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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오도 Feb 06. 2024

니하오 코리안

외모적 알고리즘


“니하오, (중얼중얼•••)”


런던 센트럴에서 겪었던 일이다. 처음 보는 중국인이 나에게 중국말을 건넨다. 시내 주변 소음으로 인해 선명하게 들리진 않지만 도움을 청하는 어투임을 확신했다. 대개는 길을 물어보는 경우인데 언더그라운드 근처에선 데이터가 잘 터지지 않아 지하철 역 앞 번화가에서 유독 이런 일이 잦다. 이곳의 아시아인들은 대뜸 중국인으로 분류되곤 한다. 그럴 때는 아주 잠시 고민이 든다. 어떤 언어로 대답할지. 아주 기초적인 중국어는 알아듣는 터라 정중히 회피하듯 대답했다. “아임 코리안”이라고. 그러자 상대는 자연스레 영어로 질문을 이어간다. 역시나 길을 검색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중국어로 대답했으면 상황이 꽤나 어려워질 뻔했다. 가장 어려운 순간은 나도 모르는 새 무심코 중국어로 답한 경우이다. 국적과 언어 구사 여부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깜빡이 없이 들어온 중국어에 되지도 않는 실력으로 맞받아쳐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땐 한국어로 쏘아붙여야 하나 싶다.


센트럴에 약속이 있으면 종종 덤으로 차이나 타운에 들러 훠궈를 먹으러 간다. 먼 길을 나설 때 일종의 보상이다. 식당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종업원과 필사적으로 눈을 마주친다. 메뉴 주문은 어렵지 않게 하는데 돌아오는 중국어가 어렵다. 종업원이 손님을 중국인으로 구별할 때부터는 손님이 그의 말을 이해하고 말고는 문제가 아니다. 난생처음 듣는 긴 중국어에 어질 하다. “팅부동 (听不懂, 못 알아듣겠다).” 처음 중국을 방문했을 때 배웠던 말이다. 이 말이면 다 된다. 이 말을 영국에서 유용하게 쓰게 될 줄이야. 되돌아오는 모든 말에 방어하기에 딱인 답변이다. 그렇게 중국어 소통은 서로 엇갈린 대화로 끝나버렸다.


대학생활을 제대로 겪기 직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에서 심심할 참이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꼭 나가지 않아도 됐을 곳을 나선다. 당시에는 고민할 여지없이 대학교 OT 날 참석했다. 한 손에 맥주를 들고 알아서 로테이션하며 대화하는 분위기이다. 유럽, 미국, 아시아 등 다양한 국적에서 온 학생들로 즐비하다. 본격적으로 대학생활 동안 마음을 나누게 될 동양인을 탐색한다. 많은 학생들 틈에 만난 동양인과 영어로 대화하는 도중 한국인임을 알아차리는 순간 일시적인 정적이 흐른다. 그렇게 서로를 알아보고 멋쩍은 표정으로 확인차 영어로 되묻는다. “알 유 코리안?”이라고. 서로 확신하기까지는 점진적인 단계가 필요하다. 한국인임을 다시금 확인하는 데 그렇게 민망한 경우가 없다. 허허 웃으며 실소로 급히 상황을 무마한다. 덕분에 첫 만남에 어색한 공기만 자아냈다. (한국인 친구와는 첫날의 친근함만 유지한 채 자연히 멀어졌다.) 상대도 그제야 나이, 출신지, 지원 학과 등을 시작으로 적극적으로 말을 이어갔다. 서로의 의미 없는 물음표로 상황을 무마하다가만 마무리 됐다. 같은 상황이 온다면 낯짝이 두껍다고 느낄 정도로 아무 일도 없었단 듯 행동하라.


이와 같이 비슷한 상황에 놓인다면 한국인과의 첫 만남을 유쾌한 이야기로 회상할 수 있길 바란다. 다만 첫날의 어색한 공기를 이겨내지 못한다면 그 만남은 마지막이 될 확률이 높다. 태극기가 그려진 티셔츠라도 입었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되려 대한 외국인으로 비칠 수 있겠다 싶다. 구구절절 좋은 수가 없어 아쉽지만 이렇다 할 묘책이 없다면 어색한 공기를 이겨내는 수밖에. 무심코 드러날 수 있는 개인의 외모적 알고리즘을 경계하며 초면에 실례를 범하는 상황에 놓이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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