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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쌤 Sep 15. 2021

3. 나는 왜 안되는 걸까?(낮은 자존감)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에게 힘든 것은 주위 환경이다. 주변 사람들의 말에 쉽게 흔들리고 자신을 붙잡을 수 있는 정신적인 힘인 멘탈이 약하다. 흔히 내가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데 주위에서 넌 안 될 거라는 뉘앙스의 “네가? 그거 어려울 텐데..” 하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그래 난 안 될 거야’ 하며 포기하게 된다. 만약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님이 이런 말을 한다면 어떨까.      


어려운 시대를 살아온 우리 부모님들에게는 부정적인 의식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 이는 대부분 그들의 부모에게서 내려져 온 것이다. 그러니깐 우리의 할머니 세대이다. 여자들은 학교에 못 가고 일을 하며 애만 낳아야 했던 시절에 살았다. 식사할 때에도 남자랑 겸상하지 못하고 구석에서 식은 밥을 먹어야 했던 시절을 살아온 분들이다. 딸이었던 자신이 오빠나 남동생인 아들에 비해 부모에게 편애를 받았다. ‘넌 여자라서 안 돼, 하지 마’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이러한 환경이 우리 엄마인 자식에게 전해져 나에게까지 온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살아온 환경이 그랬기에 당연하듯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부족하다고 느끼며, 안 될 것이라고 말하며 살아간다. 그 의식은 자연스럽게 자식에게 전해진다. 자신이 하는 말들이 자식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잘 알지 못한다. 어떻게 해야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인지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나무의 뿌리 같다. 어렸을 적부터 부모나 선생님에게서 ‘넌 안 돼’라는 말을 듣고 자라면 ‘난 안 될 거야’라는 의식이 현재에 강하게 남아있다. 나 역시 엄마에게서 안 돼 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내가 꼬마였을 때, 아빠는 나에게 ‘우리 딸은 미스코리아가 될 거야’ 하며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반면 상대적으로 우리 엄마는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하셨다.      


어느 날, 별다른 꿈 없이 아르바이트만 전전하다가 인터넷에 떠도는 광고를 보았다. 승무원 양성학원 광고였다. 화려한 광고 안에 유니폼을 입은 언니들이 멋져 보였다. 그 광고에 매혹되어 학원을 등록하고 온 날, 엄마가 나에게 말했다. “넌 키도 작은데 무슨 승무원이 된다고 해. 힘들어. 포기해” 그 당시 국내 항공사 승무원의 키 조건이 162센티 이상이었고 내 키는 159cm였다. 엄마의 말을 들었을 때 몹시 서운했다.


‘딸이 승무원이 되고 싶다는데 응원은커녕 힘 빠지는 소리를 하다니..’ 엄마의 한 마디에 흥미롭게 시작한 내 첫 번째 꿈을 향한 마음이 잠시 흔들렸다. 학원 등록비 또한 만만치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인 130만 원을 나를 위해 투자했다. 다행히도 첫 번째 꿈에 대한 가슴 벅차오름은 그 무엇보다 컸다. 엄마의 안 된다는 김 빠지는 소리도, 비싼 학원 비도 문제 되지 않았다. 나는 승무원 양성학원에서 알려주는 대로 면접을 준비했다.      


항공사가 좋아할 만한 답변의 영어 인터뷰를 준비했고 외모 관리법, 인사법, 서비스 마인드를 배우는 등 승무원의 이미지를 만들어갔다. 그리고 각종 항공사의 지원자격을 분석해서 내가 갈 수 있는 회사들을 선별했다. 우선적으로 키 작은 내가 갈 수 있는 항공사를 찾았다. 지원자격에 순수하게 키를 보는 항공사가 있고 암리치를 보는 항공사가 있었다. 암리치는 팔을 뻗어 기내 머리 위 선반인 오버헤드빈에 팔이 닿으면 통과이다. 그 당시 기준이 208센티에서 220센티 정도였다.     


나는 키의 장벽이 낮은 국내와 외국항공사 몇몇에 지원을 했다. 항공사의 면접이 공채와 특채로 나눠지는데, 면접 기회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아랍이나 유럽 항공사처럼 대우가 좋은 곳은 기존의 한국 승무원들이 이미 많아서 신입 승무원을 자주 뽑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서류부터 체력, 외모, 서비스 마인드를 평가하기 위해 적게는 4차에서 많게는 7차까지 면접 단계가 이어졌다. 이러한 이유로 승무원을 준비하는데 보통 1년 안에 합격이면 꽤 잘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자존감을 떨어트리던 엄마에게 보여주듯, 취업준비 6개월 만에 보란 듯이 외국항공사에 합격을 했다.      


비교적 빠른 기간 안에 합격한 편이지만, 준비하는 기간인 6개월 동안 몹시 힘들었었다. 열 번 넘게 면접에 불합격할 때마다 낙담하고 자신감이 떨어지기를 반복했었다. 과연 내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올라왔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전, 현, 차직 승무원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유용한 면접 정보를 알아내기도 했지만, 차직 승무원들끼리 서로의 힘든 마음을 위로해주는 글을 보는 일이 더 많았다.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의 글을 보면 나도 두려움이 올라왔다. ‘전 언제쯤 될 수 있을까요 벌써 2년이 넘어가는데 점점 지쳐가네요’라는 글의 주인공들처럼 되지 않을까. 막막한 미래에 가슴이 답답했다. 나보다 키 크고, 예쁘고, 영어도 원어민만큼 잘하는 준비생들이 넘쳐나는데 과연 내가 될 수 있을까.     


