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태어난 김에 신으로 살기 (65)

저의 아이가 우울증이 심합니다.(2)

그 

검사 결과를 듣고 좀 놀랐습니다. 검사하시는 선생님이 부모가 심어준 상처로 무기력과 우울을 겪고 있다는 지적을 들었을 때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열심히 돈 벌어서 세 녀석 학원비와 생활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생각했는데 딸이 이렇게 절망적인 상태가 된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네요. 솔직히 뭐가 부족해서 그러는지, 나는 정말 백배 더 힘든 환경을 겪고도 열심히 극복했는데 하는 마음도 생깁니다. 한편 엄마가 너무 무심하고 대책도 없어 보여서. 휴, 한숨이 나오네요. 그러나 무언가 다시 생각하고 변화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저를 두렵게 합니다.     

질문

당신의 딸과 직접 대화를 시작해 볼게요. 제가 연락 드린다고 말씀해 주세요. 놀라지 않게 충분히 설명해주세요.     

말해 두었습니다. 

(그의 딸과 메일을 주고받은 후에 통화를 몇 번 했다. 모든 대화 내용은 비밀로 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는 조건으로. 그녀는 내가 진심으로 듣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고 솔직한 이야기 해주었다)     


질문

상황을 들어보니 엄청 힘들었군요. 학교는 억지로 가야 하고 동생들과 사이도 나쁘고 아무도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니. 요즘 엄마와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음...... 엄마는 제 어려움을 슬쩍 무시하세요.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해도 괜찮아 다녀야지 하며 

왜 그런 마음인지 묻지도 않고 다른 대안도 제시하지 않아요. 저는 다음 달에 수능인데 볼 생각이 없어요. 성적은 계속 떨어져 대학에 갈 성적도 안 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도 않고.     

질문

하루 생활과 자주 드는 마음을 이야기 해주세요.

(그녀는 시끄러운 교실이 지긋지긋하고 친구들도 마음에 들지 않고, 수업에 집중도 안 되지만 마지못해 다니고, 집에 오면 막내 동생과 더 이상 말 싸움 하기 싫어서 (한방을 쓰고 있음) 담을 쌓고 휴대폰을 보다 새벽에 종종 깨면 우울이 몰려오곤 한다고 했다.)

요즘 당신에게 잊어버리지 말아야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우울증약 먹는 거예요. 그것 하나는 잊어버리지 않으려 해요.     

질문

부모님에게 말 못 할 것들이 있지요. 가장 솔직히 이야기 해주셔도 좋아요.

혹시 자살 충동도 느끼나요? 가족에게는 비밀로 할게요.     

녜.... 그래서 약을 꼭 먹으려 합니다. 자살을 시도해 본 적이 있는데 다시 하고 싶지는 않

거든요.     

질문.

언제 쯤?     

초등학교 6학년 때 인데 방에 혼자 있다가 전선을 목에 감고 죽으려 했어요.     

질문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빠는 아주 어릴 때는 저를 예뻐라 했던 것 같았는데 동생이 생기고 초등학교 들어갔을 때 쯤에는 무섭게 짜증을 내는 항상 날카로운 칼날 같았어요. 제 방이 유일한 안식처인데 막내와 같이 쓰면서 너무 시끄럽고 집중을 할 수도 없었어요. 방 밖에 아빠 발소리나 말소리에 늘 신경을 쓰며 지금도 살고 있어요. 너무 무섭고 불행해요. 세상이 밉고 아빠가 무섭고 미웠어요. 아빠가 영어 수학을 매일 가르쳐주셨는데 혼날까봐 공부를 했어요. 그날도 아빠의 짜증에 겁에 질려 불을 끄고 자다 새벽에 깼는데 ‘살기 싫다.’ 는 생각에 목을 맨 것 같아요.     

질문

아이고! 그랬었군요. 어린 소녀가 한참 즐겁게 뛰어놀고 친구도 사귀며, 삶을 배울 시기에 그런 결심을 하다니 그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네요. 그래도 오늘 이렇게 대화할 수 있어서 저는 너무 반갑고 이야기 해줘 고마워요. 자살하려다 어떻게 삶을 선택했나요? 누군가 말려서? 아니면 스스로 그만 둘 수 있었나요?     

그녀

목이 조여 오는데 순간 너무 아파서 손을 놓게 되었어요. 휴! 그때 이후 어떻게든 자살은 하지 않기로 했죠.     

질문

정말 잘하셨네요. 마음이 아프네요. 어린 마음에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래도 당신 스스로 자살을 멈추었다는 것은 중요한 선택이었어요. 참 잘하셨어요. 당신의 근원 마음에 자리 잡은 어둠은 아버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제가 보아도 아버지가 당신의 어린 시절 몹시 예민한 날카로운 성격으로 엄마와 당신에게 긴장과 불안, 죄의식과 우울의 씨앗을 뿌린 듯합니다.     

