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써니 Dec 11. 2023

죽음이 날 보며 웃을 때

네가 삶의 친구란 걸 잠시 잊었어.

평화로운 여느 평일 아침, 즐겁게 인사하고 가족들은 각자 자신의 일터로, 학교로 간다. 언제나 이런 일상이 계속되겠다고 안일한 생각을 할 무렵, 죽음이라는 녀석은 불쑥 인사를 하며 내게 말을  건넨다.


갑자기 받은 전화 한 통.

딸의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또, 어디 아프다고 온 것일까.

화장실에서 토하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는데, 그게 내 딸이란다.


그래서 내게 담임은 메세지를 남기셨지만 나는 확인하지 못했다.

애가 아프다고 뒹굴고 난리를 쳐서

학교에서 119를 부르고 내게 전화를 했다.

지금 올 수 있냐고.

갑자기 어떻게 가냐고.

대한민국 직장인이 급박하게 일터를 떠날 수 있는 직종이 얼마나 되느냐고.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순간, 데자뷔가 펼쳐진 것 같았다. 나는 왜 이 순간에 항상 내 가족이 먼저가 아닌지 모르겠다. 버텨줄 것이라고 믿었었다가 배신당한 게 벌써 몇 번째 이잖은가.


나는 정말 딸의 엄마가 맞나?


아니, 그 때에도 나는 엄마의 딸이었지만, 엄마를 믿었었다.

나의 강력한 엄마조차도 죽음에 버티지 못하고 패배했는데, 약하디 약한 나의 딸이 왜 버틸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래, 바로 죽음이 이때 미소 짓는다.

이 전조를 내게 시험하는 바로 그 '죽음'말이다.


보건선생님이 다급하게 '어머님이 바로 오셔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나는 선생님이 계시니까, 그래도 내가 갈 때까지 버텨주지 않을까라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했다.


나와 일하는 동료선생님은 우리 반을 함께 돌보아 줄 수 없다고 강력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를 뿐이었다.


또 다른 선생님은 빨리 부장선생님에게 연락해 보라고, 마침 출장 중이셔서 아무도 없었는데 말이다. 전화로 부장에게 전화하고, 교감님에게 전화드리라고 하고. 난리가 난 사람은 나뿐이었다.


보건선생님의 전화는 5분 간격으로 왔다. 나는 어떤 상황인지 몰랐기에, 수화기 너머로 다급하게 딸에게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말이 들렸을 때, 나는 그냥 뛰쳐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직장에서 잘려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15년 전에 똑같이 이런 일이 일어났던 것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과 키스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다른 선생님이 남은 시간을 봐주신다고 하셔서 바로 일터에서 나올 수 있었다.


운전하면서도 나는 그때의 황망했던 기분이 다시 떠올라 미친 듯이 차를 몰았다. 그러면서 다시 눈에서 자꾸 물방울이 맺혔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나한테 왜 이래.

벌써 나에게 앗아간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데. 죽음 이 녀석, 나에게 오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왜 자꾸 덮치는데!

 

내가 삶의 의지를 불태울수록,

죽음은 자꾸 나를 약 올리듯,

내 주변 사람들을 볼모로 나를 시험하는 것 같다.


다행히도 내 딸은 의식을 찾았고, 다시 내게로 왔다. 다신 이렇게 더러운 기분은 느끼고 싶지 않다.


아무렇지도 않게 아침에 인사하고

저녁때 병원으로 달려가는 것은,

몇 번이나 당해도

절대로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문을 제대로 이해 못 한 자의 최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