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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쌤 Sep 25. 2021

8. 집착과 분노가 일으킨 불면증

잠 못 이루는 밤.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의 소설에서 나올 법한 가슴 아련한 밤이 아니다. 자고 싶어도 못 자는 불면증을 겪는 현대인에게는 너무도 힘든 밤이다. 나는 스무 살 후반쯤 지독한 불면증을 겪었다. 내가 좋아하던 남자와 이별했던 날이 그 시작이었다. 한창 나쁜 남자를 좋아할 때였다. 무심하면서도 가끔씩 챙겨주는 그가 멋져 보였다. 주변에서 그는 별로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만류해도 나는 소신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소신이 아니라 멍청한 고집이었다.   

   

그 남자의 생일날, 나는 비행으로 외국에 있었다. 생일날 옆에서 챙겨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어 문자를 보냈다. 그날 새벽, 그 남자의 핸드폰으로 연락이 왔다. 어떤 여자였다. ‘지금 오빠는 내 옆에서 자고 있는데 당신 누구세요?’ 하며 어이없는 문자가 왔다. 그녀는 자신이 그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고 했다. 사귄 지 일 년이 넘어가는 나를 두고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한다니. 몇 달 전에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결혼하자고 하던 남자는 누구일까. 그 여자와 나. 누가 바람을 피우는 상대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난 뒤, 그의 지인에게서 들은 얘기로는 그 둘은 직장 동료 사이라고 했다. 내가 비행을 나갈 때마다 그 여자와 데이트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여자가 내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땐, 그 남자는 나를 본인을 따라다니는 스토커라고 했다고 한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여자를 밝히던 그 남자는 결국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났다. 바람이 났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사귈 때에도 연락이 잘 되지 않아 내 마음을 새까맣게 태우며 고생을 시키던 그였다. 24시간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난 미련하게 모든 걸 받아주었다.      


그의 거짓말에 농락당했다는 생각이 들어 억울했다. 나는 4일간 잠을 못 잤다. 사람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잠을 자고 싶었지만 도통 잘 수가 없었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하던 그 남자의 비열하고 악랄한 표정이 생각났다. ‘속으로 얼마나 나를 가볍게 생각했을까. 나를 가지고 놀 때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그 생각들을 잊으려고 눈을 감으면 그 남자와 그 여자가 데이트하는 장면들이 생각났다. 히히 호호하는 모습이 떠올라 마구 화가 났다.     


잊으려 할수록 괴로운 생각들이 더욱 끊임없이 일어났다. 그 생각들은 분노로 변했고, 분노는 충동적인 행동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그 남자의 차를 부숴버리고, 집에 가서 불을 지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상상이 커질수록 마음에 큰 불이 났다. 불이 더 크게 옮겨 붙는 듯 분노가 크게 차올랐다. 그를 믿은 게 아니라 그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은 나 자신에게 실망했다.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며 쓰레기처럼 행동하던 그를 떠올리면 살인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4일 동안 한 숨도 못 잤던 내 몸은 각종 자양강장제와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었다.      


5일째가 되던 날, 나는 잠자기를 포기해버렸다. 불을 끄고 누워있으면 이상한 상상들로 괴로움이 더했기 때문이다. 불을 켜서 티브이를 보고 책을 봤다. 아예 잠을 안 잤다. 아침이 되면 비행을 갔다. 일을 할 때 눈이 떨리고 뼈가 삭는 기분이었다. 잠을 못 자는 그 기분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것 같다. 머리는 멍하고 몸은 붕 뜬 상태 같았다. 마치 마약을 하면 이런 기분일까? 커다란 풍선 안에 내가 들어있고 그 풍선이 나를 둥둥 거리며 움직여 이동하는 느낌이었다. 움직이는 것도 말하는 것도 내가 아니었다. 내가 내가 아니었다. 사람이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불면증으로 고생했다. 그 이후로 작은 고민이라도 생기면 불면증은 간헐적으로 찾아왔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우면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작은 고민들이 나를 찾아왔다. 낮에는 없던 과거 기억의 조각들과 미래에 대한 걱정들이 한꺼번에 나를 찾아와 괴롭게 했다. 그 생각에 이끌려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면 어느새 나의 의식은 더 또렷해진다. 몇 번 불면증을 겪고 나니, 어느 날은 잠을 자려고 누우면 ‘또 잠 못 자겠네’ 하는 불안함이 확 느껴지기도 한다. 불면증이란 녀석, 싸한 느낌이 그렇게 종종 나를 뒤덮었다.      


그렇지 않아도 밤낮없이 일하는 승무원이라는 직업 탓에 잠자는 게 불규칙한데, 불면증에 걸리면 답이 없었다. 나는 허브 차를 마셔보기도 하고 몸을 피곤하게 만드는 고강도 운동도 해보았지만 별로 효과를 보지 못했다. 분노가 쌓인 그때의 기억이 습관으로 남아 정신이 훨씬 더 나를 크게 지배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 후로 불면증이 오면 과감하게 잠을 포기했다. 잠 안 잔다고 죽겠어?라는 생각으로 오히려 보이지 않는 괴로움과 맞서 싸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유튜브에서 불면증에 좋은 음악을 찾게 되었다. 잔잔한 음악 몇 개는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다. 점점 이런 종류의 음악을 찾게 되니 유튜브가 알고리즘을 통해 그와 비슷한 영상을 틀어주었다. 자연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물소리, 새소리로 마음이 좀 더 안정을 찾았다. 그 영상이 끝나니 다음 영상이 자동 재생되었다. 어떤 남자가 낮은 중저음으로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마음이 불안한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강의를 해주었다. 그 이유를 들으니 어둠 속에 갇혀 있던 나에게 아침 햇살의 빛이 온몸으로 비치는 듯했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는 오잉? 경제, 정치도 아니고 마음이라는 걸 공부한다니. 신기했다. 종교라고는 어렸을 적 친구 손에 이끌려서 갔던 달란트 시장밖에 기억 못 하는 나였다. 이런 게 종교의 힘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법문도 성경구절도 아니었다.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과학적으로 해석한 강의였다.     


