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eenautes 프리나우트 Jul 16. 2023

그 비닐하우스에는

유난히 달이 밝은 밤. 몇십 년에 한 번 찾아오는 프리미엄 블루 슈퍼 문이라나 뭐라나. 보다 보면 달빛이 퍼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둥근 것 같기도 하고 일그러진 것 같기도 하고. 눈앞이 흐릿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중요한 건 지금 내 앞에 펼쳐진 논두렁 길에는 지나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저기 멀리 목적지인 우리 학교가 보인다. 15분이면 걸어가는 이 길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길어 보이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인 건 쑥쑥 뻗어 나는 퍼런 쌀잎과 조롱조롱 맺힌 쌀알까지 보일만큼 달빛이 훤하다는 사실이다.


나는 지금 학교 앞 자취방에서 생활 중이다. 동아리를 핑계 삼아 놀고먹는 데 집중하려고 집을 나왔다. 예상과는 달리 마시는 데 집중하고 있어서 열나게 아르바이트를 뛰느라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다. 오늘도 그렇다. 친구들의 꼬심을 거절하지 못했다. 아니 그러니까 왜 그 새로 생긴 오뎅집은 잡아가지고 이 꼴을 만드냐는 말이다. 


오뎅이라고 하면 길바닥에서 먹는 기다란 막대기에 겹겹이 접혀 꽂힌 것이 전부인 줄 알았다. 오뎅집이라고 해 봤자 서서 먹던 오뎅을 앉아서 먹는 차이 정도라고 생각했다. 칸칸이 나누어진 커다란 통 속에 늘어져 있는 듣도 보도 못한 생김새와 맛의 오뎅을 보는 순간. 여기가 천국이지 싶었다. 뜨끈한 오뎅과 함께 마시는 정종. 캬아. 정말 꿀맛이었다. 한 잔만 한 잔만 타령을 하다 보니 학교로 들어가는 막차는 떠났고 나는 논두렁길에 남았다. 이놈의 술을 끊어야지 원. 집에서 알면 시집도 안 간 처녀가 밤늦게까지 술 처먹고 돌아다닌다고 노발대발할 게 뻔하다. 


낮이야 이 길도 뭐 다닐만하다. 버스비 아끼느라 걸어 다닌 것도 한두 번이 아니고. 눈 감고도 걸을 수 있는 길이라고 자신하지만. 밤에는 또 이야기가 다르다.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있는 비닐하우스가 영 으스스한 것이. 꼭 뭐라도 나올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학교 내에서는 거기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느니 사람 같은 게 보였다느니 말이 많다. 멋모르고 밤중에 몇 번 논두렁길을 걸은 나는 나중에야 비닐하우스 이야기를 듣고 그 뒤로는 조심하는 중이다. 원수 같은 술 때문에 늦을 때는 누굴 부르거나 피 같은 돈이 아까웠지만, 택시를 불렀다.


그런데 오늘은. 멍청하게 쏜다고 있는 돈을 다 내고 지갑이 텅텅 비었다. 거기다 술 먹고 괜히 친구에게 전화해서 하소연하다가 전화기 전원은 꺼먹고 말았다. 어쩌겠는가. 걸어야지. 두 다리는 멀쩡하니까.


초점이 맞지 않는 눈을 최대한 학교에 고정했다. 골만 바라보고 걸을 심산이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서 그런지 학교가 자꾸 바닥으로 내리 꽂히는 것 같았다. 크게 한숨을 내 쉬고 발을 내 디뎠다. 최대한 씩씩하게. 멋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팔다리를 휘저으며 비닐하우스에 가까이 다가갈 때였다. 아주 잠깐. 빛이 번쩍인 것 같았다. 언뜻 별똥별인가도 싶었다. 별이 눈앞에서 플래시처럼 이렇게 확 터지듯이 환할 수도 있나? 깜짝 놀라 두리번거리는 눈에 이번에는 기다란 그림자 같은 것이 보였다. 농기구라고 하기에는 실루엣이 사람에 가까웠다. 머리와 어깨 팔다리 몸통. 


“꺄악!”


있는 대로 비명을 내지르며 달렸다. 빙글 대던 세상은 퉁퉁 튕기듯이 흔들리더니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마에서 솟은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뭐야, 뭐냐고! 눈앞에 보이는 학교는 가까워지지는 않고 어떻게 더 멀어지는 것 같았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는 이제껏 달릴 때 느꼈던 것과 차원이 다르게 빠른데 풍경은 느리게 지나갔다. 나 지금 달리는 거 맞아?


갑자기 몸이 하늘을 날았다. 이번엔 또 뭐야. 차가운 감촉과 함께 서늘하고 진득한 것이 얼굴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들었다. 살갗에 닿는 꺼끌꺼끌한 것들이 움직일 때마다 걸리적거렸다. 그 밝던 달은 어디로 간 건지 눈앞이 시커멨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누구….”


달빛을 등진 실루엣이 아까 그 비닐하우스에서 본 그림자와 똑같았다. 


“귀…. 귀신!”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려고 했지만 어떻게 된 건지 팔다리가 무거워서 움직여지지 않았다. 귀신이야. 그 귀신. 소문으로 듣던 그 귀신. 온몸이 차갑다. 죽는 건가. 갑자기 번쩍하는 불빛이 비쳤다. 나는 도깨비불이 달려드는가 싶어 눈을 꼭 감았다가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저기요. 저기요. 아 놔. 뭐야. 비닐하우스에 가서 똥 싸는 거 들킨 거 같아서 비밀로 해달라고 말하려고 쫓아온 건데. 귀신은 무슨 지랄 쌈 싸 먹는 소리지.”







참여 중인 첫 문장 스터디에서 작성한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스터디 출처 : <첫 문장 스터디> https://blog.naver.com/dalbit_salon/223090437879

매거진의 이전글 헤맴의 끝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