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 할은 학교 덕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커리어의 시작을 처음부터 생각해 보니, 거기에는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장이 있었다. 맥쿼리 증권에서의 취업은 ABN AMRO증권 (후에 서울 오피스는 RBS증권에 인수가 되었고, 현재는 말레이시아계인 CIMB소속이다)의 6개월 인턴경력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연세대 취업사이트에서 찾아낸 ABM AMRO증권의 인턴공고에 도움이 된 것은 내가 그전에 했던 인턴경험들 때문이었다. 그 인턴 경험들의 시작은 대학교 선배들이었다.
나는 인턴을 총 4번 했었다. 뭐든지 준비를 철저하게 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나는, 3학년 1학기 때부터 방학마다 꾸준하게 인턴을 했다. 처음의 시작은 경영학과 동아리 선배의 소개로 들어간 DBS (Development Bank of Singapore) 한국지사에서 무역 신용장을 담당하는 부서였다. 여자분들이 많았고, 점심에 광화문 주변의 맛집에서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다. 그 당시에는 커리어를 어떻게 가져가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외국계라는 곳의 분위기는 이렇구나 - 정도는 느꼈었고, 많은 고객사들이 찾아왔던 여성 트레이더분이 참 멋있다고 생각했었다.
두 번째는 지금은 컴투스로 불리는 게임빌의 마케팅 및 전략팀이었다 (아직 모바일 게임이 뜨기 전이었다). 여자가 많이 없었고, 남자개발자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서울대 근처의 사무실이었다. 연합 동아리 선배가 소개해준 자리였다. DBS와는 정말 문화가 달랐고, 아직도 기억에 남는 말은 '그런 말투로 말할 거면 앞으로 일할 생각하지 마세요' 였었고, 나는 아직도 그분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문화'가 남달랐던 것 같다. 밤새서 개발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신기한 듯이 그들을 바라보면서 게임이란 건 이런 것이구나,라고 느끼기도 했다. 전 인턴생활과 정말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은 여자가 많이 없었는데, 나와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남녀차별을 느낀다면서 눈물을 글썽였던 기억이 난다. 그래, 지금도 여자가 일하기 힘든데 그때는 더 힘들었겠지. 몇 개의 단어를 생각해 보자면, 젊음, 힘듦, 생기발랄함, 남자위주였던 것 같다.
여기 인턴십을 통해서 나는 내가 마케팅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숫자화 해서 전략을 정리하고 대화하는 파이낸스가 더 잘 맞는다고 느꼈다. 교환학생에서 금융 관련 수업을 들은 후, 연세대 취업게시판에서 찾은 딜로이트 안진 회계법인의 FAS (Financial Advisory Service) 팀에서의 인턴기회를 얻은 나는, 캐나다 교환학생이 끝난 후 여행도 하지 않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끊임없이 일하는 나의 성격이 거기서도 나왔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후회하는 부분이다.
나는 부동산 FAS팀에 들어갔고, 특유의 성실성으로 잘 적응해 나갔다. 당시 청라국제금융도시 관련한 딜의 입찰하는 팀에 들어갔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거기서 정말 많이 배웠다. 정말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만났다. 심심하면 FAS팀 분들의 레쥬메를 정리해 둔 폴더에서 레쥬메들을 '공부'했는데, 다들 정말로 열심히 살아서 취업했구나 라는 걸 느꼈다. 밤샘 근무, 그리고 입찰에 넣는 마지막 보고서를 검토하는 회의장에서 자욱했던 담배연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어떻게 보면 외국계 금융회사지만 부동산 팀이었기에 문화는 수직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인턴이자 막내인 나에게 딱히 그 문화가 어렵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정라 딜에 투입되고, 딜을 수주하는 것까지 보고 나는 학교로 돌아갔고, 그때가 4학년 1학기 때였던 것 같다.
그 당시에 나는 외국계 증권회사에 들어가고 싶었었다. 파이낸스가 나랑 맞다고 생각했었고, 그중에서 일의 강도는 높지만 연봉을 많이 받는 외국계 증권회사에 들어가고 싶었다. 당시에 나에게는 선망의 회사들이었던 곳에 취업을 했던 선배들에게 레쥬메를 검토받고, 조언을 얻었는데, 모두 하는 말이 같았다. 외국계 증권사에서 인턴을 하라는 것이었다. 무조건 인턴 경험이 있어야지 정규직으로 갈 수 있다고 했었다.
그 후에 연대 취업계시판을 이 잡듯이 뒤졌었던 것 같다. ABN AMRO, Morgan Stanley, Societe General 등등 그냥 외국계 증권회사면 부서도 보지 않고 그냥 다 넣었었다. 참 그때만큼 열심히 살았던 때가 있었나 싶다. 부서도 잘 안 보고 지원했었는데 결과적으로 나와 맞았던 리서치 부서에서 인턴을 하게 된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ABN AMRO 리서치 부서에서 인터뷰를 보자고 연락이 왔고, 나는 나의 리서치 커리어의 시작을 찍은 그곳에서 6개월간의 인턴생활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인턴을 지속적으로 쓰는 ABN AMRO의 리서치 부서는, 인턴 후 다른 외국계 하우스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경우가 많아서 '리서치 RA 사관학교'라고 불렀었다.
영어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ABN AMRO와 맥쿼리에 대한 경험을 쓰게 되기에 그전에 이 글을 먼저 올리게 되었다. 과거를 기억하면 쓰는 것은 왠지 모르게 간지럽고, 생각해 보면 고마운 것들이 많았음을 깨닫게 된다. 대학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던 나는, 학교라는 울타리를 딱히 고맙게 여기지 않았었다 (나의 학점에는 F도 있다). 오히려 나보다 잘 사는 아이들 앞에서 움츠러들면서 원망도 했었다. 하지만 그 울타리의 인프라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지금도 그 인프라는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감사하게, 고맙게 생각하기로 한다. 영어가 네이티브가 아니었어도, 그 인프라 덕에 회사생활을 할 수 있었고, 다음글에는 그 이야기를 써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