그녀

사실 얼마 전에 꿈을 꾼 것을 말씀드려야겠다 생각했어요. 너무도 생생해서...... 아버지가 죽었는데 저는 아버지가 다시 살아날까 봐 걱정하는 내용이었어요.


(그녀는 자신의 꿈을 자세히 쓴 장문의 메일을 보내왔다. 꿈 속에서 일어난 마음 하나하나를 모두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죽는 과정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면서 아빠가 다시 살아날까 걱정하는 내용이었다. 그녀가 아버지의 표정과 말투를 얼마나 혐오하며 두려워 하는지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 꿈이었다. 그녀는 아빠를 증오하는 자신을 증오하면서 무기력에 지쳐 약으로 자살 충동을 억누르며 생존하고 있음을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질문

휴! 너무 어린 시절부터 불안과 증오의 감정이 깊게도 들어와 있네요. 오랜 시간 그 마음을 유지하며 살다니! 당신의 집중력이 놀랍습니다, 당신은 오직 아버지에 대한 긴장과 혐오를 숨기며 자신을 비난하며 살아왔네요. 놀랍군요. 자, 당신의 인생은 새로운 시작의 기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미래를 생각해 봅시다.     

그녀

말도 안돼요. 저는 죽지 못해 생존하고 있는데 미래는 없습니다. 저는 오늘 하루 약 먹고 버티는 것이 최선이에요.     

질문

그래도 당신은 이제 18세 소녀이니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할 생각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당신을 자극할지도 모릅니다. 우선 첫 단계로 미래 고민은 내버려 두고 과거의 짐부터 같이 처리해 보아요. 수능을 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지요?     

그녀

녜. 걱정을 하긴 하죠. 휴. 무엇도 할 수 없어요. 약 먹으면 무기력해지고 안 먹으면 자살 할 까 두렵고 학교는 가야 하고 공부는 안 되고 돌아오면 동생들 보기도 싫고 아빠와 마주칠까 두렵고.     

질문

당신을 알기 위해 질문을 하면 당신은 자신의 생각을 꺼내어 정리해 보세요. 이번 기회에.

당신은 부모와 거리를 두고 혼자 있을 공간이 필요해 보여요. 맞습니까? 아직 모르겠죠? 그렇다면 현실적으로는 당신의 성적으로 자연친화적인 성향을 활용해 지방전문대학에 갈 수는 있는데 그럴 용기가 있을까요? 제가 질문하는 이유는 두 가지 필요성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미래를 그려나가다 보면 현재의 문제를 고쳐갈 수 있다는 것과 당신의 마음과 경제적 준비 정도를 명확히 자각할 때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 되어갈 방법을 고민하게 되기 때문이죠. 과거에 발목이 잡혀 한 발도 못 나가는 나에게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이제 19세로 자살을 시도했던 초등학생에서 벗어날 때 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엄마를 통해 자신은 가족과 헤어져 적당한 전문대에 갈 생각은 없다고 아빠를 통해 전해왔다. 무기력감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을 칭찬하며 인정해 주도록 아빠에게 부탁해 엄마가 그리하니 딸이 안심하는 눈치였다 한다.)     

지금 하는 과외 두 가지가 당신에게 어떤 도움이 됩니까? 불안해서 끌려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태도로 마음을 바꾸어 봅시다. 아버지에게 말씀드려 원치 않는 과외는 멈추게 도울 수 있습니다. 당신의 아버지는 어쨌든 당신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길을 열어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믿음은 가지 않겠지만 아빠는 변화해 갈 것입니다.     

그녀

수학은 불안해서 해야 할 것 같고 영어는 사실 별 필요 없어요.     

질문

당신의 다중지능검사 결과로 보면 그림이나 춤 등 예술적 감각도 있어 보입니다. 이런 창조행위가 당신을 위로하고 억눌린 감정과 에너지를 깨울 수 있을 텐데 하고 싶으신지요. 그리고 마음이 좀 정리되면 차라리 권투 같은 것을 해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마음속 응어리를 대상을 상상하면서 풀어낸다면 마음의 무거움을 덜어낼 용기가 생깁니다.     

그녀

저는 그림이나 춤도 좋아해요. 부모님은 좋은 대학을 위해 학업에 몰두하길 바라니까 차마 말 할 수 없었어요. 지금은 수능이고 뭐고 마지 못해 끌려다니는 건데 아버지에게 말할 용기도 없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질문

당신은 만약 이 상태 그대로 산다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이제 성인인데 물론 저는 당신의 아버지에게 당신의 큰 딸이 이대로 방치되면 아주 심각할 수 있음을 자각하라 말하곤 합니다. 아빠가 얼마나 각성이 되어 사랑의 마음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의 아버지는 아주 힘든 가정에서 받은 많은 상처를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해 온 분인 것은 사실입니다.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르는 분이긴 하지만요.     


