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처럼 다가온 성독(聲讀)

읽는 즐거움에 성취감을 더하다.

by Kate

성독(聲讀)이 무언지 모르던 때, 소리 내어 읽기에 대한 경험이 하나 있다.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을 좋아했고, 관심받고 싶은 마음에 예복습을 하여 1 1 질문을 하고자 했다. 교과 전반부 문학은 수월하게 지나갔는데, 후반부 비문학은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읽었는데 읽은 것과 같았다. 난독증인가 고민할 지경이었다. 결국, 교과서를 소리 내어 읽기로 했다. 처음엔 힘들었다. 이해되지 않는 글자를 따라갈 뿐이니, 읽기가 아닌, 소리만 내는 같았다. 읽다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눈앞에 선생님의 미소를 놓칠 없었기에,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끝까지 읽었다. 울며 읽다 보니 어느새, 문장씩 이해가 되고, 거짓말처럼 글 전체가 보였다. 창문을 열고 맞이한 그날 새벽바람처럼 시원함은 아직까지 느끼지 못했다.

성독을 시작할 , 날의 새벽바람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설렘에 두근거렸고, 성독이 무언지 몰랐으나, 열린 마음으로 대할 있었다. 그렇게 만난 성독은 오랜 역사를 가진 공부법이자 수양의 길이었다. 성독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은 짐작하였는데, 그 용어의 사용은 이삼십 년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용어의 부재가 아니라, 용어조차 필요치 않을 만큼 일상적이었다는 점이 그러했고, 현대에는 보편적이지 않다는 점이 아쉬웠다.

성독은 보고 읽고 듣고 말하기를 통하여 이해를 깊게 하고, 스스로를 수양하게 하는 등의 장점이 있음은 수긍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학문의 방법으로 택하게 이유는 아니다. 세상에 많고 좋은 여러 가지 중,명처럼 茶를 만나 인연을 맺게 것처럼, 성독도 그렇게 다가온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선물처럼 다가온 성독을 어떻게 지속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리라.

학창 시절 멋모르고 소리 내어 읽던 때를 돌아보면, 그렇게 정성을 들였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정성을 들이니 글자가 눈에 들어왔고, 문장이 이해되었고, 글 뜻이 이해되었다. 성독은 여기서 걸음 나아가 운율을 더하게 한다. 이해가 되었으니 운율을 더하는 과정은 수월했고, 학문에 대한 보람과 열정을 더해 주었다. 성독에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중요한 것은 정성이 아닌가 생각한다.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읽는 과정, 운율이 담기는 과정, 어느 하나 정성 아닌 것이 없다. 그렇게 정성을 다하여 성독을 하면, 소리가 나를 다듬고 또한 소리를 다듬을 것이다. 자연히 이해는 깊어지고 기쁨도 커지리라. 마음이 소리에 더해져 노래인 즐거움이 되니, 성독은 외로운 공부길에 좋은 친구가 것이다.

성독은 즐겁다. 아직은 어제 읽었을 때와 오늘 읽을 때의 느낌이 다른 걸음마 단계이지만, 용감하게도 성독이 즐겁다고 말할 있는 까닭은 즐거움이 성취가 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기쁨이 성독을 지속할 있는 힘을 준다. 성취로 인한 기쁨을 아직 맛보지 못했으므로, 순간이 최고의 기쁨이다. 그렇게 최고의 기쁨에 어울리는 정성으로 성독을 지속하리라 다짐한다. 그렇게 誠讀하여 成讀에 이르기를 꿈꾸며 오늘도 聲讀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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