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경 Nov 05. 2021

오늘도 할 일을 다 못한 나에게.

나는 충분한 사랑과 지지 속에 자존감으로 채워진 어린 시절 보낸, 사람이 아니다. 따스한 가족과의 추억보다는 깊은 불안과 슬픔에 얼룩진 기억이 더 많다. 다른 사람을 잘 믿지 못하고 나 조차도 믿지 못하는 불안 회피형 애착. 밝고 당당한 내 껍질 안에는 이토록 자라지 못한 아이가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자신을 숨기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열심히 해왔다.



우리 막둥이 100일. 이때도 참 힘들었는데 사진은 곱게 담겨있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일 안으로 숨어들 수 있었지만 사람을 기르는 일은 나를 내어 놓아야 하는 일이기에 육아를 시작하며 나는 번번이 내 한계에 부딪혔다. 아직 나를 돌보는 방법도 잘 모른 채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잘 될 리가 없었다. 버겁게 이어가던 육아 또한 인정받지 못한 자아를  덮기 위해 바지런히 노력으로 해 왔던 것 같다. 돌아보니 아이들과 행복했던 추억이 너무나 많았는데도 그 순간들 속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내 어린 시절의 슬픈 감정이 앙금처럼 남아있다. 아이들에게 이런 뿌연 감정은 나는 충분하지 않은 엄마라는 마음을 불러왔고 그래서 아이들을 온전히 사랑하고 품기보다는 애쓰고 노력하는 부분이 더 크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살아가는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토록 불완전한 나를 안고 아이들을 기르며 내 일을 만들어 간다. 어느 순간 이것이 한번에 해결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오늘보다 내일 조금만 더 나은사람이 되자 마음먹으면서 말이다. 먹고살자니 어쩔 수 없어서 혹은 이런 내 허전한 감정을 채우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반대로 나의 불완전함과 부족함을 더 마주할 수 있어서 이 길을 걸어간다.


아리스토텔리스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어떤 부모의 자녀가 되는 데서보다는
어떤 자녀의 부모가 되는데서 더 큰 즐거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 부모가 된다는 것의 철학 중


아이들을 기르면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나의 인간성을 마주하며 나 같은 이가 용서받고 매일 새 마음을 공급받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무시하고 덮어버렸던 내 안의 수많은 감정들이 새 생명을 얻고 조금씩 내 안에 뿌리내릴 수 있음에 감사한다.

만약 나에게 아이들이 없었다면 이토록 썩어있는 마음의 구석을 발견할 수 없었을 텐데 아이들이 나에게 상처 받은 표정이, 슬픔에 흘리는 눈물이 같은 상처와 슬픔 속에 울고 있던 나를 마주하게 한다. 나는 좋은 엄마는 될 수 없지만, 내 아이들은 참으로 좋은 자녀라서 내가 그 덕에 엄마 노릇을 할 수 있어 감사할 뿐이다.


이렇듯 엄마로의 삶을 통해 정서적인 성숙을 바라며 나아가는 삶은, 일을 통해 세상이라는 곳을 만나 이전과  다른 통찰을 선물로 받게 해주는  같다.

부족하지만 사랑받기에 합당한 나에 대한 믿음이 타인에 대한 믿음의 끈을 연결 하고 내가 필요한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일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으며 삶에 생기를 더하고 때로는 인정을 때로는 충고를 받으며 내 안의 발견하지 못했던 감정과 생각의 결들을 찾아가며 단단한 나를 만들어간다. 다만 시간이 좀더 걸릴뿐이다.



맘먹은 대로 못살아갈 나에게


아이들 방학과 병치레로 정신없었던 지난 2주간 사실 공부를 거의 집중하지 못했다. 그 시간을 회고하며 나 스스로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다 보니 내 마음의 이야기로 들어가고 말았다. 앞으로도. 수많은 변수로 인해 가던 걸음을 멈칫하게 될 텐데 자책하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고 나의 속도를 인정해주고 싶을 때 꺼내어 보려 이렇게 글로 남겨본다.


오늘 혹시 나처럼 무엇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해결되지 않는 내 안의 감정들을 소화해 내느라 버거운 하루를 보내는 이가 있다면 나도 그 길에 함께 있노라고. 그러니 함께 가자고 손 내밀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의 새 이름, 체인지 메이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