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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톡 주인장 Dec 08. 2023

아픈 내 부모, 누가, 어떻게 돌봐야 하는가? 두 번째

독박 돌봄을 예방하기 위한 가족 규약을 생각하다

부모 돌봄은 결승선이 어디인지 모르는 마라톤과 같다

부모를 챙기고 돌보는 건 사실 아이를 키우는 것과 유사한 점이 많다. 독박 육아가 양육자를 지치게 하고 육아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독박 부모 돌봄도 돌봄의 질이 떨어지고 주 돌봄자는 쉽게 지치게 된다는 게 그중 하나다. 물론 아이 키우기에 비해 부모 돌봄은 주 돌봄자의 상황, 형제나 가족관계, 가정형편 등의 환경, 무엇보다 부모의 건강상태에 따라 일반화가 어려울 정도의 다양한 케이스가 존재한다. 


둘의 가장 큰 차이는 생(生)과 사(死)라는 근원적인 지점에 있을 것이다. 아이는 그 자체의 생명력에서 오는 기쁨과 완벽한 행복(안타깝지만 매우 짧다!)을 주지만, 노인은 십중팔구 쇠진한 기력과 죽음을 가까이 둔 이의 어두운 아우라를 방출하게 마련이다. 그 분은 필경 매사를 귀찮아하고 무기력해하거나, 못마땅한 게 많아 잔소리를 달고 계실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친한 선배의 단골 가사도우미 아주머니는 갓난아기 있는 집은 힘들어도 가지만, 노인 계신 집은 안 간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끄덕끄덕 공감의 고갯짓.


함께 살건 가까이 살건, 집에서 돌보건 시설에 계시건 늙은 부모를 돌보기 위해서는 초기부터 몇 가지 원칙과 지침이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자기 중심적이고 현실과 도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존재들이며, 뭐든 익숙해지면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 돌봄자를 지정하고, 특별 대우 해주기

부모 돌봄의 첫번째 원칙은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장기전이라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시던 아파트를 팔아 실버타운에 들어간 부모님이 예상보다 장수하시는 바람에 돈이 부족해져 십시일반하게 된 자녀들 간에 결국 분란이 생겼다거나, 길어야 십 년이겠거니 생각하고 모시기 시작한 게 이십여 년 전, 이제 구십 중반 시어머니보다 칠십이 다 되어가는 며느리가 아프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그닥 새삼스럽지도 않다. 노인은 ‘밤새 안녕’이란 말도 있긴 하지만, 그건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다. 현재 건강하시든 편찮으시든 그 끝이 언제일지 알 수 없으며,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생명연장을 위한 의료 시스템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부모 돌봄을 형제들 간에 공평하게 나누는 건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나중에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게 되고 돌봄 공백만 생기기 쉽다. 어차피 주 돌봄을 담당하는 자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시적인 감상이나 효심에 부모 돌봄을 자처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먼저, 돌봄을 길게 유지해도 견딜 만한 상황인지 충분히 고려하고 따져봐야 한다.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효도를 하겠다고 회사를 그만두고 간병을 하다가 길어지는 기간에 지치고 힘들어진 케이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중간에 주 돌봄자를 바꾸는 건 의외로 어려운 일이다. 가족 간에 동의가 되어도 부모님이 달라진 상황에 적응하기 힘들어하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거주 방식도 변수가 되는데, 일단 부모님과는 따로 사는 게 원칙이다. 바로 옆집에 살아도, 잠만 따로 자도, 생활비가 더 들어도, 때로는 오가는 게 번거로워도 따로 사는 게 좋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따로 살면서 집안에 CCTV 및 각종 안전장치 설치, 아침 전화 안부, 하루 한 번 방문, 반찬과 간식 나르기, 위생상태 관리 등등 가능한 것들을 실천한다. 아마 대다수는 요양보호사가 방문하는 경우가 많을 텐데, 요양보호사들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하다.  


내 부모는 내가 모신다는 자세도 잊지 말자. 배우자에게 강요하거나 큰 기대를 하지 않아야 하는것이다. 특히 5, 60대 남성은 아내를 내 부모의 주 돌봄자로 당연시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누군가를 돌보는 게 미숙하다면 배우자와 외부의 도움을 받더라도, 주 돌봄은 자식인 자신의 몫이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멀리 사는, 가족 톡방의 프로 참견러는 사절!

경제적 문제 역시 중요하다. 특히 집과 관련된 사안은 더욱 그러하다. 부모님 집을 팔아 큰 평수로 옮겨 합가하는 경우, 부모님 집에 내 돈을 보태 이사를 시켜드리는 경우 등은 반드시 사전에 형제들의 공개적인 동의와 지지를 확인해야 한다. 부모님께 드는 비용은 어떻게 충당할 건지, 돌아가시고 재산이 남는다면 어떻게 할 건지 등도 미리 따져 놓는다. 처음부터 주 돌봄자는 형제들과는 다른 권리를 인정받아야 나중에 억울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얼마라도 더 받으면 그만큼 책임도 커지니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지만, 어중간한 입장보다는 정확하게 받고 할 건 하겠다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아프면 돈이 더 들고, 돈이 없으면 더 아픈 상황에 처하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주 돌봄자를 중심으로 형제 간 합의된 가이드가 있어야 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불쑥불쑥 가족 톡방의 프로 참견러가 되거나 엄마 컨디션이나 상황을 수시로 반복해서 묻는 일은 금지다. 특히 외국에 있다든지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들이 뭐라 하는 건 더욱 엄금이다. 다른 가족은 주 돌봄자의 노고를 칭찬하고 고마워하면서 그의 지시를 잘 따르면 된다. 원활한 일상을 위해서는 소소한 가족 프로토콜도 필요하다. 돌봄자는 정기적으로 부모님의 컨디션을 공유한다거나, 형제들은 한 달에 한 번씩 공식적으로 출동해서 돌봄자를 쉬게 한다거나, 방문 시 부모 집의 냉장고는 건드리지 말고 각자 먹을 걸 해결한다든가, 병원 출입시 1인이 동반해준다거나 등등 다양한 리스트를 만들 수 있다.


