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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쌤 Sep 19. 2021

6. 전쟁같은 급똥이 괴로워요

 나는 일 년에 한 번씩 세탁기 청소를 한다. 세제 투입구에 곰팡이가 생기고 세탁한 옷에서 냄새가 난다면 세탁하고 남은 물이 세탁기 안에서 오염되었다는 증거이다. 보통은 청소 용액을 넣고 내가 스스로 했는데, 티브이에서 용액 쓰는 것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번에는 청소업체에 맡겼다. 오전 9시경 젊고 키 큰 남자가 세탁기 청소를 해주러 왔다. 세탁기를 분리하는 작업과 청소하는 작업이 2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했다.      


청소를 하는 동안 내 방에서 할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배가 살살 아팠다. 분리된 세탁기를 청소하느라 화장실을 쓰고 있는 상황이었다. 난 버텨보려 했다. 이런 일이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침착하게 대처했다. 조금만 참으면 어느샌가 폭풍 같은 느낌은 사라진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전날 밤에 먹은 닭발이 강력했다. 매운 양념 때문에 내 배는 난리가 났다. 얼굴이 노래졌다. 할 수 있는 만큼 항문을 조여 봤지만 새어 나올 것 같았다.        


식은땀이 났다. 내 눈에 휴지통이 보였다. 내 방문을 잠그고 휴지통에 쌀까.. 생각을 했지만 너무도 굴욕적이었다. 아직 이성이 남아있었다. 머리를 굴렸다. 집 근처에 화장실을 쓸 만한 곳이 어디인가. 가장 가까운 곳은 편의점뿐이었다. 일하는 사람이 쓰는 화장실이 분명 있겠지 하고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이성을 부여잡고 커피 하나를 사고 계산하며 화장실의 위치를 물었다. 이런.. 화장실이 없다고 했다. 난 다급한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정말 없다고 했다. 이럴 거면 조금 더 걸어가서 커피숍으로 갈걸.. 마음은 급하고 배 안에서 쓰나미가 몰려왔다. 금방이라도 찔끔하고 나올 것만 같았다. 커피숍까지 걸어갈 상황이 아니었다. 난 잠시 먼 산을 바라보았다. 항문을 힘껏 조이다가 잠잠해진 틈을 타서 다시 집으로 왔다.      


집 앞 쓰레기를 버리는 곳에 하수구가 보였다. 당장 바지를 내리고 쭈그려 앉고 싶었다. 아 우리나라에는 왜 이리 시시티브이가 많은 걸까. 원망스러웠다. 편의점을 왔다 갔다 하는 길에 얼마나 많이 기도했는지 모른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신들을 소환하며 기도드렸다. 결국 해결하지 못하고 다시 내 방에서 쭈그려 누워 화장실이 비워지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날, 닭발의 후유증은 너무도 강렬했다.      


당장 생사가 갈리는 전쟁 같은 느낌은 나에게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했다. 어렸을 때부터 과민성 대장 증후군으로 고생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친한 친구는 나와의 추억을 떠올리면 휴지 가져다준 기억밖에 없다고 했다. 어렸을 적 난 주목받는 걸 몹시 힘들어했었다. 수업시간에 내 이름이 불리면 친구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본다. 얼굴이 홍당무가 될 뿐만 아니라 온 몸의 털이 쭈뼛 선다. 무언가를 발표하거나 장기자랑을 할 때 급격히 찾아오는 생리적 현상 때문에 곤란한 적이 많았다. 예민한 방광과 장의 활동으로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다. 그럴 때면 늘 나를 따라와 옆에서 휴지를 챙겨주던 친구가 참 고마웠다. 짓궂은 친구들은 나를 똥쟁이라고 불렀다.     


똥쟁이인 나는 유치원 때까지 길거리에서 용변을 본 기억이 있다. 초등학생 때는 조금 컸다고 부끄러움을 알았다. 길거리에 싸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게 바지에 싸면서 집까지 걸어온 일이 다반사였다. 고학년 때까지 그랬다는 건 나만 아는 비밀이다. 내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대장의 예민함은 내겐 일상이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전했다. 긴장과 불안감의 날들로 힘들었던 예전의 기억들이 떠올려진다.      

가장 긴장이 심했던 자리를 생각하니, 승무원 면접을 볼 때였다. 승무원은 외적인 요소를 많이 보는 직업이었기 때문에 면접을 볼 때마다 메이크업샵에 가서 머리와 화장을 돈 주고받아야 했다. 그날도 여전히 잔머리 하나 보이지 않도록 머리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화장을 했다. 몸에 쫙 달라붙는 스커트에 실크 블라우스를 입었다. 키가 커 보이기 위하여 9센티 힐을 신었다. 그날은 4차 면접인 다대다 그룹면접이었고 내 이름이 불리 우기만을 대기실에 기다렸다.     


다대다 면접이라 남들과 비교가 되는 자리였다. 나는 유난히 긴장을 했고 아니나 다를까 급똥의 신호가 왔다. 기운이 없으면 자신감 없어 보일까 봐 새벽에 먹은 샌드위치가 강력한 신호를 보냈다. 혹시나 하는 상황에 물도 안 마시고 버텼는데 배에서는 꿀렁꿀렁 신호가 왔다. 다리가 예뻐 보이려고 신은 압박 스타킹은 그날따라 나의 아랫배를 더욱 조여 왔다.     