목표했던 일에 실패한 사람이 가슴을 열고 걸으며 떳떳하게 걷는 사람은 없듯 나 역시 그랬다. 승무원 준비생 기간 동안 나는 어깨가 축 처진 채 힘없이 걸어 다녔다. 아무리 머리에 뽕을 가득 넣고 스프레이로 반듯하게 그루밍을 해도 나는 승무원 준비생에 불과했다. 면접에 떨어지고 암담한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점점 무기력해지니 면접에 자신감도 떨어졌다. 특히 서류면접부터 떨어진 날에는 엄마의 말처럼 역시 키 때문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막연한 목표에 매달리는 건 아닌 가하는 의구심 속에 좌절감도 올라왔다.     


내가 면접에 떨어질 때마다 면접을 꾸준히 볼 수 있도록 해 준 것은 힘내라는 응원도 아니었고 잘 될 거라는 확신도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연이은 탈락에도 꾸준히 면접을 보게 해 준 원동력은 바로, 곱창이었다. 그때 당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 순간적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혈색이 돈다. 다음엔 되겠지 하는 격려의 말보다 기름지고 고소한 곱창 하나가 내 마음을 위로했다. 곱창을 먹는 순간에는 모든 것을 잊게 만들어주는 강력한 힘이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건 굉장히 단순한 것 같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평생 즐겨 먹던 곱창이었다. 아직도 내 혀가 기억한다. 6개월 동안 승무원을 준비하며 먹은 곱창이 내 평생 가장 맛있었던 곱창이라고 하면 내 마음이 표현이 될까? 주위에서 자존감에 상처 주는 말들을 할 때 그로 인해 스스로 자신감이 떨어질 때마다 나에게 위안을 준 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만약 엄마가 안 될 거라며 포기하라고 했을 때, 꿈을 접었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실제로 나와 같이 항공사 면접을 준비하던 친구들은 두 분류로 나뉘었다. 끝까지 준비해서 4년 만에 승무원이 된 친구가 있는가 하면 중간에 포기하고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때 조금 더 해볼 걸 후회를 하는 친구들이 있다. 포기한 친구들은 미련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현재 하는 직업에 만족을 하지 못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들이 하는 말들은 그들의 생각일 뿐이었다. 그들의 인생에 뿌리 깊게 박힌 그들의 삶의 방식이다. 우리는 인생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잘 알까? 나를 낳아준 부모님도 나를 잘 모르는데 말이다. 그 외에 언니, 오빠, 애인, 친구, 동료, 선생님 등등 아무리 가깝다고 생각해도 나는 내가 제일 잘 안다. 나의 능력은 나만이 알고 있고 결과는 부딪혀봐야 아는 것이다.     


내가 승무원을 준비할 때, 힘들 거라고 했던 사람은 비단 우리 엄마뿐이 아니었다. 사촌들, 친구들까지 비슷한 반응이었다. 심지어 내가 합격하고도 “그 항공사는 별로 까다롭지 않나 봐?”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내 주변은 나를 축하해주기보다 냉소적인 환경이었다. 승무원을 그만둘 때는 “어렵게 들어간 항공사를 왜 그만두니. 결혼하고 그만둬라. 안 그래도 나이도 찼는데.”라는 걱정을 한 몸에 받았다. 여자는 서른이 넘으면 꺾인다는 말, 직장을 그만두면 몸값이 떨어진다는 말이 들려왔다. 나를 보여지는 것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의 반응에 적대감이 올라왔었다.      


이런 소리들을 듣다 보면 알게 된다. 사람이 사람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준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도 주변에서 나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상처를 주면 가뜩이나 불안한 마음이 더욱 세게 동요된다. 내가 승무원이 되기 위해 준비하고 그만둘 때까지 느낀 것이 있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나뿐이라는 것이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한 지금까지 살아온 길에서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고 노력했는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나에 대해 넌 안 될 거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나 자신뿐이다. 너 이것밖에 못하냐며 비판할 사람도 나 자신이며, 그동안 수고했다고 토닥거릴 수 있는 사람도 나 자신이다. 만약 내 가슴을 뛰게 하는 무언가를 만났다면 미련 없이 도전해보면 어떨까. 하다가 내가 더 이상 노력할 자신이 없고 힘들 것 같으면 그때 포기하면 된다. 놓아버리는 것 또한 나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다. 나의 잠재력과 가치를 모르는 주변 사람의 말에 이끌려가지 않고 이제 나 스스로 나를 평가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



미라쌤의 치유법 :D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그러더라.

나에게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안 되는 일만 보일 것이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된다고 믿어보자. 분명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내 인생이 만들어질 것이다. 나는 되는 사람이니까. 되는 것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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