한편, 엄마가 주 돌봄자인 딸의 수고는 당연하게 여기고, 오빠나 남동생한테만 잘 해줘서 갈등이 생기는 일도 있다. 내 친구는 가까이 살면서 자주 할머니를 챙기는 자신의 딸과 명절 때나 어쩌나 보는 오빠의 아들을 차별하는 엄마 때문에 마음을 다치고 말았다. 고령의 엄마야 그렇다치고, 오빠가 그걸 당연하게 말하는 게 화가 나는 거다. “장손의 특별 대접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장남으로서 엄마 부양은 왜 딸인 나한테 맡기는 건데!!” 당연한 질문이고 분노다. 엄마를 바꾸는 건 불가능하니, 이럴 때는 오빠가 달라져야 한다. 경험상 특히 딸들보다 아들들이 있는 집은 보다 세심하고도 강력한 원칙 준수가 필요한 것 같다. 소소한 것 같지만 이런 일들이 의외로 심각한 가족 갈등의 요인이 된다는 게 경험자들의 일관된 이야기다.


시설에 모셔도 돌봄 참여는 계속 필요하다

시설에 모신다고 할 일이 끝난 게 아니다. 좋은 요양원 찾기부터 방문 원칙과 횟수, 요양원과의 관계 설정 등 할 일은 계속 이어진다. 시설에 맡겼다는 죄책감에 더해 요양원에서 제대로 돌보고 있는지 걱정과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요양원에 계시면 여러 신체적 정신적 능력이 빠르게 퇴화되는 경우가 많다. 고관절수술이라도 받고 다시 들어가시면 걷기 힘들어지는 게 다반사다. 시설에서 집단 돌봄을 받게 되니, 개별적인 재활치료는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보호자가 자주 가서 재활을 돕고 적극적인 돌봄 참여를 하면 확실히 상태가 나아지신다. 평상시에도 죄책감으로 인한 불필요한 감정 소모 대신 차분하고도 지속적인 돌봄 참여를 유지하는 게 좋다.  


내 주위에서 본 바람직한 부모 돌봄은 퇴직한 60대 남성이 90이 넘은 엄마 집에 들어가서 6개월을 함께 살며 임종을 맞은 케이스다. 요양보호사가 오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종일 엄마를 돌본 그는 ‘기력이 없어 거의 누워 계시니 돌보는 게 크게 어렵진 않다. 슬프거나 힘들기보다 한 생명이 사라지는 현장을 목격하는 심정이었다’고 토로했다. 


네 자매가 돌아가며 집에서 엄마를 돌보다가 임종을 맞은 동창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병원 가정간호와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으며 엄마 집에서 가까이 사는 동생이 주 돌봄자가 되고 다른 자매들이 하루씩 방문해서 엄마를 돌본 것이다. 자연스럽게 엄마 집에서 자매들끼리 같이 자는 밤이 많았고, 그럴 때면 어린 시절 추억을 꺼내 울고 웃으며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주 돌봄을 담당하는 동생에게는 가족 논의를 거쳐 약간의 경제적 보상을 해주는 일도 잊지 않았다.


내 일상이 단단해야 부모도 편하게 돌볼 수 있다

글이 길어졌다. 이러쿵저러쿵하는 내 글은 당연히 주관적인 경험을 토대로 하고 있다. 지난번에도 이야기했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나이가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일상의 분주함으로부터 벗어나 시간 내기가 좋은 편이다. 경제적인 상황이나 가족관계도 젊은 사람들보다 나을 것이다. 그래도 공통적인 나의 결론은 아픈 부모를 잘 돌보는 바람직한 방법은 부모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이룬 후 돌봄의 세계에 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 인생과 내 인생을 분리하고, 내 몸과 정신 건강을 먼저 챙겨야 한다. 내가 지치면 아픈 부모와 가족이 원망스러워지고 그런 자신이 괴로워지게 마련이다. 


특히 남자보다 여자들이 죄책감을 느끼는 일이 많은데, 어쩔 수 없는 일은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최대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는 것이다. 형편이 닿는다면 집에서 모시고, 그게 불가능하면 시설에 모시되 자주 챙기고 돌봄에 참여하면 된다. 먼저 내 일상을 단단하게 유지해야 부모도 길게, 편안하게 돌볼 수 있는 법이다. 고령화 사회, 달라진 가족관계 앞에서 우리의 마음은 낯설고 불편하지만,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이 시대를 견디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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