그때부터 나는 명상을 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방법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었다. 내가 그 남자와 이별하며 느꼈던 감정은 집착이었다. 연애에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나 자신에게 실망감이 너무도 컸다. 그 남자의 나쁜 행동을 알아차리지 못한 아쉬움과 헛된 시간을 보낸 것 같은 후회가 왔기 때문이다. 이 모든 감정들이 과거에 대해 집착하게 만들었다. 과거에 집착하니 현재에 아무것도 못하는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말 그대로 악순환인 것이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생각에 얽매여 있으니 현재에 잠을 자지 못했던 것이었다.

       

내가 생각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수많은 밤, 그 생각을 없애려 할수록 더 큰 생각의 파도가 몰려왔다. 그럴 때 나는 두 가지를 질문했다. 이 생각이 미래를 위한 건설적인 생각인가 쓸데없는 걱정인가?     


미래에 대한 건설적인 생각일 경우 자려고 하지 말고 일어났다. 내일 할 일에 대해서 아이디어가 생각났거나,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불안하다면 난 일기장에 글로 적었다. 난 매일 밤 일기를 쓰는 습관이 있다. 혼자가 된 14살부터였으니 꽤 오래되었다. 일기로 하루를 정리하고 내일 할 일은 포스트잇에 적었다. 예를 들어 미용실 예약 날짜 바꾸기, 냉장고에 있는 음식 유통기한 전에 먹기, 생일인 친구에게 선물 보내기, 문화센터 강의계획서 보내기 등등 작은 일부터 업무에 관련된 중요한 내용까지 전부 적는다. 매일 체크리스트를 적으면 할 일이 정리가 되어 미래에 대한 걱정이 사라진다. 게다가 내일을 잘 보낼 거라는 자신감마저 생긴다.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것들이 과거에 대한 후회나 집착일 경우에는 몸을 움직였다.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생각을 낳는다. 몸을 움직일 때 우리의 뇌는 생각을 멈추고 움직이는 몸에 집중하게 되어 있다. 아주 짧은 5분이라도 요가나 스트레칭으로 몸을 움직였다. 나에게는 고강도 운동보다는 호흡에 집중할 수 있는 요가가 가장 효과적이었다. 당장 숨을 어떻게 들이쉬고 내쉬는지 집중해야 하고 손동작 발동작 하나에도 주위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를 괴롭히던 생각들은 잔잔해지고 고요해졌다. 신경이 흐르는 척추 주변을 순환시켜주니 잠을 잘 오는 것은 물론 다음 날 아침 컨디션도 좋아졌다. 나는 요즘 물구나무서기와 비슷한 동작인 머리 서기를 즐겨한다. 아주 짧지만 집중하는 힘을 만들어주고 마음도 편안해진다.     


내가 명상을 몰랐을 때 나는 언제나 감정에 이끌려 살았다. 불면증을 겪었던 그날들처럼, 생각을 없애려고 할수록 더 큰 괴로움이 몰려왔고 괴로웠다. 아마도 그때 내 마음이 나를 제발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던 것 같다. 내가 내 힘든 마음을 부정하려 하면 할수록 그 고통은 더했기 때문이다. 복잡한 생각들은 수많은 감정들을 만들어 내면서 한꺼번에 나를 공격했다. 나 여기 있다고 일제히 손을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 나를 인정하기 전에는 잠을 재우지 않을 거라고 협박하듯 나를 괴롭혔다.      


이제는 나의 마음에 무엇이 올라오든 모든 것을 인정해주고 있다. 부러움, 외로움, 두려움, 불안감, 분노 등 어떠한 감정이 와도 인정해주는 법을 연습하고 있다. 내 기억 속 평생 지워지지 않는 나쁜 놈을 만난 그때, 나를 탓하는 게 아니라 나의 실패와 아픔을 인정해주었다면 아픔의 크기가 조금은 덜했을 것 같다.      


이제는 내 마음이 아프고 힘든 이유를 알고 나니 내 마음의 주인이 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잠을 못 자는 이유는 분명 내 마음에 불안한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매우 힘들다. 일상은 물론 건강마저 위협하는 고통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몸과 마음에 평안을 찾았으면 좋겠다.     



미라쌤의 치유법 :)


끊임없는 생각들이 나를 힘들게 한 적이 있나?

나는 그 남자와 이별을 한 후로 자주 생각에 사로잡혔다. 한 번 생각이 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혔다. 생각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생각들이 더욱 내 목을 조였다. 생각을 부정할수록 생각은 더 크게 퍼졌다.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기꺼이 모든 생각들을 환영했다. 이런 생각이 올라오는구나 하고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듯 그 생각을 바라보았다. “그래 어디 한 번 이야기해봐. 그랬구나~” 불안했던 감정들이 위로를 받으면 편안하게 가라앉는다. 생각에서 벗어나려 하기보다 생각을 벗으로 삼아주면 금세 편안해진다.      


또한 불안한 감정과 생각들은 모두 다 내가 만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시계를 만든 사람만이 시계를 고칠 수 있다. 감정의 주체인 나만이 나를 다스릴 수 있다. 내 마음에서 올라오는 불안함의 원인을 찾으면 분명 해결의 실마리도 보일 것이다. 나는 내 생각을 조절할 수 있는 내 생각의 주인이다. 나는 내 몸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내 몸의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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