이었다. 이 방의 커튼을 젖히면 널찍한 도로가 보인다. 주택은 대부분 2층이고 상자처럼 생긴 다세대 주택도 여간해선 3층은 넘기지 않는다. 동서남북 어디서나 널찍히 열린 하늘을 볼 수 있는 캐나다 대평원의 땅. 그중에서도 북쪽의 어느 시골. 여기가 내가 사는 마을이다. 요 며칠 날이 포근했지만 겨우내 차곡차곡 쌓인 산더미 같은 눈을 다 녹이기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눈 소식이 있댔다. 높아진 습도가 되살려낸 몸의 기억이라는 것이 봄비라니. 생활을 위해 캐나다에 온 지 어느덧 세 해가 넘어 네 해 가까이 되어가지만 나는 여전히 이 땅에 정 붙이는 일에 인색하다.


떠남이라는 것은 늘 있었기에 그리움도 언제나 있었다.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이사를 하면, 이 직장에서 저 직장으로 이동을 하면 늘 이전에 머물던 곳이 그리웠다. 언젠가 걸었던 길이, 머물던 작은 공간이, 때론 스냅사진처럼, 때론 영상으로 남아 뜬금없는 방황을 추동하곤 했다. 그러니 이국에서의 삶이 어려운 것은 그리움 때문이 아니라 그리움의 해소를 무한정 미룰 것을 요구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내 기억 속의 장소들은 무작정 길을 나서기에 너무 멀리 있다.


인구밀도가 낮아 코로나 시대에도 거리두기가 어렵지 않고 미세먼지도 없지만 새로운 동네에 이사를 가면 조용히 집을 나서서 비밀스런 골목을 구석구석 헤매고 다니던 나는 없다. 마치 이 장소와는 관계를 쌓지 않겠다고 마음이라도 먹은 사람처럼 나는 밤이고 낮이고 겨울이고 여름이고 집에만 있는다. 한편 집 밖을 나서면 온통 흰 눈으로 덮인, 백인들의 세상이 펼쳐진다. 나와는다른 피부색을 가진, 다른 말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세계다. 어쩌면 나는 나도 모르게 남의 영역에 잘못 발을 들인 불청객 같은 느낌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눈이 오려고 하늘이 찌뿌둥하다. 나는 비를 맞을 준비가 다 되었는데 눈이라니 아무래도 반갑지는 않다. 하긴 너라고 눈으로 내리고 싶어 그리 오는 것은 아니겠지. 그래 눈에게 잘 해주자. 불청객이라 한 들 이미 온 손님이라면 잘 대접해야 옳다고 생각을 정하고 나니 마음이 따뜻해지고 봄도 조금 가까워진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렇게 웅크린 마음을 조금씩 펴면 나도 씩씩한 불청객이 될 수 있을까?


오늘의 창 밖 풍경. 아직은 눈이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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