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빠삐 Oct 07. 2024

버드나무

  옛날 일본의 작은 마을에 히에타로라는 이름의 성실하고 친절한 젊은 농부가 살고 있었다. 히에타로가 살던 마을의 입구에는 수백 년 된 버드나무가 자라고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소중하게 여겼다. 버드나무가 마을을 지켜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히에타로는 마을의 누구보다도 버드나무를 아끼고 사랑했다.

  어느 해, 비가 많이 내리게 되면서 마을의 하나뿐인 다리가 떠내려갔다. 다리를 새로 만들어야 했지만 다리로 쓸만한 나무는 마을 가운데 있는 버드나무밖에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안타깝지만 버드나무를 베어 다리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버드나무도 아마 우리를 이해해 줄 거야.”     

  하지만 히에타로는 버드나무를 베는 것에 강하게 반대했다. 아무리 다리가 필요하다고 해도 마을의 수호신이자 친구인 버드나무를 베는 것은 너무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 나무는 우리 마을의 역사를 지켜온 신성한 나무입니다. 지금의 마을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우리 부모님, 조상님과도 함께했던 나무라고요. 그런 나무를 당장의 불편을 해소하겠다고 벤다는 게 맞는 일일까요? 만약 저승에 갔을 때 돌아가신 할머니가 버드나무는 잘 있냐고 물으면서, 그곳에서 참 많은 추억을 쌓았었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다리를 만드느라 싹둑 베어버렸다고 말할 자신이 있나요? 저 버드나무는 비록 나무이지만 우리 마을의 일부라고 할 수 있어요. 만약 버드나무를 베어 낸다면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마을이라고 하기 어려울 거예요. 당장은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다른 곳에서 나무 가져오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히에타로의 열정적인 호소에 마을 사람들은 마음이 흔들렸다. 누구나 버드나무와 함께했던 소중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사람들은 히에타로의 의견대로 버드나무를 베지 않기로 했다.

  그날 밤, 히에타로는 혼자 버드나무 아래로 가서는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버드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리따운 여자가 히에타로 앞으로 불쑥 나타나더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제 이름은 히고입니다. 이 버드나무의 정령이지요. 당신이 오늘 나무를 지켜주었기에 저는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네? 당신이 이 나무의 정령이라고요?”

  “그렇습니다. 당신의 용기와 친절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어떻게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이렇게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지요. 그리고 히에타로님을 저의 베필로 삼아 목숨을 살려주신 은혜에 평생 보답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만나게 된 히에타로와 히고는 운명처럼 사랑에 빠지게 됐다. 두 사람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고 치요라는 예쁜 이름의 아들도 낳았다. 마을 사람들도 모두 히에타로의 결혼을 축복했다. 다만 히고의 정체만은 히고의 간곡한 부탁으로 비밀에 묻어 두었다.

  하지만 이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몇 년 후, 마을 사람들은 새로운 사원을 건축하기 위해 다시 버드나무를 베기로 결정했던 것이었다. 히에타로는 거의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설득하며 버드나무를 베는 것에 강력히 반대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되돌리기가 어려웠다. 사원은 단순히 마을 사람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을의 복을 비는 중요한 종교적 시설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결국 버드나무는 베는 날짜가 정해졌다. 히에타로는 히고와 멀리 떠나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 봤지만, 어차피 버드나무가 베어지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단념했다. 두 사람은 작별을 준비하는 수밖에 없었다.

  버드나무 신들의 시간인 캄캄한 밤에 베어졌다. 작별의 밤, 히고는 눈물을 흘리며 히에타로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여보, 이제 나무가 베어지면 저는 죽게 될 거예요. 제가 죽는 것은 괜찮지만 당신과 우리 아이를 두고 떠나려고 하니 마음이 미어지네요. 하지만 죽음이 끝은 아니랍니다. 죽음 이후에도 또 다른 세계에서 또 다른 존재로 살아가게 되겠지요. 약속할게요. 제가 어디에서 무엇으로 있든지 당신과 치요를 영원히 사랑할 거예요. 부디 잘 지내세요.”     

  히에타로는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눈물을 쏟아냈다. 너무나 심하게 울었기 때문에 히고를 껴안은 채 혼절하고 말았다. 히에타로가 겨우 정신을 차린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펴보니 히고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히에타로는 단숨에 버드나무가 있던 곳으로 달려갔다. 버드나무는 이미 베어져 그루터기만이 남아 있었다.

하중도생태공원. (강원 춘천시 중도동 650-2)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릅니다.

  운명에 대해 생각할 때면 마음 한구석이 무겁습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전쟁 소식, 병마에 시달리는 환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조용히 우는 어린아이… 삶이란 원래 이토록 가혹한 것일까요? 인생이란 고통의 연속일 뿐일까요? 오늘 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술을 마시게 될까요?

  ‘돈키호테’의 저자로 잘 알려진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삶도 기구하고 가혹한 운명의 연속이었지요. 젊은 시절, 세르반테스는 군인이 되어 오스만 제국과의 전투에 참여해 레판토 해전에서 싸우다가 왼팔을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불구의 몸으로 고국 스페인으로 돌아가던 중 해적들에게 붙잡혀 5년 동안이나 노예로 지내야 했지요. 가족들이 모든 재산을 처분해 막대한 몸값을 건넨 뒤에야 겨우 풀려나 스페인으로 돌아올 수 있었답니다.

  하지만 불행을 끝나지 않았습니다.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먹고살기 위해 세금 징수원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재정 처리상의 실수로 인해 여러 차례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1605년 ‘돈 키호테’를 출판하면서 인기와 명성을 얻었지만 잘못된 출판 계약으로 수익을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1616년 쓸쓸히 죽었지요.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가혹한 운명을 내려준 신을 원망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것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합니까? 간밤에 베어지게 될 버드나무 아래에서 우리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까요? 진짜 질문은 이것입니다. 가혹한 운명을 마주하는 우리의 올바른 태도 말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연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