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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일한 사대생 Apr 29. 2024

악마의 재능



먹기 전 음식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보다 풍성한 한 컷의 썸네일을 위해 때로는 한꺼번에 나오지 않는 음식들을 다 같이 기다리는 그 과정과 분위기가 별로다. 식사란 매일 하는 것인데 사진첩 빼곡히 그 매일 먹는 음식 사진이 용량을 한가득 차지하고 있는 것도 정리벽이 있는 사람에게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미식(美食)을 너무나도 좋아하고 즐기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영역의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음식 사진을 자주 찍는다.




아니, 찍어야만 하는 삶을 택해서 살고 있다. 음식뿐만 아니라 일상 속 나의 수많은 것들을 찍고 기록한다.


사람들이 많이 볼 만한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것,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작은 재능이기 때문이다.



물론 숙련된 블로거와 인스타그래머는 굳이 주문한 음식들을 굳이 한 자리에 전부 모으지 않더라도 꽤나 멋스러운 한 컷을 어렵지 않게 뽑아낼 수 있다.


오히려 사진 찍어야 하니 다 나오기 전에는 음식이 세팅된 그대로 있도록 손도 대지 말라고 예민하게 호들갑 떠는 것이 옛날 스타일이다.

 그런 식으로 사진을 찍다 보면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듯이 다른 블로그들과 똑같은 음식을 주문해서, 비슷한 구도와 각도에서 똑같이 세팅된 음식 사진을 찍어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한 자신을 발견해 본 블로거는 그렇게 행동하길 서서히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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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재능: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재능 그 자체, 아무리 평가절하하고 싶어도 그게 안 되는 재능을 이렇게 부른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 살짝 다른 의미도 추가하고 싶다.




딱히 좋아하지 않는데 잘하는 것,

그래서 계속해야만 하는데 숙제처럼 느껴지는 일

좋아하는 일과의 교집합에서 벗어난 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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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하게는 싫어하는 일과의 교집합에 있는 재능




혹시 당신에게 그런 분야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악마가 당신에게 준 재능이라고.


 자신이 잘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잘하는 일은 하면 할수록 성과가 나오고, 주변에서도 잘한다, 대단하다 칭찬만 들을 텐데 (물론 주변의 시기/질투는 약간 추가될 수 있지만,) 어찌 그 일을 싫어할 수 있겠는가?


고로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의 교집합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이다. 두 생각 중 하나는 착각이다. 내가 그것을 잘한다는 것이 착각이거나, 좋아한다는 것이 착각이거나.


지금도 기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이제 거기에 약간의 예외사항? 특칙? 쯤이 붙었다 정도.


두 가지의 교집합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모순이지만, 삶이란 그 교집합에 해당하는 부분 말고도 다양한 일을 겪으며 살아가야 하는 영속성이란 것을.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악마의 재능]이 주어졌으리란 것을.



하지만 악마의 재능은 결국 재능이다.

당신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연회장에 던진 황금 사과가 결국 트로이를 멸망으로 이끈 악마의 재능이었을지라도, 파리스는 그 덕에 가장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와 결혼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일과 괴리가 있는 악마의 재능 때문에 과하게 스트레스 받지 말고, 오히려 이를 선물로 여겨 현명하게 잘 활용하는 당신이 되길 바란다.


 절대로 리뷰가 밀려 심각하게 귀찮아하는 어느 블로거의 한탄에서 시작된 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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