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라쌤 Sep 20. 2021

7. 겪어본 사람만 아는 생리통

자카르타에서 살 때, 값싼 중국제 제품으로 염색을 잘못해서 머릿결이 크게 상한 적이 있다. 빗질도 못할 만큼 머리카락이 상해서 내겐 큰 스트레스였다. 그때 이후로 염색은 절대 하지 않는다. 머릿결을 건강하게 관리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영양 클리닉을 받은 지 벌써 9년째이고, 같은 미용실에 다닌다. 영양을 할 때는 3단계의 과정이 있어서 제품을 바를 때마다 샴푸를 해야 한다. 보통 머리를 감겨줄 땐 메인 디자이너가 아닌 일을 배우고 있는 보조 디자이너분이 감겨주신다.      


머리카락이 긴 여자들은 머리를 감고 말리는 것이 여간 팔이 아픈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머리를 감겨주는 것이 얼마나 편안한지 아는 내 친구는 종종 5천 원을 내고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감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로 들린다. 나는 누군가가 내 머리를 만지는 일을 어떡해서든 피하고 싶다.      


몸이 예민해서 낯선 사람이 내 몸에 손을 대면 온몸의 감각들이 쭈뼛하고 살아나기 때문이다. 샴푸 할 때, 얼굴에 물이 튀지 않게 막아주는 페이스 커버를 씌우면 앞이 보이지 않아 더욱 내 몸의 예민함이 커진다. 특히 그날, 어떤 보조 디자이너를 만나느냐에 따라 내 몸의 긴장도가 달라진다.      


손이 거칠거나 숙련되지 않은 보조 디자이너를 만나면 내 목이나 귀 뒤로 물이 넘어간다. 물 몇 방울이 주욱 내 목을 타고 흐르면 목부터 허리까지 찌릿하게 전기 감전이 된 듯하고 온 몸의 근육이 경직되어 굳는다. 반면에 어떤 디자이너는 실수할까 싶어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손길로 내 머리를 감긴다. 그럴 때면 손가락의 압이 너무 약해서 마치 강아지풀이 내 목 뒤를 간질이는 소름이 끼치는 느낌이 난다. 손가락 압력의 세기가 정말 중요한 일인데, 그 적당함을 아는 분을 만나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머리를 감겨주는 손이 내 목 뒤나 귀 주변으로 오면 어깨는 경련 일어날 듯 요동치고 척추뼈 하나하나가 조약돌처럼 딱딱하게 굳는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애써 그 감각을 무시하려 해 봐도 기분 나쁜 간질거림과 언제 어디로 올지 모르는 손가락의 공포로 내 몸 전체가 불에 구워지는 반 건조 오징어처럼 뒤틀린다. 미용실에 가는 날은 내게 곤욕이 아닐 수가 없다. 누군가는 누가 내 몸을 만지든 물이 타고 흐르든 감각이 둔한 덕분에 잠까지 잔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몸뿐만 아니라 나는 남들보다 민감한 성격을 타고났다. 갓난아기일 때부터 엄마 등 뒤에만 업혀있었다고 한다. 누가 나를 만지면 빼액 하고 소리를 질렀고 엄마 등에서 나를 내려놓으면 그렇게 세상 떠나갈 듯 울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친척 어른들은 나를 보릿까시래기 라고 부른다. 이렇게 태어난 것도 억울한데, 주변에서 늘 까칠하다는 말을 듣고 살았다. 그래서일까. 유난히 민감한 성격 탓에 사소한 일에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매일매일이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라고 하는데, 그래서 내가 그토록 아팠나 보다. 어렸을 땐 코피를 달고 살았다.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사진의 반 이상이 내 코에 휴지가 꽂혀있을 정도였다. 성인이 되어서도 몸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었다. 다른 아픔은 간헐적으로 찾아왔지만, 내 생에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바로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생리통이었다.     


나는 생리를 시작한 이후로 아파본 날들 보다 안 아픈 날들이 더 적다. 소파를 붙잡고 뒹굴며 학교를 못 갈 정도로 생리통이 심했다. 언제나 내 가방엔 초록색 타원형의 흡수 빠른 액체형 진통제가 필수로 들어있었다. 실제로 1년에 한 번씩 기절할 정도로 몸이 안 좋았다. 어느 날은 엘리베이터에서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해 아파트 경비원이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었고, 헬스장에 운동하러 갔다가 샤워 실 입구 의자에 쭈그리고 누워 한 시간을 쓰러져 일어나지 못한 적도 있었다.      


승무원 시절에는 남들 다 일하는 식사 서빙 시간에 생리통이 너무 심해 고통스러운 적이 있었다. 4시간에 한 알씩 먹는 약을 두 알이나 먹고도 진정되지 않았다. 식은땀은 내 등을 다 적셨고 숨 쉬기 조차 힘들었다. 마치 전생에 나에게 죽임을 당한 원수가 내 허리를 두 동강 내려고 칼로 자르는 통증이 밀려왔다. 허리를 펼 수 없어 동료들이 일할 때 나는 벙커에서 두 시간을 누워있었다. 그날 비행이 끝난 후 브리핑을 할 때, 나한테 일하기 싫어 꾀병 부린 거 아니냐는 동료의 시기 어린 의심이 있었다. 그럴 때면 몸뿐 아니라 마음마저 힘들어진다.     


