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은 한꺼번에 몰려온다더니...
기간: 2017년 11월 ~ 2018년 8월 말까지의 숨겨둔 이야기
내가 회사를 시골에서 도시로 이사하기 바로 전에 시작된 일이다. 크게 두 가지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둘 다 돈과 연관되어 있고, 넓게 보면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되겠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인간관계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사람 유형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때는 2017년 초겨울 즈음. 내가 한창 친목 모임에 빠져있을 때였다.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평일에도 술 약속을 잡고 나갈 정도로 미쳐있었다. 그 모임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나보다 한참 어린 여자애였다. 나와 그 친구는 자주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고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 친구가 나에게 자신의 속사정을 모두 털어놓았다. 자기는 예전에 타투이스트로 큰돈을 벌었는데 어느 순간 건강이 안 좋아졌고, 병원에 수시로 드나들면서 일을 하지 못해 수입도 끊어졌다고 했다. 나는 이 친구가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았을 때 관계를 멀리 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나는 이 친구에게 동정심을 느꼈고, 애정으로 둔갑하여 금전적인 도움을 주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때부터 지옥의 시작이었다.
애정이라고 둔갑한 그 망할 동정심으로 인해 내 삶마저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그런 상황이 되도록 나 스스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얼마나 심각했는지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면...
- 생필품, 개사료, 고양이 사료 등등 모두 내가 사줌.
- 원룸 이사비용, 보증금 내가 다 내줌.
- 점집을 보러 갔는데 굿하라고 해서 굿하는 비용을 내가 내줌.
- 모두 합하면 약 2천만 원 지출함.
미쳐도 단단히 미쳤었다. 내가 왜 그런 걸 해줬지? 그 친구는 말로만 갚는다고 할 뿐 일을 해서 돈을 벌 마음도 없었고, 자존감도 낮았고, 돈이 없을 때 여기저기 연락해서 구걸을 할 뿐이었다. 이런 자세한 내막은 부모님조차도 모르시는 내용이다. 이제야 공개적으로 처음 밝히는 거라 굉장히 수치스럽고, 부모님께 죄송하다.
마음고생을 심하게 해서 매일 아침 거울 속에 보이는 내 표정은 썩어갔다. 내가 다 감당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참 오만하고 멍청한 생각이었다. 이때 깨달은 것은 "부정적인 사람은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이 얼마나 절실한지 알아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도움을 당연하게 여기고 부정적인 마음속에서 영원히 물질과 감정을 구걸하며 살아간다. 정말 거지 같은 사람이다.
약 10개월간 애정으로 둔갑한 동정에 마침표를 찍었을 때 나는 오랜 기간 이성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맺지 못할 정도로 큰 충격에 빠지게 되었다. 돈도 돈이지만 내 자존감, 내 자아에 치명적인 상처가 남았고, 트라우마가 되었다.
위와 같은 시기. 그 친구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사건이 하나 더 있었다. 대학교 선배가 사장님의 지인으로 나를 찾아왔다. 그분은 보험설계사였다. 아마 '보험설계사'라는 말만 보고도 느낌이 굉장히 안 좋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나는 그 선배의 영업에 당한 호구였다. 그것도 상당히 많은 액수로 사기에 가까운 영업을 당했다.
그 선배는 사장님 모르게 나를 따로 불러서 지속적인 영업을 펼쳤다. 내가 재테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정말 수려한 말솜씨로 나를 매료시켰다. 주식, 부동산, 연금, 보험 등 각종 재테크 관련 이론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주면서 논리적으로 나를 현혹시켰고, 결국에는 다들 알다시피 보험가입을 권유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였기에 그럴듯한 선배의 설명에 넘어갔고, 10개가 넘는 종류의 보험에 가입하게 되었다. 정말 제정신이었는지 뇌 검사를 받아봤어야 했는데...
선배는 내가 그 친구와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내 돈을 관리해주기 때문에 내가 돈을 어디에 가장 많이 쓰는지 알려달라 했고, 나는 또 그걸 순진하게 다 알려주었다. 그런데 그 선배는 내가 그 친구 때문에 돈이 점점 고갈되어 간다는 걸 알면서도 보험가입을 권유했다. 이런 망할 개 같은...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오르네...
그 선배는 나 덕분에 실적 빵빵하게 채웠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자기 실적 채워서 고마워하기는 커녕 평소에 나한테 아무런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그 선배는 호구하나 잡아서 쪽쪽 빨아먹겠다는 그런 심보였을까? 아니면 일부러 연락을 피하는 거였을까? 그냥 내가 진짜로 멍청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거였을까?
이 두 사건은 어머니의 개입으로 모두 종결이 된다. 어머니는 과거에 보험사에서 근무를 하셨기에 보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계셨다. 내가 보험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상세 내역을 뽑아오라 하셨고, 그때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셨다. "우리 아들이 단단히 호구 잡혔구나..."나는 보험설계사 선배 번호를 알려주었고, 어머니는 다음 날 통화를 해서 우리 아들이 들어놓은 보험을 전부 해지하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보험사 선배와는 그 보험사에 들어놓은 보험을 전부 해지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보험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그 친구에 대한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어머니는 내가 언성을 높이면서 그 친구와 전화 통화하는 소리를 들으시고는 심히 걱정을 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걱정은 하셨어도 내가 직접 말씀드리기 전까지 기다려주셨다. 괜히 개입했다가 크게 상처가 되진 않을까 조심하셨던 것 같다.
그 친구와는 아예 연락처를 차단하는 것으로 끝났다. 울고불고 화내고 떼쓰는 그 친구가 정말 환멸이 나서 더는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더는 나를 망가뜨리게 놔둘 수 없었다. 그 친구와 연락을 차단하고 나니 그 친구 동생이 어떻게 알고 나에게 연락을 하더라. 내 연락처를 알려줬겠지... 결국 똑같이 차단했다. 그 뒤로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다.
보험사에 퍼준 돈은 약 2천만 원. 그 친구에게 지출한 돈 2천만 원을 합하면 총 4천만 원의 손해를 보았다. 그게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당시 내 2년 치 연봉에 가까운 돈이 그렇게 사라진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오랫동안 혼자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이런 이야기를 가족이든 친구든 누구한테든 꺼내는 것 자체가 내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양쪽으로 호구 잡혀서 4천만 원을 잃었다고 말하면 대체 누가 좋아할까? 측은하게 바라볼 게 뻔하다는 생각에 주변에 얘기하지 않고 힘든 마음을 혼자서 삭혔다.
시간은 약이 되긴 했지만 아직도 그 기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좋은 점이 있다면 그런 기억 덕분에 걸러야 할 사람 유형을 알게 되었다. '부정적인 사람', '좋은 말로 포장하는 사람'. 4천만 원 주고 인생을 배운 거라고 생각한다.
회사가 도시 쪽으로 이사를 가고, 환경이 바뀌고 나서 나는 공허함과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또다시 그 지역 친목 모임을 찾아 들어갔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을 만나도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고, 우울과 고독은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