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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쌤 Sep 28. 2021

10. 나도 효리언니처럼 제주살이 하고 싶어요

     

코로나가 시작되고 몇 달 후, 제주살이를 알아본 적이 있다. 효리네 민박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며 제주도의 평화로운 풍경에 한창 빠져있을 때 언젠간 가야 지하고 생각했었다. 코로나로 집에만 있으니 답답한 마음에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았다. 잘 참아왔던 여행 병이 도졌다. 나는 사주에 역마살이 끼어있어 해외를 많이 돌아다닐 것이라 했다.

      

6년간 승무원을 하면서 원하는 대로 여행을 다녔다. 하지만 아무리 물을 마셔도 사라지지 않는 갈증처럼 여행욕구는 계속해서 올라왔다. 물을 계속 원하는 연가시가 된 것처럼 여행을 다닐수록 여행을 더 원했다. 아마도 과거의 내가 잘 때 꾸던 꿈들이 나의 이런 욕구를 잘 말해준 것 같다.      


과거의 나는 꿈을 자주 꾸었다. 대부분 하늘을 나는 꿈, 누군가에게 쫓기는 꿈들이었다. 무서운 괴한이 총이나 칼을 들고 나를 죽이려 쫓아온다. 숨 막히는 추격 신에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도망가다가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간다. 괴한에게서 멀리 도망가는 방법은 하늘로 도망가는 것뿐이다.      


차에 시동을 걸 듯, 양팔로 날개 짓을 펄럭 펄럭 시작한다. 날기 전에 양팔을 위아래로 엄청나게 흔들어야 한다. 바람의 저항을 탈 때까지 흔들다 보면 약간의 두려움과 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일어난다. 올라오는 생각들이 사라질 때, 마침내 옥상에서 몸을 내던진다. 배에 바람이 느껴진다. 무언가가 아래에서 나를 받쳐주고 있다. 하늘을 날면서 세상 사람들을 바라본다. 개미처럼 작은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저 사람과 다르니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나는 신이 된 듯 기분이 무척 좋다.      


날개 짓을 어찌나 했는지 현실과 분간이 되지 않을 만큼 지금도 날 수 있을 것 같다. 늘 이런 패턴의 꿈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꿔오던 꿈이었다. 거의 같은 내용과 분위기, 감정이 느껴지는 꿈이라 꿈을 꾸지 않는 요즘도 생생하게 생각난다. 꿈을 해몽해보면 살인자에게 도망가는 것은 현재 내 상황이 불안정한 것을 뜻하며 하늘을 나는 꿈은 그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어 하는 심리를 반영한다고 한다.      


그랬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하는 의문을 혼자 마음속에 감춰 두었다. 그리고 겉으로는 웃으며 가면을 쓰고 살아왔다. 그렇게 나는 삶에 점점 지쳐갔다. 좋은 기회에 운동과 명상을 통해 많은 것을 치유할 수 있었으나 이상하게도 여행에 대한 욕구는 더욱 넘쳐났다. 나는 여행을 통해서 내 삶을 바라볼 수 있었다. 여행은 현실에서 도망가는 도피처였고, 힘든 과거를 보낸 나에게 주는 보상 같은 것이었다. 승무원 생활을 통해 자유롭게 여행을 다녔다. 일정이 자주 바뀌는 직업인지라 갑작스레 생긴 휴가가 있으면 혼자라도 무작정 떠났다.      


여행을 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반딧불 투어를 하며 자연에 신비한 마음이 들었고, 암스테르담의 풍차마을이 보여주는 이국적인 풍경에 동화 속 주인공이 된 듯했고, 캐나다 벤프의 대자연에 숨이 멈춘 듯한 황홀감이 올라왔고, 아일랜드의 국립공원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ps I love you] 남녀 주인공의 절실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여행 다닌 곳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곳이 있다. 미국에 있는 세도나이다. 그곳은 영적으로 기운이 매우 좋은 곳이라 기억이 특별하다. 세도나에서 2주 동안 살았다.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지만 내 삶에서 그렇게 평온하고 차분했던 적이 없었다. 2주 동안 텔레비전을 한 번도 켜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꿀 한 스푼을 탄 따뜻한 홍차를 마시며 잠시 앉아 멍을 때렸다. 요가를 하고 식사를 챙겨 먹고 산책을 하는 일상을 보냈다. 그저 숨 쉬는 것만 해도 마음이 풍요로운 순간들이었다.     


나의 이러한 경험들은 더욱더 나를 여행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운동 강사가 되고 승무원의 혜택인 할인 티켓이 없어지고 난 후에도 여행은 계속되었다. 일을 하고 모은 돈으로 짧게는 1박 길게는 한 달씩 여행을 갔다.


그러다 2020년 코로나19가 터졌다. 처음엔 중국과 한국으로 퍼진 바이러스가 언젠가는 잠잠해지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한 달 정도 지나니 답답함이 올라왔다. 이 기회다 싶어 한국보다 안전한 다른 나라로 떠날까?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나빠졌고, 전 세계가 비상이 걸렸다. 확진자 추적 경로와 숫자 파악, 해외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의 자가 격리 관리를 통한 국가의 재난 안전 대책을 보면 이제 한국이 가장 안전한 나라로 느껴졌다.      