그때, 내 이름이 불려졌다. 항문을 있는 힘껏 조이고 깊게 심호흡을 했다. 일어나서 면접실로 향했다. 면접관들이 항공사의 유니폼을 입은 면접자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서 있는 자세로 면접을 진행했다. 마음이 엄숙한 면접 실 분위기에 집중했던 덕분인지 다행히 위험한 빨간 불은 잠시 멈추었다.     

이윽고 내 차례에서 질문이 왔다. 뻔한 질문이었다.


“우리가 왜 당신을 뽑아야 하죠?”

영어를 잘한다는 둥 서비스 마인드가 투철하다는 둥 괜찮은 대답을 많이 준비했지만 그날 내 머릿속엔 온통 화장실.. 화장 실뿐이었다.


그래서 대답한 것이 화장실이었다.     

“화장실입니다. 화장실”

갑자기 화장실이 불쑥 나와 버렸다. 아뿔싸 진땀이 났다. 나는 화장실에 대해 생각했다. 갑자기 호주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던 내가 생각났다.     


긴장한 것을 들키지 않으려 큰 목소리로 쩌렁쩌렁 말했다.

“저는 화장실 청소를 잘합니다. 호주에서 룸메이드로 일했습니다. 그때, 화장실 청소했던 경력을 이용하여 동료들이 꺼려하는 화장실을 제가 맡아 청소하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순간 면접관들과 지원자들이 빵빵 웃음이 터졌다. 그룹의 분위기가 중요했던 다대다 면접에서 우리는 경쾌하게 면접이 이어졌다. 입사하고 몇 년 후에 이사님께 들은 얘기로는 그날 내 성격이 좋아 보여서 합격시켰다고 했다. 이처럼 화장실은 여러모로 내게 고마운 존재이다. 면접도 붙게 해 주고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해결해주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     


내 인생에서 화장실을 빼놓는다면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잃는 것이다. 난 사람들의 말 중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이 있다. 밖에 나가면 용변을 참는다는 것이다. 여름방학에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 가거나, 회사 연수로 며칠 동안 외부에서 잘 때 혹은 해외여행을 가면 낯선 환경에서 용변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참는다고? 어떻게? 난 참을 래야 참을 수가 없는데.’ 참고 싶은 게 소원인 순간들이 너무도 많아 힘든 나날들이었다.     


어째서 나는 참을 수 없을 만큼 힘든 상황이 자주 왔을까. 왜 이렇게 시시때때로 내 장은 미친 듯이 요동치며 화장실을 간절하게 만들까. 종교도 없는 나를 각종 신들을 찾아 기도하게 만드는 급박한 상황의 원인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긴장하는 마음이 들면 자주 그랬던 것 같다. 중요한 순간에 잘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과 안 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긴장하는 순간에 다른 이들의 경우를 보면 보통 손톱을 뜯는다거나, 양손을 꼼지락거리며 가만히 두질 못한다거나,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지 못한다거나, 목소리가 떨린다거나 등등 다양한 행동이 나온다, 하지만 나는 마음의 긴장만큼 대장이 요란하게 춤을 춘 듯하다. 마치 예전에 관종이었던 나와 같았다. 사람들 앞에서 주목받아야만 사랑받는다고 느꼈고 외롭지 않았던 그때의 나. 그런 나처럼 나의 장도 관심 좀 달라고 요동쳤던 건 아닐까?     


글을 쓰는 지금 솔직히 나의 대장이 완벽히 편해졌다고 말할 수 없다. 명상으로 마음을 치유하고 운동으로 몸이 건강해졌지만 여전히 내 대장은 예민하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서 70프로 정도 나아졌다. 매운 음식, 아이스커피, 우유, 기름진 곱창 같은 걸 먹으면 예전에는 한 시간 이내로 배를 붙잡고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음 날 아침에 가는 정도로 바뀌었다. 이것조차 내겐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이제야 비로소 남들과 비슷하게 정상생활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화장실에 자주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여름에는 늘 탈수현상이 일어날 정도로 배탈이 자주 났고, 남들이 모두 효과를 봤다는 유산균과 한약도 소용이 없었다. 이런 내가 과민성 대장증후군이 나아진 것은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었다. 예민한 대장 때문에 내가 예민한 성격인 건지, 스트레스를 잘 받는 내 성격 때문에 대장이 요동친 건지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편안해졌다는 것이다.      


아직도 먹는 것 때문에 장이 예민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긴장하는 마음은 훨씬 줄었다. 이제 내 마음이 불안해서 급똥이 찾아오는 경우는 없어졌다. 친구들 앞에서 하는 장기자랑에도 소변을 찔끔 쌀만큼 두려워하던 내가 지금은 여러 명 앞에서 강의를 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이 되었으니 말이다. 닭발 덕분에 오랜만에 전쟁을 치르고 보니 새삼 편안한 장이 고마워진다.



미라쌤의 치유법 :)


내려놓을수록 나는 더 빛이 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 때 나는 편안해진다. 그런 나를 사랑할 때 남들도 그런 나를 사랑해줄 수 있다. 감추려 하면 언젠가는 탄로가 날까 걱정하며 불안한 삶을 살 것이다. 오히려 날 것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자. 내려놓으면 내 존재 자체로 빛이 난다.


그 빛을 알아주는 곳이 내 자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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