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진짜 의사 더 해야하나 고민할 정도로 날 너무 고통스럽게 한 역대급 이벤트가 있고 나서, 내가 뭘 한다는 게 너무 무섭고, 자꾸 내가 뭘 할 자격이 있을까란 조심스런 마음이 앞선다. 거기 같이 있던 사람들은 꽤나 무덤덤한 것 같은데, 나만 유난인가? 아님 다들 마음은 힘들었지만 꾹 누르고 살아가는 건가? 자칫 방심하면 꾹 눌러놓았던 그 순간들이 떠오르고 모든 걸 곱씹어보게 된다. 그만하자 해놓고 다시 꼭꼭씹어 되새김질하는 일. 평소의 나라면 이런 일을 겪고 이번을 기회삼아 다음에 잘하면 된다- 후회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지금 잘하자-했겠지만, 이 미련한 짓을 당최 멈출 수가 없다.
그래도 다행히 한 밤 자니까 그 날 느꼈던 peak 감정의 절반 정도로 마음이 진정되었다. 그래, 두 밤 자면 또 절반이 되고 세 밤자면 또 그 절반이 되겠지. 난 회복탄력성도 좋은 편이라 내일 더 나아질거라는 건 믿어 의심치 않는데 그 날 본 보호자의 표정은 오늘 내 꿈에 나왔듯이 언젠가의 내 꿈에 꼭 다시 찾아올 것만 같아서. 사실 그게 힘들다.
인턴 때는 차라리 죽음에 의연했었다. 사후처리도 하고 cpr도 하면서 오히려 죽음에 익숙해지고 어쩌면 내 인생에서 저 멀리 있었던 죽음이랑 가장 가까워졌던 시기기도 했다. 굳이 밸런스를 따지자면 죽음보단 삶이 가까운 마취과를 오게 되면서 한동안 죽음의 무거움에서 벗어나 아주 솔직히 밑바닥 깊은 곳에선 내가 살릴 수도 있겠다란 오만함도 생겼었던 것 같다.
할머니가 너무 보고싶다. 아무렇지 않게 웃고 다닐 걸 알아서 출근하기도 싫었다. 그냥 이대로 할머니한테 가서 울다오고 싶었다. 사랑이란 게 뭔지도 모를 나이서부터 지금까지 내가 너무 사랑했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우리 ㅇㅇ이, 할머니는 항상 네 옆에 있지' 하셨기에 대부분의 큰 일들에서 금방 울다 툭툭 털고 일어나는 편이였다. 근데 이번엔. 잘 있다가도 갑자기 누가 그 일에 대해서 물어보기만 하면 눈물이 후두둑 난다. 내 탓이 아님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도 배고프고 잠이 오는 게뭐가 이리 부끄러운건지.
비가 쏟아지는 오늘, 환자분의 발인이라고 생각하니 숨이 턱턱막힌다. 그래도 꾸역꾸역 몸을 일으켜 출근하는 길에 산 커피엔 좋은 하루 되세요 라는 말이 써있다. 이걸 오전이 다 흐르고 오후가 되어서야 확인하다니 확실히 정신이 빠지긴 빠져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