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 초반, 대학 등록금을 내주시는 아빠를 돕기 위해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냈다. 학교 근처 자장면 집에서 일할 땐 친구들이 나를 자장 순이라고 불렀다. 한겨울 영하의 날씨에 주유소에서 와이퍼를 팔며 차 유리를 닦아주던 때도 있었다. 그 외에 곰장어 가게, 커피숍, 내레이터 모델, 마트 판매원, 스카프 판매 등등 여러 가지 일을 했다. 나의 대학생 시절은 낮에는 학교, 저녁에는 아르바이트로 채워졌다. 밤에는 술에 취한 새엄마에게 시달렸다. 주말엔 어린 이복동생을 돌보며 새엄마에게 자유를 주어야 했다.
홀로 지냈던 학창 시절을 지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아무 꿈도 없이 살아가던 어느 날이었다. 나의 힘든 마음을 어루만져 주던 책이 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장영희 교수님의 [내 생에 단 한 번]이라는 책이다. 인생의 여러 시련이 오겠지만 너도 나처럼 잘 극복해 낼 거라는 응원의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책의 내용은 어렸을 적 소아마비 1급 장애를 앓고 목발에 의지하며 사는 교수님이 겪은 이야기들로 꾸며졌다. 병마와 싸우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려는 교수님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내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다. 책 이외에도 샘터에 연재된 글과 인터뷰에 실린 교수님의 글들에는 따뜻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나는 교수님의 글을 보면서 대단한 분이라 생각하며 존경심에 눈물도 흘렸다. 하지만 책을 보는 동안 한 편에는 이런 생각이 올라왔다.
‘뭐야 공부하러 미국까지 갔어? 아빠가 교수네. 그 시절에 이 정도 학벌이면 엄청 잘 살았겠지. 뭐? 아빠가 미국으로 등록금이랑 생활비도 보내줬다고? 아빠가 돈이 많으시네. 나도 그 정도 가정환경이라면 소원이 없겠다. 나는 한겨울에 밖에서 벌벌 떨며 와이퍼를 팔고 있는데 뭐가 그렇게 힘들다는 걸까?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생각했다. 나는 내 상황이 더 불쌍하다며 치기 어린 동정심을 호소했다. 나도 당신 같은 조건이었으면 당신 정도는 해냈을 거라는 변명과 삐뚤어진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그렇다. 나는 교수님을 시기했다.
이렇듯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에게까지 우리는 시기와 질투를 한다. 나와 비슷한 출발선에 있는 사람들과 비교해도 안 될 판에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연예인, 성공한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혼자 외로웠던 학창 시절과 불안정한 가정환경의 아픔을 들키지 않으려고 더 치열하게 살아왔었다. 안정된 가정에서 자란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불우한 환경의 티가 나지 않도록 노력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때의 내 얼굴을 사진을 통해 보면, 참 무섭도록 강렬하다는 것이다. 두 눈썹은 몹시 위로 올라가 있고 눈빛은 차가웠으며 얼굴은 굳어있었다. 누가 말 걸기가 무섭게 화가 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당시 내가 인상이 센 편이라고 느낀 건 항공사에 근무할 때였다.
내가 일했던 첫 직장인 항공사는 외국 항공사였다. 한국행 비행을 할 때엔 항상 두 명의 한국인 승무원이 통역과 서비스를 담당했었다. 그럴 때면 유독 나 보다는 다른 한국 승무원 동료를 많이 찾았다. 나와 같이 일하는 동료가 ‘왜 나만 찾는 거야. 내가 그리 만만 한가’ 하며 투덜거릴 때 알아차렸다. 아무래도 내 인상 덕분이 아닌가 싶다. 그다지 친절하지 않아 보이는 센 이미지의 인상 덕분에 일을 덜 할 수 있었다.
인상을 세게 만드는 건 무엇이었을까. 앞서 말했던 것처럼 시기와 질투에서 오는 마음이지 않을까. 누구와 비교하다 보면 남들에게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올라온다. 그런 마음이 얼굴에 고스란히 담기는 것 같다. 핑계라고 해도 좋지만, 사회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어렸을 적부터 숫자 하나에 나의 자아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리기 몇 등, 수학 몇 점, 키는 몇 번째 등등.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성적과 등수로 우리의 존재가 판단되어진다. 우리나라 학교에서 아이들을 줄 세울 때 일렬로 세운다. 내가 초등학생일 땐 키 순서였다. 키가 작은 편이라 항상 앞에서 두세 번째였다. 중학교 입학한 이후에는 성적순으로 아이들을 나열한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등 시험이 끝날 때마다 성적 발표는 A4용지에 인쇄되어 교실 뒤에 붙여졌다. 그것은 마치 1등부터 꼴등까지의 순위가 학생들의 이름이고 얼굴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내가 다녔던, 반이 세 개뿐이었던 전라도의 작은 고등학교에도 나머지반이 있을 정도로 우열을 대놓고 가렸다. 물론 공부에 뒤처지는 학생들을 더 잘 이끌어주기 위함인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을 성적으로 나누는 것은 그들의 장점이 아닌 오로지 성적순으로만 대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일이다. 너희를 바라보는 사회의 잣대가 이러하니 지금부터 공부를 해야 성공한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주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비교를 당한다. 키는 몇 번째로 큰지, 체력장은 몇 등급인지, 성적은 몇 등인지에 따라 각 분야별 숫자에 나의 존재가 정해지는 듯하다.
