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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 Mar 19. 2024

샤넬 가방보다 나무가 좋은 이유

베란다 정원

"은영이가 웬일이야?"

MCM 가방을 든 내게 친구가 눈을 크게 뜨며 묻는다.

"아.~이거 지인이 선물해 주셨어."

갈색 식빵 같은 토트백을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렇다. 난 명품백에 관심이 없다. 베풀기 좋아하는 지인의 선물이라 들었을 뿐이다. 몇 달이 못 가 옷장 안에 붙박이로 있던 그 가방은 가깝게 지내던 또 다른 지인에게 선물해 버렸다.


그런 나도 애정하는 게 있으니 바로 식물이다.


예닐곱 살 때 했던 시골 생활 때문인지 나는 초록빛 나무를 무척 좋아한다. 사실 외삼촌댁이 있던 전주가 시골은 아니었지만 어린 나에게는 매일의 놀이터가 되어주던 마당이 있었다. 뜰에는 샐비어 꽃이 있었고 나팔꽃과 분꽃도 있었다. 이름 모를 나무들도 꽤 있었고 장난감이 딱히 없던 나는 한 살 위 사촌언니와 꽃잎을 따서 돌로 빻아가며 소꿉놀이를 했다.


 결혼해서 한동안은 13평의 좁은 아파트에 사는 바람에 마땅한 화분 하나 키우지 못했다. 서른 중반에 큰 마음먹고 내 생일 기념으로 자그마한 고무나무를 샀다. 큰 나무로 잘 키울 다짐과 가족들 기념일마다 나무 화분을 하나씩 사들일 생각에 설레었다. 마땅히 놓을 곳도 없어 현관 앞 조그만 마루 끝에 두었던 새 화분은 우리 집에 입성한 지 하루 이틀 만에 수명을 다했다. 세 살 무렵이었던 둘째가 처음 보는 집안의 나무라 신기했나 보다.  고무나무의 그 커다란 잎을 모두 꺾어버린 것이다. 호기심이 많았던 꼬맹이가 저지른 일이라 화도 내지 못했고 윤기 나던 진초록의 잎을 모두 잃고 줄기만 덩그러니 남은 나무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나는 한동안 화분을 사지 않았다. 내게는 식물을 키우는 것이 아직 사치구나 싶었다.


드디어 마흔이 되어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집들이 선물을 하겠다며 무엇이 필요한지 묻는 친구들에게 작아도 좋으니 나무 화분을 갖고 싶다고 했다. 나도 나무를 사모았다. 그중에서도 벤자민 고무나무와 뱅갈 고무나무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벤자민은 알뜰한 가격만큼 여리여리한 작은 나무를 사서 거실에서 키우다 꽤 울창하게 자란 후에 수험생 둘째 방에 넣어주었다. 물을 잘 주지 않아서인지 환기가 잘 안 돼서인지 어느 날인가 살펴보니 거의 모든 잎을 다 떨구었다. 깜짝 놀라 볕이 잘 들고 수도가 있는 작은 베란다에 내놓았다. 고맙고 기특하게도 다시 쑥쑥 잎을 내더니 베란다를 미니 숲으로 만들어주었다. 베란다 쪽 창문을 열면 작은 숲에 온 것 같았다. 아침마다 달려가서 새로 나온 연초록의 잎들을 보는 게 즐거웠다.


작년 겨울 매섭게 추운 날이었다. 무심하게도 나는 바깥창도 닫아주지 않고 하필이면 그즈음 물도 흠뻑 주워서 7년여를 애지중지 키워서 제법 굵은 기둥과 큰 키로 울창하게 자라준 벤자민과 뱅갈 고무나무를 얼어 죽게 만들었다. 그 칙칙한 갈색의 처진 잎들이라니. 바로 며칠 전까지 초록초록 했었는데. 맞은편 아파트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성했는데 말이다. 왜 물을 줬을까? 왜 창문을 안 닫아줬을까 자책했다.   내 나무가 죽다니 믿기지 않았다. 혹시 봄에 다시 살아나줄지 몰라 기다리기로 했다. 다행히 뱅갈 고무나무는 꺾꽂이로 네 그루의 후손을 남겼고 그 아이들은 잘 자라주고 있다. 미니숲의 가장 큰 두 그루의 나무가 죽자 베란다는 그야말로 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단감을 깎다가 커다란 감씨를 보며 문득 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 기둥만 남은 벤자민 화분에 감씨를 심었다. 사과 씨도 심고 배 씨도 심고 레몬청을 만들고 나온 레몬씨도 심었다. 몇 주가 지났을까? 감씨 앗도 싹을 틔우고 사과 씨앗도 싹을 틔었다. 그 짙은 초록의 새싹들을 보는  경이로움이라니. 씨앗을 심어서 키우는 꼬마 나무들은 돈을 주고 산 나무들과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이제는 아침마다 새 아기잎이 나왔는지 먼저 나온 잎들은 얼마나 컸는지 보러 가는 것이 일상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예쁜 아이는 레몬나무다. 잎들을 살짝 쓰다듬으면 상큼한 레몬향도 난다. 이제 겨우 20cm를 조금 넘겼지만 듬직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주고 있다. 지난여름에는 혹시나 싶어서 망고씨도 심었는데 이국적인 녹갈색의 긴 잎을 가진 망고나무가 자라주었다. 아직은 모두 꼬맹이들이지만 성실하게 계속해서 새 잎을 조금씩 보여주고 있다. 씨앗을 품고 나무를 내어주는 흙이 위대하게 느껴졌다. 그 단단하고 작은 씨앗에 생명이 들어있어 검은흙을 뚫고 여린 잎을 내어준다. 신비롭다. 번쩍이는 다이 아몬드나 금붙이, 샤넬 가방보다 나무가 좋은 이유다.


죽은 줄 알고  말라버린 나무 기둥은 뽑아 버렸는데 땅속 뿌리에서 3~4년만에 예쁜  잎들이 다시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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