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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 Jun 12. 2022

절반만 맛 볼 수 있다면?

2019.12.8. - 치료 18일 차

 병실생활 5일차. 뜬 눈으로 밤 잠을 설치지는 않게 되었다. 어제부터는 잠도 잔다. 조금씩 병실생활에도 적응을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제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병실의 주말풍경은 평일보다 조용하다. 면회오는 사람도, 병원에 환자들로 북적이던 평일과는 달리 주말은 비교적 한산하고 조용하다. 특히 일요일은 진료가 없기 때문에 병원 전체가 휑한 느낌이다. 각 병실에 는 TV소리만이 홀로 그 휑함을 메꾼다. 

 일요일에는 침치료도 인턴선생님만 오셔서 1번만 이뤄진다. 침치료가 끝난 후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있는데 오늘따라 이 작은 공간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5일동안 거의 화장실, 병실만 왔다갔다 했더니 진짜 다리 근육도 빠진 느낌이다. 그래서 운동삼아서 병원 라운딩을 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바깥공기를 쐬고 싶어 나가볼까도 싶었지만 지금 이 얼굴에 찬바람은 피해야 하기에 마음을 접었다. 더구나 혼자 환자복을 입고 대학가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도 썩 좋은 경험은 아닌 것 같았다. 유일하게 병원에서 바깥공기를 쐴 수 있는 곳은 중정에 조성되어 있는 운동공간. 마스크를 2중으로 쓰고, 패딩 모자로 찬바람을 애써 막았다. 그 작은 공간을 운동장 돌듯이 뱅뱅 돌았다. 답답함이 한결 나았다. 그래 사람은 좀 걸어야지.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뭔가 기분이 상쾌해졌다. 그 상쾌해진 기분이 나를 이끈 건, 편의점이었다.

 내친김에 군것질거리도 왕창 사왔다. 와, 진짜 근 3주만에 먹는 과자와 빵부스러기들이구나커피와 초콜렛도 샀다. 그동안 일부러 먹지 않았던 것들이다. 사실 먹어도 크게 나쁠 건 없었겠지만, 한약도 먹고 있고, 또 먹어서 좋을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과자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 뭔가 이상했다혀감각이 아직 덜 돌아왔다는 걸 확실히 느끼게 되었다. 맛은 느껴지는데 혀 속까지 그 맛이 전달이 안되는 느낌이랄까? 그것도 혀 오른쪽 앞부분 절반만. 뭐라 해야 할까. 말로 표현이 안되는 이 무감각의 느낌이란. 치과 마취 거의 풀릴때 쯤의 느낌이랄까? 꽤 자극적인 맛의 과자였음에도 이렇다는 건 혀의 감각 신경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안면마비 증상중에 미각 혹은 청각 이상까지 오면 회복이 느리다고 들었다. 이 경우 모두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손상범위가 넓다고 보기 때문에 추후 회복이 되더라도 안면신경의 변성이 많이 일어날 수 있다고 들었다. 그 이야기는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럴 땐 내가 무교인게 참 아쉽다. 


 먹고 있지만 온전히 그 맛을 느낄 수 없다면, 평생 그래야 한다면 정말 절망적일 것 같았다. 겉보기에는 멀쩡한데 감각하지 못한다면? 가늠조차 안되는 절망이다. 오로지 머리로만 상상하고 느껴야 한다면....

 안면마비가 얼굴만 마비되는 줄 알았는데 맛의 감각도 둔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다니 직접 겪어보니 알겠다. 그 맛이 온전히 전해지지 않으니 식욕이 뚝 떨어진다. 그럼 저절로 다이어트가 될 거 같다고? 맛을 못느끼는 다이어트는 재앙이다.


에잇, 모처럼의 군것질에 행복했는데, 아직 갈 길이 멀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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