꼭 일 년에 한 번씩 이렇게 극심한 통증이 갑자기 찾아와 정신마저 잃게 한다. 정말이지 생리통은 안 겪어본 사람이면 모른다.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에 골반 뼈 안에 공룡이 울부짖는 사진이 있다.

만큼 아프다는 것을 보여준 여자들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다. 골반 안에 공룡뿐 인가, 정말 심한 생리통은 출산하는 고통과도 맞먹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출산은 그 고통이 일반적으로 수치화되어있고 소중한 생명의 탄생이라는 멋진 의미가 있다. 하지만 나처럼 만성 생리통으로 아픈 사람은 일하기 싫어 저러는 거 아니냐는 욕을 먹기 딱 좋았고, 생리통을 경험하지 못한 나와 같은 성별의 여자들조차 이해 못하는 서러운 통증이었다. 생리통은 이처럼 아프고도 욕먹어야 하는 정신적인 고통까지 더해진다. 털어놓을 때는 병원 밖에 없다. 하지만 효과적인 치료법을 들어봤는가? 화학 성분인 약에 의존한 것뿐이었다. 값비싼 한약과 호르몬에 좋은 영양제도 도움 되지 않았다. 내가 힘들어할 때면 우리 엄마는 늘 말했다. “애 낳으면 없어져.”


애 낳으면..

애 낳으면?

애 낳으면!     


생리통을 없애려고 남편도 없는 내가 어디에서 정자를 가져와 애를 낳느냐 말인가. 최근에 화제가 된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 여배우 사유리가 있다. 그녀처럼 정자 기증을 활용한 아름다운 미혼모의 출산이라면 너무 좋겠지만, 우리 엄마의 말은 본인이 그랬으니 너도 그럴 것이라는 근거 없는 추측과 빨리 결혼했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염원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임신은 훌륭한 해결법이 아니다.      


특히 내가 조울증으로 힘들 때, 생리 전 증후군 증상은 몹시 심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면 죽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왔고 이유 없이 눈물이 났으며 모든 게 짜증이 났다. 내가 살아있는 게 싫었다. 물을 마시려고 컵을 잡으면 나한테 손가락이 있는 것도 싫을 정도로 눈에 보이는 전부가 싫었다.      


골반 안에 공룡이 있다고? 내 몸을 갈라서 그 공룡을 꺼내어 찢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정신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수 없을 정도로 난폭하고 사나운 상태가 되었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홀로 전쟁을 겪었다. 적군이 나타나 하늘에서 바다에서 육지에서 총을 쏠지 미사일을 쏠지 모르는 상황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다.      


누가 내 마음을 이해할까? 나 자신도 이런 내가 당황스럽고, 아무도 날 이해 못한다는 마음에 불안감과 우울은 더욱 심해졌다. 허리는 끊어질 것처럼 아프고, 골반은 빠질 것 같았고, 아랫배는 누군가가 송곳으로 수도 없이 찔러댔다. 나는 생리를 시작하고 십 년 넘게 몸과 마음이 서러운 세월을 보냈다.      


현재 내가 운동 강사와 명상 지도자가 되고 가장 만족하는 것이 바로 누구보다 심했던 생리통이 사라진 것이다. 이제는 생리를 하는지도 모르게 지나간다. 내겐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지긋지긋한 생리통의 치료법은 틀어진 몸의 정렬을 바로 잡아준 것도 효과를 봤지만, 스트레스를 낮춘 것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나처럼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게 예민한 사람들도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면 생리통으로부터 편안해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생리통이 심한 사람들 대부분은 나처럼 예민하고 민감한 성격을 가진 것 같다. 하지만 예민하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 때도 있었다. 현재 나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전문직이기도 서비스직이기도 한 나의 직업은 과거의 예민했던 나의 성격이 무척 도움이 되고 있다. 내 몸이 예민한 만큼 남들에게 조금 더 친절하고 배려 깊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아프다면 얼마나 그 고통이 심한지 알고 있으니 충분히 쉬라고 배려해줄 수 있다. 에어컨 온도의 1도 차이에도 춥거나 덥진 않은지 신경 써서 물어봐줄 수 있다. 같이 있는 사람이 인상이라도 찌푸리면 어디 불편해요 하고 챙겨줄 줄 알게 되었다. 예민하다는 것은 글쎄, 지금 생각해보면 꼭 나쁘지 만은 않은 것 같다. 남들보다 좀 더 배려 깊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과거의 내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이 스트레스였던 만큼 마음과 몸이 불편해지던 일이 많았다. 이것들이 쌓이면 생리통뿐 아니라 많은 질병들이 올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이로부터 몸과 마음의 건강 유지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회만 된다면 나처럼 생리 전 증후군과 생리통으로 힘든 분들을 만나 골반의 어느 부분이 틀어졌는지 언제 스트레스를 받는지 일일이 만나서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정도이다.



미라쌤의 치유법 :)


언젠가부터 예민한 나를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조금 예민하면 어때.

한 여름에 에어컨 온도에 민감해서 늘 카디건을 챙겨 다니기 때문에 냉방병을 예방할 수 있는걸.

조금 예민하면 어때.

후각이 유달리 예민해서 상한 음식을 금방 알아차려서 조심할 수 있는 걸.

조금 예민하면 어때.

다른 사람보다 별나다는 건, 그만큼 특별하게 나를 챙길 수 있는 걸.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 없어.

다른 사람의 말에 화낼 필요 없어.

그 사람은 날 모르는 걸. 괜찮아. 지금 그대로 괜찮아.            

이전 06화 6. 전쟁같은 급똥이 괴로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