이 시기에 개인적인 여행 목적으로 해외를 나간다? 사람들의 눈총을 받을 뿐 아니라 나조차도 건강이 염려되었다. 난 한국에 완전히 꼼짝 묶여버렸다. 일도 쉬고 외출도 못하고 모든 것이 완전히 멈춰버린 2020년은 마치 재난영화 같았다. 난 집에서 홀로 지내는 일이 많아졌다. 여행은커녕 집 앞 편의점에 나가는 것도 꺼려지는 시기였다. 무언가 해결되지 않는 답답함이 밀려왔다.      


그래서 난 제주살이를 알아봤다. 집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간에 가면 좋아지지 않을까? 어디 혼자 숨어서 글쓰기라도 하면 나아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효리언니처럼 멋지게 요가도 하고 명상도 하면서 제주도에서 한 달을 살아볼까,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강원도 산속에 가볼까? 그러다 갑자기 문득 ‘과거에도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여행으로 도망 다녔는데, 나 여전히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네’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더욱 답답해졌다.      


하늘을 보면 나아질까 하고 거실에 있는 큰 창 앞에 섰다. 예전엔 촘촘하게 지어진 건물들 위로 하늘이 가득 내 눈에 담겼었다. 하지만 지금은 몇 년 전부터 내가 사는 빌라 바로 앞에 새 빌라들이 3채나 지어지면서 다 막아버렸다. 황량하고 차가운 벽만 보였다. 내 방으로 가서 침대 위 창을 열었다. 내 방 역시 앞 건물과 거리가 가까웠다. 여름에 열더라도 항상 커튼을 치고 있었던지라 뭐가 보이는지 잘 알지 못했다. 침대에 서서 창을 막고 있는 가리개를 넘어 창밖으로 고개를 쑥 내밀었다.      


와.. 하고 감탄이 나왔다. 저 멀리 보이는 북한산 능선이 한눈에 보였다. 초록색으로 뒤덮인 산과 파아랗고 맑은 하늘에 둥실 떠다니는 몇 조각의 구름들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나는 이미 제주도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예전에 제주도로 여행 갔을 때, 호텔에서 창을 열어 성산일출봉을 바라볼 때와 비슷했다. 난 신이 나서 토끼처럼 깡충깡충 안방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창문을 열었다. 안방은 고개를 내밀지 않아도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보였다. 5년이 넘게 이 집에 살면서 창을 열어 고개를 내민 적이 처음이었다. 앞집이 가까우니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과 늘 마음이 바쁜 탓에 창밖을 쳐다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 순간 누가 내 머리를 콩하고 꿀밤을 때리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너의 삶에서 꿈이 뭐야 하고 물으면, 나는 ‘서울 근교에서 자연을 바라보며 조용히 글 쓰면서 지내는 게 내 꿈이야’라고 말하고 다녔다. 50대쯤 되면 이룰 수 있을까 하며 막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나는 알았다. 내가 바라는 삶들이 지금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내 현실이 내가 그토록 바라던 여행지였고, 그토록 꿈꾸던 일상이었다.      


작은 접이식 책상을 사서 내 침대 다리 맡에 놓았다. 구조는 이상했지만 거기 앉아 글을 쓰니 저 멀리 북한산과 하늘이 보였다. 꿈꾸던 삶을 이루는 데는 비행기 표도, 고급 리조트 도 필요치 않았다. 접이식 책상 값만 필요했다. 코로나로 인해 일을 쉬며 내 삶은 다르게 흘러갔다. 50대에나 가질 수 있을까 했던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 마음이 여유로워지니, 언젠가는 이루고 싶던 나의 꿈이 이루어졌다. 한가롭게 글을 쓰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 여기에 있었다. 이젠 더 이상 도망가지 않아도 괜찮았다. 여행에 목마르지 않아도, 하늘을 나는 꿈을 꾸지 않아도 되었다. 생각을 바꾸니, 나는 이미 내가 원하는 곳에 도착해있었기 때문이다.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도망가고 싶은 사람들은 무언가에 중독되기 쉽다고 한다. 나 역시 외롭다는 말을 자주 했을 과거에 와인에 중독된 적이 있었다. 애정결핍 증상은 해외에서 홀로 지내는 나를 술에 중독되게 만들었다. 와인은 나의 외로움을 달래줄 뿐 아니라, 알딸딸한 기분에 이 세상의 슬픔을 잠시 잠깐 잊게 해 주었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오로지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나의 마음을 인정하지 않았고 들여다볼 수 없었다. 그저 감정에 이끌려 앞만 보고 살았다.      


술과 여행에 중독되어 현실을 도피했던 지난날은 사라졌다. 이제는 현실에서 도망가는 것이 아닌 내 안을 들여다보는 법을 알게 되었다. 지금이 곧 신비로움을 느끼게 하는 여행지이고 알딸딸한 즐거움을 주는 술과도 같다. 내 주변이 아니라 내 안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니, 내가 동경하던 효리언니처럼 멋진 삶을 나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제주도가 아닌 2평 남짓한 서울의 내 방에서 꿈에 그리던 멋진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 누구보다 멋진 삶을 당신도 살 수 있을 것이다.  


        


미라쌤의 치유법 :D


나는 이미 내가 원하는 미래에 도착했다.

내 생각을 바꾸면 내가 원하는 미래를 지금 당장 만들 수 있다.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 지어진 환경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그 조건을 바꾸어보자. 책을 쓰려면 무조건 조용한 환경과 글쓰기 실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시끄러워도 집중할 수 있는 의지만 있다면 어디에서도 글을 쓸 수 있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에게 한번 해볼까 하는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내가 꿈꾸는 먼 미래를 나 스스로 핑계를 대며 더 멀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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