반면에 유대인들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줄 세울 때 세로가 아닌 가로로 나란히 세운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각자 자신이 가진 장점을 부각해준다. 플루트를 잘하는 아이, 노래를 잘하는 아이, 글을 잘 읽는 아이, 인사를 잘하는 아이 등등 그 아이들만의 고유의 색깔을 찾아준다. 아이들은 수평으로 된 출발점에서 시작한다. 그 시작점에서 남들과 비교가 아닌 자신에게 집중한다.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알게 되고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 간다. 옆집 아이는 수학을 일등 했는데 나는 왜 수학을 못하지가 아니라 나는 수학 대신 운동을 잘하지 라고 생각을 바꾸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자신이 잘하는 것에 온전히 집중하며 행복한 아이로 자랄 수 있을 것이다.
교육 방식과 시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분명 태어나서부터 남들과 나 스스로를 비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집중할 수 있던 순수한 시절에 대해 생각하니 얼마 전에 들은 조카에 관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내게 다섯 살 난 사촌 조카가 있다. 사촌 언니가 사는 곳은 용인인데, 용인 중에서도 특히 잘 사는 사람들이 많은 지역이었다.
조카가 다니는 유치원에 등, 하원을 할 때면 엄마들이 차를 끌고 온다. 잘 사는 부모들답게 고급 수입 차들이 쭉 줄지어 늘어선다. 내가 꿈에 그리는 그런 차들 말이다. 반면에 사촌 언니는 국산 차 중에서도 저렴한 경차를 끌었다. 문이 옆으로 열리는 레고를 닮은 네모난 차이다. 어느 날은 조카가 친구들과 헤어지면서 사촌 언니의 차를 자랑했다고 한다.
“이것 봐 바. 우리 엄마 차는 옆으로 열린다. 멋지지?” 했더니
“우와~ ”하면서 아이들이 일제히 사촌 언니 차를 타고 싶다고 떼를 썼다고 한다. 정말 웃기고도 슬픈 일이었다고 말하는 언니의 말에 나도 덩달아 피식하고 웃었다. 아이들의 순수함은 언제나 어른들에게 깨달음을 갖게 한다.
조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보면 좋으련만 이제 나는 아무런 잣대 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어려운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비교하는 기준이 나보다 잘 사는 혹은 잘하는 남이 아니라 나로 돌리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남들이 무슨 차를 타고 다니는지 보기 전에 현재 내가 가진 차로 갈 수 있는 곳과 내 차가 있음에 편안함을 떠올리면 더없이 내 차가 소중해진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위해 과거에 했던 노력과 현재에 받는 혜택을 생각하니 내 상황에 만족하고 나를 칭찬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시기와 질투를 했다. 그 안에서 끊임없는 비교가 일어났다. 경쟁 구도의 사회에서 남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날이 많았다. 그런 마음이 고스란히 내 얼굴에서 보였다. 눈빛은 온기 하나 없이 차갑고, 웃을 때도 진솔하기보다는 억지로 웃는 상업적인 미소가 만연했다. 마음이 시키는 게 아닌 자본이 시키는 미소였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고 치켜 올라간 눈썹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항상 방어적이고 거부감이 일어나던 과거의 힘들었던 내가 생각난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진한 이목구비를 가졌지만, 인상이 세단 말은 듣지 않는다. 예전보다 훨씬 온화하고 편안해진 나의 마음이 얼굴에 조금씩 심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처럼 과거의 내 얼굴과 현재의 내 얼굴을 비교해보는 것처럼, 이제 나는 나와 나를 비교한다. 나의 어제와 오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매일 밤 나의 엉덩이를 토닥여주며 말한다. 오늘 잘 살았다고 그리고 내일도 잘해보자고 분명 잘 될 거라고 토닥여준다. 그 토닥거림에 어찌나 기분이 좋아지는지 모른다.
매일 셀프칭찬으로 마음이 편해져서일까. 인상도 한결 부드러워졌나 보다. 이 책을 출판하기 위해 출판사와 처음 미팅을 했을 때가 생각난다. 편집장님이 내 원고만 보고 내 이미지가 다소 어둡고 딱딱할 것 같았다고 말씀하셨다. 난 더 이상 자본주의 미소가 아닌 여유로움 가득한 미소로 말했다. “저 다 좋아져서 책 쓰는 거예요” 나는 지금 편안해진 내 얼굴이 좋다. 지금의 내가 꽤 마음에 든다.
미라쌤의 치유법 :0
누군가와 비교하면 끊임이 없다. 생긴 것, 사는 곳, 하는 일, 타고난 성격 등등 비교할 것이 너무도 많다. 비교를 하는 데 있어서 좋고 나쁨의 기준은 누가 만들었을까. 세상이 만들었겠지. 그 기준은 유행 타듯 세상 사람들에 의해 계속 바뀔 것이다.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단 하나의 진리는 바뀌지 않는다. 나는 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나는 누구와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 나 자체로 이미 온전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하고 귀한 사람이다. 그 누구도 나를 대체할 수 없다.
누군가와 나를 비교할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에 소중한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고민을 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