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살 이후로 쭉 만성 위염으로 고생했었다. 정기적으로 내시경을 받을 때마다 치료를 위해 6주 치 약을 복용할 정도로 위 상태는 좋지 않았다. 나는 과식을 즐겨했고 한 때는 와인에 중독인 일상이 있었으니 위염이 없었다면 이상할 정도인 생활이었다. 특히 밤낮없이 일하는 승무원이라는 직업 때문에 몸의 균형이 깨지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나는 아주 안 좋은 습관이 있었다. 음식을 먹고 바로 눕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밤에 비행 가는 일정이 있었다. 밤 11시에 출발이라 낮에 잠을 자 두어야 그다음 날 아침까지 말짱하게 눈을 뜨고 일을 할 수 있었다. 밤에 비행이 있을 때 낮잠을 잘 자기 위해 내가 만든 습관은 점심을 먹고 바로 자는 것이다. 점심을 먹고 오후 2~3시쯤 침대에 누우면 잠이 솔솔 쏟아진다. 3~4시간 정도 자고 가뿐하게 일어나면 마치 하루를 다시 시작한 것처럼 좋은 컨디션으로 저녁에 출근을 할 수 있다.
이 생활을 반복하던 승무원 5년 차쯤, 위 상태는 극도로 나빠졌다. 처음엔 가볍게 넘겼다. 늘 있는 일이었으니까 약을 먹으면 나아지겠지 생각했다. 병원에 가는 것도 이미 일상이었다. 위염이 심하게 올 때면 일주일 정도 죽이나 맑은 음식을 먹으며 지내면 되었다. 위염 회복기간에는 삼계죽과 갈비탕을 먹을 수 있는 단골 식당이 정해질 정도로 아픈 생활이 익숙했다. 이렇게 위통을 무시하며 지내던 어느 날, 위염으로 가장 괴로웠을 때가 생각난다.
처음엔 위가 쓰리기 시작하더니, 음식을 먹고 나면 위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배를 누르면 주먹 크기만 한 돌을 만질 수 있었다. 게다가 역류성 식도염이 찾아와서 음식뿐 아니라 물 한 잔도 넘기지 못하게 되었다. 물을 마시면 구역질이 나서 토할 것 같았다.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다가 비행을 가려고 억지로 먹은 초코 크로와상 하나가 3일 내내 먹은 음식의 전부일 때가 있었다.
사실 나는 그때 좋아하는 사람과 이별을 했었다. 이별의 후유증이 지독한 위염에 시달리게 만들었던 것 같다. 이별을 하고 우울한 마음에 입맛도 없었지만, 역류성 식도염 때문에 음식을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했다.
나는 14살에 혼자가 된 이후, 모든 사람에게 마음을 주었다. 동성이든 이성이든 혼자보단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했다. 시골에서 할머니와 지낼 때, 명절 때면 식구들이 우르르 몰려와 한꺼번에 떠나곤 했다. 6남매 모두 사이가 좋았던지라 다 모이면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시끌벅적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마당에 꽉 차던 차들이 하나둘씩 없어지고 새소리와 바람소리만 남은 빈 마당을 바라보는 시간이 싫었다. 허허벌판에 또다시 나만 덩그러니 혼자가 된 기분이었다.
♪구멍 난 가슴에~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 이라는 노래에 나오는 가사를 크게 공감한다. 내가 그 가사를 썼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가슴에 구멍이 났다는 말이 무슨 느낌인지 정확하게 느낄 수 있다. 심장이 시리다 못해 뻥 하고 뚫려 가슴 안에 아무것도 없는 황망한 마음이 든다. 그렇지 않아도 혼자 있으면 외로움에 우울해하는 내가 이별을 하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하고 의지했던 남자 친구와의 이별은 나에게 가슴에 총을 맞은 듯했다.
그때 만나던 남자 친구는 홀로 여행하는 것을 좋아했다. 자유로운 남자 친구를 이해해주지 못했던 나는 서운한 마음에 삐치기를 반복했다. 그런 나를 보고 생각할 시간을 갖자던 남자 친구는 내게 이별을 통보했다. 그때 나는 철부지 어린아이 같았다. 상대방에게 나의 상황이나 기분을 설명하거나 이해시키지 못했다. 나조차도 내가 왜 그러는지 몰랐으니 말이다.
연인에게 무조건 바라기만 했다. 내 기분을 알아서 맞춰달라고 떼쓰는 꼬마 아이 같았다. 나는 남자와 이별할 때마다 비교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남들은 1년의 연애가 쉬워 보이고 5년, 10년 연애도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잘 안될까, 뭐가 문제일까.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과 또 실패했다는 생각에 자책했다. 난 안 되는구나. 다시 혼자가 되었구나.
혼자인 나를 견딜 수 없었다. 휴가를 내고 무작정 런던으로 여행을 떠났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런던에 아무 계획도 없이 비행기 표만 들고 갔다. 낯선 환경에 있으면 우울할 겨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런던의 우중충한 날씨와 나의 감정은 서로 닮아있었다. 비틀스처럼 멋지게 횡단보도를 걷는 게 아니라 눈물을 질질 짜며 홀로 걷던 런던의 거리였다. 누가 봐도 막 이별한 동양 여자애였다.