그녀

아주 어릴 때 아버지와 나쁘지 않았어요. 헌데 동생들이 생기고 점점 화를 내고 혼내고 지적하고 짜증을 내니 하루아침에 믿음이 깨지면서 정말 슬프고 외로웠어요. 그래서 자살 시도를 했었고 그 후에도 그런 모습이 계속되니 정말 미칠 지경이 되어서 맏딸인 제가 엄마와 동생들을 잘 돌보아야 하니 표현할 수 없었어요. 언젠가부터 혼자 아버지가 죽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더라고요.      

질문

증오심과 불안으로 한창 즐거움을 체험할 나이에 자존감 마저 잃고 있었으니 당신 자신을 인정하기 어렵겠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적으로 바꾸라고 하는 이유는 긍정적인 마음이 부정적인 마음 보다 우리를 건강하게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마음은 움직이는 것인데 자신을 더럽고 깜깜한 우물에 가두며 살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이기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그렇게 사는 것은 억울하지요. 당신은 자신을 아빠를 증오하는 괴물이거나 미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할 듯 합니다.     

그녀

맞아요.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어둠 뿐이에요. 당신과 전화 통화를 하며 아빠에 대해 말하면서 아빠가 알까봐 두렵긴 하지만 속이 좀 시원하네요.      


질문

그러나, 잘 견뎌 오셨어요. 지금까지 가출을 하거나 자살 시도를 계속하거나 부모에게 욕하고 싸우거나 하는 흔한 선택을 잘 다스리고 감당해 오신 셈입니다. 다시 시작해 봅시다.

당신의 타고난 기질 검사 -다중지능검사 -결과를 보셨지요? 어떠셨나요? 당신이 타고난 성격을 알고 나니까     

그녀

한숨이 나오더군요. 아.... 내 성격이 조정형이라 평화적인 해결을 좋아하고 정서적으로 예민할 뿐 아니라 순수한 것을 좋아하는데 사고는 몹시 철두철미한 완벽주의적 성향으로 타고 났더라고요. 그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만 시원하게 마음이 열린 적이 없었는데, 제가 왜 아버지를 두려워하고 그렇게까지 미워하는 것인가 이해되지 않던 죄책감으로 괴로워했던 이유를 조금은 알듯 싶었어요 내 지문과 손에 이 모든 정보가 이미 있었다는 사실에 한편 안도가 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아주 잘못 된 길을 가는 나쁜 사람이라 더 이상 희망은 없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질문

우린 모두 장점과 단점을 갖고 태어납니다. 헌데 단점이 누군가에게는 혹은 어떤 경우에는 장점으로 작용하고 단점이 목숨을 살리기도 합니다. 장점과 단점은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고 우리는 그 이전에 있는 그대로 소중한 존재입니다. 이왕이면 자신의 기질을 알고 살아가면서 가능한 것과 허락되지 않는 것을 빨리 이해하고 내 삶을 돕는 것이 지혜입니다. 어차피 지금 당신의 에너지로는 대학에 갈 마음이 없다면 하고 싶은 일을 통해 다 꺼져 가는 삶의 의욕이나 즐거움, 삶의 의지 같은 것에 불을 지피는 것부터 시작해 볼까요?

공부는 하고 싶을 때 그리고 할 수 있을 때 하면 되고, 당신의 성향으로 보아 마음 먹으면 잘 해낼 다양한 소양들이 준비되어 있더군요.     

그녀

...........

모든 이야기는 아버지에게 비밀로 해주세요.     

질문

인간의 마음은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비난의 대상을 정하고 미움을 투사하며 크게 키우곤 합니다. 당신의 아빠도 사람에게 절망하고 몇 년 전에는 공황장애로 고통 받았었지요. 원칙주의자 성향 때문에 할 일을 못하면 화도 내었던 것을 지금은 바로 잡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당신과 진심 어린 대화를 하고 싶어 하고 당신을 정말 아끼고 돕고 싶어 합니다. 두 분은 기질적으로도 많이 닮아 있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연결이 깊습니다. 부모라고 무조건 존경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세요. 그런 도덕 교과서적인 것은 생각으로 우릴 괴롭히는 한 도움이 안 됩니다. 미워해도 괜찮습니다.     

그녀

휴....... 모르겠습니다. 뭐가 무엇인지. 약을 오래 먹고 회피만 하고 살다 보니 생각하기 싫으면 그냥 잠을 자는 게 좋습니다. 사고 기능이 제대로 되는 것 같지 않아 더 불안합니다.     


질문

바뀔 것입니다.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는 변화의 시기를 만났으니까요. 편히 쉬세요.


 (그녀의 아빠에게 어머니와 통화 하고 싶다 하였다. 딸이 그래도 집안에서 가장 편하게 대하고 의지하는 존재가 엄마이며 아버지와의 소통은 오히려 그녀의 불안을 자극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 엄마가 힘이 되주는 것이 쉬운 길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태어난 김에 신으로 살기 (6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