슬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처량하게 며칠을 울었다. 런던의 하늘처럼 내 눈물이 마를 순간이 없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연락을 하던 그가, 보고 싶다고 안달이 나서 점심시간에 달려오던 그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나를 챙겨주고 아껴주던 그가 없어졌다. 나는 또다시 시골에 남겨져 마당을 쓸쓸히 바라보는 14살 아이가 되었다.
이별을 하고 난 끊임없이 자책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조금 더 이해해 주었다면 그가 나를 떠나지 않았을 텐데. 배려 없는 나의 행동이 그를 얼마나 힘들게 했으면 떠났을까. 후회와 자책으로 며칠을 보내면서 되돌릴 수 없는 날들을 반성했다. 반성의 날들이 계속될수록 우울은 더욱더 깊어졌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던 14살의 외로운 아이는 이별이란 무대 위에서 더욱더 크게 울었다. 나는 이별의 슬픔을 떨쳐버리려고 런던에 갔으나, 보기 좋게 실패했다. 이별의 후유증은 나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고 자책, 후회, 우울의 감정은 음식을 거부하게 했다.
위염을 한 번이라도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위가 비면 속에서 쓴 물이 나온다. 그래서 내 가방 안에는 항상 간식이 들어있었다. 몇 년간 양배추 즙을 복용했고 위에 좋다는 각종 영양제는 다 먹어봤다. 몸이 좋지 않아 고생했던 그때 아픈 내 몸을 스스로 챙기느라 힘들었는데, 사람들의 눈치까지 보니 서러웠다. 짜거나 매운 음식은 당연히 먹지 못해, 메뉴 선택에 늘 제약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들의 눈치까지 보던 나는 위가 항상 긴장했다. 안 그래도 불편한 속은 우울이란 감정 때문에 더욱 깊이 병들게 되었다.
나는 우울할 때마다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했다. 지인들이 있는 단체 카톡방에서 늘 징징대기 바빴다. ‘나 우울해 외로워’라는 말을 마치 인사말처럼 했다. 그때마다 자기가 더 힘들다고 내 말을 딱 잘라내던 친구가 떠올려진다. 친구는 내 말을 들어주기는커녕 자신이 더 힘들다며 대화를 이끌어 갔다.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팀장이 오늘은 어떠한 일로 자신을 화나게 했는지, 내가 마치 그 회사에 다니는 것처럼 자세하게 설명하며 분노를 쏟아냈다. 나의 우울한 마음은 털어놓지 못하고 더 깊어지기만 했다.
그때 난 느꼈다. 다른 사람들에게 외롭다고 말하고 기댈수록 더욱 그 외로움이 커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를 위로해주길 바라던 기대감은 무너지고 더 큰 실망감과 고독함이 나를 찾아왔다. 내 마음을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뿐인데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힘들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로도 이미 벅차게 힘이 들어 남의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 같다. 내가 위로를 받는 것보다 서로 누가 더 힘든지 불행 배틀을 하면 오히려 쉬울 것처럼 보였다.
나는 누군가가 내 마음을 들어주길 원했다. 하지만 내가 슬프고 힘들다고 말할 때 그저 아무 말 없이 들어주는 사람을 찾기 무척 힘들었다. 아니 아예 없었던 것 같다.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다가 내가 참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건지. 스스로 한심하고 불쌍했다. 나는 나의 이름을 불렀다. 미라야 괜찮니.. 홀로 대화를 시작했다. 내가 왜 슬픈지, 왜 외로운 감정을 느꼈는지, 왜 그토록 우울한지 거울을 보고 대화했다.
말하지 않아도 내 가슴에서 울부짖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슬며시 내 오른손으로 왼 손을 잡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 내 의지대로 움직였지만 왼 손등 위의 느낌은 다른 사람이 위로해주는 것처럼 따스함을 느꼈다. 내 심장이 마쉬멜로우처럼 말랑말랑 해졌다. 그리고 딱딱한 위도 점점 부드러워지는 듯했다.
나는 내 마음을 따스하게 안아주었다. 그리고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다고 칭찬도 해주었다. 외로운 마음이 들 때마다 구멍이 났던 나의 가슴은 이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의 위로로 채워지고 있다. 그 사람은 언제나 내 곁에서 귀를 열어주고 손을 내어준다.
미라쌤의 치유법 :)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건 뭘까?
아픈 것도, 며칠 째 밥을 먹지 못한 시간도 아니었다. 내 마음을 공감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느꼈을 때였다. 내 마음을 이야기할 사람이 없을 때 나는 외로웠다. 외로움은 혼자라는 생각에 빠져들게 했고 그 생각은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막상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아무나 붙잡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언젠간 후회를 하게 된다. 믿고 모든 것을 이야기했던 사람이 나의 약점을 이용한 적도 있고, 관계가 틀어졌을 때 나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해 버릴까 봐 나 스스로 전전긍긍했다.
우울하거나 슬플 땐 어떻게 하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들어주는 사람과 대화하고 싶어 한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의존하다 보면 조건적인 위로에 습관이 들어버린다. 그 사람이 없으면 나는 또다시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슬플 땐 차라리 혼자서 마구 울어보자. 더 이상 나올 눈물이 없을 때까지 속 시원하게 울어버리자. 몸에서 슬픔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소리 내어 엉엉 울어보자. 영원히 슬프고 우울할 것 같던 눈물이 멈추면 기분이 한결 개운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